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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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우리나라 부를 대표하는 곳. 부자들이 사는 곳. 이곳 아파트 값이 얼마나 비싼지 보통 사람들은 전세로 들어가 살기도 힘들다. 일반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하지만 강남이 처음부터 이렇게 부촌이었을까? 아니다. 강남은 강북에 비해 허허벌판이었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곳이 바로 강남이다.


이 강남 개발을 둘러싸고 얼마나 많은 이권들이 오갔을까? 이제는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지만, 강남 개발로 떼돈을 번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들이 떼돈을 벌 때, 순전히 자신의 노력만이 아니라 운과 연줄이 작동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강남 개발을 둘러싼 이야기. 역사 책이 아니라 소설로 만날 수 있다. 바로 이 책이다. 강남몽. 우리나라 고전소설에 '몽(夢)'자 들어가는 소설이 많은데 이는 현실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꿈을 빌려온 것이다.


황석영 역시 '지금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사람살이가 어쩌면 꿈과 같이 덧없는 가상의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378쪽. 작가의 말에서)것이라고 하면서 자신이 '강남몽'이라고 제목을 붙인 이유를 대고 있다.


즉, 강남 개발에 뛰어들어 떼돈을 번 사람들의 삶이 가상 현실과 같다고, 그들이 사는 삶은 진정 우리가 추구하는 삶일까 하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소설이 문제적 개인의 이야기라고 한다면, 이 강남몽은 강남 개발을 둘러싼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우리들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하고 있다.


주요 인물이 5명이다. 이들은 서로 얽히고설킨다. 그럴 수밖에 없다. 개발에 따르는 인물 군상을 황석영이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시작은 박선녀다.(1장 백화점이 무너지다) 유흥업소를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보면 된다. 박선녀는 김준의 내연녀가 되는데, 김준은 일제시대 일제의 정보원 노릇을 하다가, 해방 후에는 미군 정보국에 붙어 지낸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바탕으로 정보를 얻어 은퇴한 뒤에 개발 사업에 뛰어든다. 이렇게 김준의 이야기가 펼쳐진 다음에는(2장 생존만으로는 부족하다) 부동산업자가 등장한다.(3장 길 가는 데 땅이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세사기에도 공인중개사가 개입되어 있다고 하는 말들이 있는데, 당시는 더했다. 부동산업자와 짜고 땅값을 올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개발과 관련된 유흥업소, 건설업자, 그리고 부동산업자가 나왔으면 다음에는 누가 나와야 할까? 소설은 현실을 반영하듯이 조폭들이 등장한다.(5장 개와 늑대의 시간) 개발이 되면 상가가 많아지고, 이 상가를 끼고 주먹들이 진출하는 것이다. 단지 주먹만으로? 아니다. 이들 역시 권력을 끼고 활동을 한다. 


강남 개발을 둘러싼 하이에나들이라고 할 수 있는 네 주체가 나왔다. 이들의 삶은 부를 향해 가고 있지만, 그런 부는 모래 위에 지은 집에 불과하다.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소설은 '몽'자를 달고 있는 역할을 하듯이 미리 손을 털고 나온 사람을 제외하고는 다들 몰락한다.


현실의 부귀영화가 덧없다고 하는 '몽자류' 소설을 계승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고전소설의 결말을 따라가면, 이 중 누군가가 깨달아야 한다.


"아, 이것이 아니었구나!" 


현시대에 이렇게 고전소설의 주인공처럼 깨달을까? 아니다.이들은 실패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고, 다른 더 강한 외부 조건을 향해 가려고 할 것이다. 마치 국내 자산이 부족하면 외국 자산을 끌어오듯이.


나라 경제가 파탄났을 당시 국제 통화 기금(일명 IMF)에서 기금을 받고, 그들이 제시한 대로 노동유연화 정책을 펼치게 된 것처럼, 현실은 고전소설에서 말하는 깨달음으로 가지 않는다. 그냥 없는 사람만 더 힘들어질 뿐이다.


그렇다고 소설에서까지 이렇게 현실의 비참함을 고스란히 보여주어야 할까? 황석영은 여기서 한발 나아간다. 현실을 깨지는 못하겠지만, 그런 현실 속에서도 꿈 속 삶이 아닌 현실의 삶을 사는 사람이 있음을.(5장 여기 사람 있어요)


마지막 장에 나오는 정아를 통해서 현실을 사는 사람이 끝까지 살아남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몽'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정아가 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함께 갇혀 있던 박선녀가 자신이 정아 집안 사람들을 위해 다 해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한 말.


"사모님이 다 해줄 수 있단 말씀 다신 하지 마세요." (338쪽) 


이 말로 황석영은 꿈이 아닌 현실을 사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강남 개발로 떼돈을 벌고 여전히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사람들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앞에 나온 네 사람의 삶은 '몽'에 가깝다면, 정아의 삶은 꿈이 아닌 현실이다. 이렇게 꿈과 현실을 보여줌으로써 황석영은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생각하게 한다.


소설을 읽다보면 현대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이름들이 나온다. 소설이라서 약간 변형을 가했지만, 강남 한복판에서 무너진 백화점이라면 누가 모르겠는가? 또한 강남 개발에 얽힌 여러 이야기들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들이 추구했던 삶이 '몽'에 불과해야 한다고, 그런 꿈은 깨게 해야 한다고 마지막 장에서 '여기 사람 있어요'라는 말을 통해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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