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평전
이광호 지음,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 노회찬재단 기획 / 사회평론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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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개인이 진 것이지 인간이 진 것은 아니다."

알파고와 바둑을 둔 다음 이세돌이 한 말이라고 한다. 


"한 인간의 작은 발걸음에 불과하지만 인류 전체에서는 위대한 도약"

달에 첫걸음을 내디딘 닐 암스트롱의 말이라고 한다.


노회찬 평전을 읽으면서 이런 구절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를 비롯한 진보정당 사람들이 처음으로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 그들 개인에게도 큰 일이었겠지만 (이는 결코 작은 걸음은 아니다. 다만, 개인보다는 진보주의자들을 대표했다고 할 수 있으니, 이런 말도 통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정치사에도 위대한 도약을 이룬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그들이 국회의원이 되고 많은 변화도 있었지만, 기대만큼 일을 하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고, 또 진보들이 스스로 고질병이라고 하는 분열로 인해 여러 번 이합집산도 거쳤지만 (오죽하면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있을까), 그래도 진보정당이 국회에 입성했기에 이룰 수 있었던 일들이 많았다고 본다.


바로 그 중심에 노회찬이 있었다. 과거형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슬프지만 그는 갔으니, 과거형일 수밖에 없다.


그만큼 많은 어록을 남긴 정치인이 있을까 싶기도 한데, 말들뿐만 아니라 행동에서도 그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정치인이었다.


그런 그가 돌연 세상을 등졌다. 부끄러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영향을 준 책을 하나 고르라면 '교과서'라고 답을 하겠다던 노회찬.


교과서가 무엇인가? 좋은 말만 적혀 있는 책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지만, 교과서에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 있는 차별들을 살펴야 한다. 그래도 대체로 교과서는 옳은 말을 하는 책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다. 그 사회에서 통용되는, 미래 세대에게 전수했으면 좋은 것들이 교과서에 실려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교과서가 지니고 있는 편향성이라든지, 부정적인 면을 언급하지 말고, 그냥 통상 교과서적 인간이라고 할 때 쓰는 그런 비유적 표현으로 쓴다)  


노회찬은 교과서대로 행동하지 않는 정치인을 보고 저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왜 자신들에게 가르친 대로 그들은 행동하지 않는가? 그는 그렇게 교과서적 인간이 되었다. 앎과 행동을 하나로 한 인간.


자신의 이익보다는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했고, 당장은 아니더라도 꼭 해야만 할 일을 했던 사람. 스스로 낮은 곳으로 내려가 그런 사람들과 어울렸던 사람.


사회에서 애써 보지 않으려 했던 사람을 우리 눈 앞에 보여준 사람. 그런 정치인이 노회찬이었다. 그러니 어떤 말로 자신을 변명하지 않고 세상을 등졌으리라. 


하지만 정치인 누구나 이렇게 행동하지는 않는다. 온갖 비리를 저질러 놓고도 자기변명으로 일관하고,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법망을 피해가려고 하는 정치인이 얼마나 많은가. 또 법망을 못 피할 것 같으면 정치 탄압이라고 주장하면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듯이 자신의 잘못을 가리려고 하는 정치인이 얼마나 많은가.


교과서적 인간 노회찬은 그런 정치인이 될 수 없었다. 그는 교과서에 실린 대로 옳다고 하는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비록 실수라고 해도, 그 실수로 자신과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면 그것을 용납하지 못했다. 그렇게 세상을 떠난 노회찬.


요즘 부쩍 그가 생각났다. 정치판이 참... 그러다 노회찬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고 싶어졌다. 그의 평전을 샀다. 560쪽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다. 한 사람의 일생을 600쪽 내외에 담는다는 일이 우습기는 하지만, 이 정도 두께면 노회찬이 한 많은 일들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태어나서 자란 환경. 교과서적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 그리고 노동운동가로서의 삶. 여기서 그는 한 발 더 나아간다. 정당의 필요성을 깨닫고, 진보정당을 건설하기 위해 일하는 정치가로서의 삶. 진보정당원으로서 국회의원이 되어 한 활동들.


국회의원은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라 대변하는 자리, 봉사하는 자리임을 너무도 잘 알고 행했던 사람. 정치를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서, 특히 힘없는 약자들을 위해서 할 줄 알고 또 하려고 했던 사람.


많은 일들을 겪고, 진보정당의 부침도 겪으면서 진보정당이 국민을 위해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고민하고 실천했던 사람.


그런 그의 삶이 이 책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읽으면서 노회찬을 대단한 사람이라고 여기기보다는 우리 곁에 있었던 우리가 필요로 했던 정치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6411번 버스 연설로 알려진 그의 말. 이 책에 그 연설이 실려 있다. 그가 어떤 정치를 하려고 하는지 잘 알 수 있는 연설. 지금 읽어도 감동적이다. 마치 마친 루터 킹 목사가 한 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 나는 꿈이 있습니다 보다는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를 생각나게 한다. 우리도 기억할 수 있는 연설을 남겨준 노회찬이 고맙기도 하다.

  

우리가 투명인간 취급했던 사람들을 우리 앞으로 불러내었던 정치인. 하지만 이 연설에서 더 큰 감동을 준 것은 바로 '투명정당'이라는 말이다. 숨어 있는 정당. 정작 자신들이 대변하고,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 일해야 하는데, 절대 앞으로 나서지 않는 그런 정당. 그러면서 자신들의 이익은 절대 놓치지 않는 정당. 그런 정당이 투명정당이다. 


투명인간을 생각해 보라. 우리가 투명인간 취급한다고 했을 때는 남에게 무시당하는 약자를 의미하지만, 투명인간은 본래 보이지 않는 것을 이용해 이익을 취했던 인물 아닌가. 그러니 노회찬이 말한 투명정당은 바로 그런 투명인간을 말하는 것이다.


'정치한다고 목소리 높여 외치지만 이 분들이 필요로 할 때 이 분들의 손에 닿는 거리에 우리는 없었습니다 .존재했지만 보이지 않는 정당, 투명정당,, 그것이 이제까지 대한민국 진보정당의 모습이었습니다.' (431-432쪽)


통렬하다. 통쾌하다. 투명정당, 진보정당이 투명정당이었다면, 그간 다른 정당들은 보이지 않는 정당이 아니라 아예 드러내 놓고 빼앗아가는 정당이었을 것이다. 한데 어떤 정당 정치인도 노회찬처럼 이렇게 반성하지 않았다. 고치려고 하지 않았다. 여전히 그들은 노회찬이 비판한 투명정당보다 더한 정당으로 남아 있다. 그런 정당들의 본질을 알게 해주는 말, 투명정당. 그래서 이 연설은 더 소중하다.


더 많은 말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촌철살인. 노회찬의 말하기였다. 적절한 비유. 그렇다. 비유는 길어지면 안 된다. 그러니 이쯤에서 마치자. 다만, 앞의 말들을 좀 바꾸어서 끝내고자 한다.


"노회찬의 국회의원 당선은 한 인간의 작은 발걸음에 불과하지만 진보정당 전체에서는 위대한 도약이었다"


"노회찬 개인은 죽었지만 진보정당이 죽은 것은 아니다."


그의 마지막 말도 이러했다고 한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5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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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의 저택 폴라 데이 앤 나이트 Polar Day & Night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조호근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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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연대기]를 재미있게 읽었다. 한 작품을 재미있게 읽으면 다음 작품도 찾아 읽게 된다. 브래드버리의 이 작품 역시 [화성연대기]를 읽었기에 읽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핼로윈 데이라고 온갖 귀신들, 유령들 차림을 하고 즐기는 서양 축제. 우리나라에서도 이제는 핼러윈 축제를 즐기기 시작했는데...


이 소설은 그런 핼러윈 축제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시월의 저택에 핼러윈을 맞이하여 친족들이 모인다. 그런데 친족들의 구성이 특별하다. 인간 가족이 아니다. 유령 가족이다. 여기에 인간인 아이 티모시가 있다.


고양이도, 생쥐도 거미도 있고, 온갖 유령들이 시월의 저택에 모인다. 미라도 있는데, 이들에 대한 이야기 한편한편이 재미있다. 짧은 소설들이 실려 있는데, 각자 독자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서로 연결이 된다.


일종의 연작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읽으면서 가족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문학에 관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은 현실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특히 어린아이들에게는 상상의 이야기들이 현실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이야기가 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게 되면 문학은 자리를 잡을 수가 없게 된다. "에이, 그거 소설이잖아!" "소설 쓰고 있네!" 하는 소리는 사실이 아닌 허무맹랑한 소리, 들으나마나한 소리라는 의미로 쓰인다.


이런 반응이 주류가 되면 문학은 설 자리를 잃는다. 이 소설집에서 '오리엔트 북행 특급'이란 소설은 특히 이런 점을 생각하게 해준다. 창백한 남자, 그를 간호하는 여자. 하지만 남자는 합리주의 앞에서 죽어가고 있다. 이 남자의 병이 무엇인지 알게 된 여자는 남자를 합리주의에서 보호해주려 한다.


이때 남자가 생기를 얻게 되는 사건이 생기는데, 그것은 바로 아이들에게 유령이야기를 해주는 것이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에게서 남자는 생기를 얻게 된다. 이것이 바로 문학이다.


하지만 소설집의 끝부분에 가면 이 저택은 파괴되고 만다. 문학이 저 멀리 밀려난 시대를 상징하듯이.  


독자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키면서 작가 역시 생기를 얻는 것. 아마도 문학이 쇠퇴하는 시기에 그러에도 불구하고 문학은 우리와 함께 존재해야 한다고 브래드버리가 말하는 듯하다. 


또한 문학에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 시월의 저택에 온갖 종류의 존재들이 함께 하면서 다양한 사건을 만들어 가듯이.


이렇게 문학에 대한 은유로 이 소설집을 읽어도 괜찮겠단 생각을 했는데, 이 점 말고도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만화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면 참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미국에서 발간되었을 때는 삽화도 있었을텐데, 그 삽화까지 같이 실렸으면 참 좋았겠단 생각. 그리고 이 작품을 토대로 애니메이션을 만들면 참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이미 만들었는지는 확인해보지 않았다. 다만 유령을 다룬 애니메이션은 꽤 있으니...)  


이런 점에서 이 소설집은 아이들(청소년들)이 읽으면 좋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것은 소설 속에서 다양한 삶들에 대한 이해와 삶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원히 존재하는 유령들에게 입양되어 자라는 티모시에게 천 번 고조할머니(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 하면서 천 번을 거슬러 올라가는 할머니)가 넌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다. 이때 티모시는 "아뇨. 여러분처럼 되고 싶지 않아요." (221쪽)라고 하면서 "...제가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깨달으려면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삶을요...."(221쪽)고 한다.


즉 죽음이 있기에 삶이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소중한 삶을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함을 천 번 고조할머니의 말을 통해서 독자에게 전해주고 있다.


결국 유령이야기는 삶의 이야기다. 무한한 삶을 사는 존재들을 통해 유한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인간들에게 삶을 돌아보라고 하는 것이다. 티모시라는 아이가 온갖 유령들과 함께 살면서 깨닫게 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문학의 이야기이자 삶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소설을 통해서 상상 속에서 우리는 현실을 바라보는 거울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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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 (반양장) 창비청소년문학 107
천선란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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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끝에 실린 작가의 말로 이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뒤틀린 어른이 뒤틀린 아이를 만들고,그 아이가 자라 뒤틀린 어른이 되어 다시 뒤틀린 아이를 만드는 세상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게 온전한 어른이 사라진 세상이 되기 전에, 상처와 슬픔이 무기가 되어 또 다른 출혈을 일으키는 세상으로 향하지 않도록, 그런 마음으로 썼다.' (389쪽)


불모지의 땅을 산 사람이 있다. 그 땅에 화원을 만들겠단다. 미친 소리로 치부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화원엔 식물들이 자란다. 나인은 그런 화원에서 자란 아이다.


어느 날 나인은 실종된 아들을 찾는다는 전단지를 발견하고, 그 아이가 사실은 죽었음을 알게 된다. 가출이 아니라 죽음. 죽음에 관련된 아이. 그리고 그를 은폐하는 어른들. 나인 역시 모른 체 하면 그만이다. 누구도 알려고 하지 않는 일이기에.


하지만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슬픔을 나인은 외면하지 못하다. 그러다 그 즈음 자신이 지구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외계인.


그렇다. 우리는 자신과 다른 사람을 외계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렇게 외계인이라고 부르면서 그를 인정하면 얼마나 다행일까 싶지만, 외계인이라 언급하는 순간, 다름이 차별이 될 가능성이 많아진다.


외계인을 보았다고 주장하는 박원우는 그래서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한다. 물론 그의 가정형편도 거기에 한몫 보탰겠지만.


원우는 미친 놈 소리를 듣지만 그것으로 죽음에까지 이르러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권도현이라는 친구에게 밀려 죽게 된다. 그렇다면 권도현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연히 원우를 살리려 해야 했지만, 그의 부모는 원우의 죽음을 무마하려 한다. 없던 일로, 원우는 그냥 가출한 학생이 되어야 했다.


전후 사정을 숲으로부터 전해들은 나인. 나인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친구들과 힘을 합친다. 물론 여기에는 친구들만이 아니라 어른들의 도움도 받게 되고. 원우의 문제는 해결된다.


다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나인과 어울리는 친구들과의 관계, 이들은 나인을 무조건 믿어주고 함께 행동했다. 외계인이든 아니든 친구라는 관계가 달라지지는 않으니까. 


그렇지만 문제가 해결된 후 이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 나인 또한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하고. 


그렇게 사람들은 함께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따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나인 역시 마찬가지다. 이렇게 보면 이 소설은 나인의 성장을 다룬 소설이 된다. 나인은 여러 일을 겪으면서 성장한다. 외계인이든 아니든 자신이 나고 자란 이 땅에서 살아가기를 선택한.                                        

이렇게 소설은 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이 지구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 어떠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식물성을 띤 외계인 나인을 주인공으로 삼은 이유가 그것이다.


나인이 지구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지구에 뿌리를 내렸다는 말, 이는 바로 지구에서 함께 고통받으면서도 그것을 이겨내려는 삶을 선택했다는 말이다.


힘들다고 그냥 떠나버릴 수는 없음을. 그 힘듦 속에서도 삶을 찾아야 함을, 나인의 성장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소설에서 도현이나 주변 친구들이 원우를 대하는 태도는 다름을 차별로 인식하고 행동하는 경우다. 


작가가 '타인을 이해하지 못할 때, 타인에게 이해받지 못할 때 우리가 종족이 다른 외계인이라고 생각하며 언제나 마음이 편안해졌다.'(389쪽)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다름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아닐까 한다.


그런데, 과연 이런 자세를 지닌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인의 친구인 현재나 미래처럼 무조건 믿어주는, 그래서 다름은 그냥 다름일 뿐인 그런 자세를 지닌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오히려 세상엔 도현이처럼 친구였다가도 그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해 배제하고 차별하는 태도를 지닌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그들이 행하는 행동이 소설처럼 죽음에 이르게 하지는 않겠지만, 죽음과 비슷한 상태로 몰아가지는 않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도현이 주변 사람들이 원우를 배척하듯이. 다름이 바로 차별이 되어 배제하듯이.


그런 사회가 잘못된 사회고, 그런 어른들이 많은 사회가 바로 뒤틀린 어른들 사회라면, 바로 이 뒤틀린 어른들 사회를 바로잡으려고 하는 나인과 같은 아이가 있어야 한다. 그런 아이들이 외계인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공연히 튀는 아이들이라고. 하지만 이런 아이들로 인해 뒤틀린 어른 사회가 재생산을 멈춘다. 이런 외계인 같은 아이들이 있어야만 뒤틀린 사회가 바로잡힐 수 있다.


소설이 흥미로우면서도 무언가를 계속 생각하게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뒤틀리지 않은 외계인 같은 존재들을 우리가 찾으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으므로.


그러므로 이 소설을 읽고는 주변을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 역시 뒤틀린 어른들이 아닌지 하고. 이런 뒤틀림을 보여줄 외계인 같은 존재들이 주변에 있는지를... 그리고 주변에 있다면 감사해야 한다. 그들의 존재에 대해서.


그들을 경원하고 몰아내려고 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뒤틀림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외계인을 주인공으로 했지만, 굳이 외계인이라고 하지 않아도 좋다.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 그래서 생명을 죽이는 일에 분노하는 사람.


나인은 분명 외계인인 누브 족으로 나오지만, 이렇게 나인과 닮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사회에는 이런 외계인들이 많으니, 그들을 찾아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다. 찾으려는 마음을 먹는 순간부터 마음이 따스해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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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차일드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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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 기발하다는 표현을 하면, 누구나 생각할 수 없고, 특별한 사람만이 생각할 수 있다는 쪽으로 여겨질 수 있다.


특히 작가들의 상상력에 대해서는 작가라서 지닌 상상력이라는 생각을 하기 쉽다. 그렇기에 이런 상상력은 작가에게 맡기고 우리는 현실에 충실하자는 쪽으로 가기도 한다.


그런가? 상상력이 작가에게만 필요한가?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상상력을 지니고 있다. 자기만의 상상에 빠져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것을 글로 옮겨 남에게 읽히는 사람이 작가일 뿐이다.


옥타비아 버틀러 소설을 몇 권 읽었다. [킨]을 비롯하여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 재미있게 읽었다.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하기도 하면서.


이번 작품은 단편소설집이다. 일곱 편의 소설이 실렸다. 모두 다른 내용이지만,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단지 가상의 세계라고만 생각하지 않고 우리가 바라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또는 우리가 겪지 않았으면 하는 세계가 그려져 있기도 하고.


첫작품인 '블러드 차일드'부터 그렇다. 테란이 틀릭의 숙주가 된다. 숙주가 되어 아이를 낳게 된다. 그것도 여성은 인간의 아이를 낳아야 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남성이 숙주가 되어 다른 생명체의 아이를 낳아야 한다.


이런 세상. 보호자가 필요한 세상이고, 수술을 통해서 아이를 낳을 수밖에 없는 현실임에도 누군가는 해야한다는, 그래야 테란이 보호를 받고 종족을 유지할 수가 있다. 즉 누군가의 희생으로 종족이 유지되는 세상이다.


테란을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틀릭을 외계 생명체로 바꾼다면, 외계 생명체가 인간을 보호하면서 자신들의 종족을 재생산하는 대상으로 인간을 이용하는 세상? 어쩌면 외계 생명체에 대한 두려움을 일으키는 일들이기도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음을, 이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외계 생명체와 인간의 갈등과 공생을 다룬 소설이 하나 더 있는데, '특사'라는 소설이다. 외계 생명체가 지구에 온다면 침공일까? 그들과 공생할 수 있는 길은 없는가? 처음에는 서로 소통이 되지 않아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겠지만, 소통하려는 노력 속에서 서로가 타협할 수는 없을까?


'특사'라는 소설은 외계 생명체와 공생하는 인간의 존재를 보여준다. 앞으로 우주 시대라면 그렇게 살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최근에 감염병이 창궐하는데, 감염병으로 인류가 글을 읽는 능력을 잃거나 말을 하는 능력을 잃은 사회를 그리고 있는 '말과 소리'라는 소설은 섬뜩하다.


인간이 소통할 수 있는 도구인 말과 글을 잃는다면 어떻게 될까?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넘어갈까? 그렇게 될 가능성도 있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다 그럴 수는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되고 인류는 혼란에 빠지게 되겠지만.


그럼에도 누군가는 말과 글을 기억할 수 있다. 기억한다는 것이 질투를 유발할 수도 있긴 하지만 그들로 인해서 희망은 남아 있게 된다. 이 소설은 디스토피아에서 유토피아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 소설로 읽힌다.


이 소설집에서 무엇보다도 소설의 역할이 무엇인지,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 '마사의 책'이다. 신이 마사에게 인류를 구원할 능력을 주고 한 가지를 하라고 한다. 마사는 무엇을 선택할까? 그리고 마사는 자신의 선택을 기억하기를 원할까?


어쩌면 작가는 인류를 위해서 무언가 한 가지를 하는 사람이다. 작가의 책이 바로 그렇다. 인간에게 꿈을 주는 역할을 작품이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 또 작품이 인간에게 주는 의미를 이야기하는 소설로 읽을 수가 있다.


소설 외에 두 편의 수필이 실려 있는데, 한 편은 버틀러가 작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짤막하게 쓴 글이다. 비록 짧지만 버틀러의 삶을 엿볼 수 있어서 좋은 글이고, 한 편은 글을 쓰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재능이나 영감을 잊으라는 말, 오로지 습관에 기대라고 하는 말. 그렇다. 버틀러의 말대로 '습관은 실제로 나타나는 집요함이다'(279쪽)


이런 습관이 버틀러를 유명한 작가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버틀러를 흔히 SF작가로 분류한다. SF작가든 아니든, SF소설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버틀러의 말로 대답을 대신한다.


'과거, 미래, 현재에 대한 SF의 사고가 무슨 쓸모가 있을까? 대안적인 사고와 행동을 경고하거나 고려하는 SF의 경향은 무슨 쓸모가 있을까? 과학과 기술, 혹은 사회 조직과 정치 방향이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한 SF의 탐구는 무슨 쓸모가 있을까? 기껏해야 SF는 상상력과 창조력을 자극할 뿐이다. SF는 독자와 작가를 다져진 길 밖으로, '모두'가 말하고 행하고 생각하는 좁고 좁은 오솔길 밖으로 끌어낸다. 지금 그 '모두'가 누구든 간에 말이다.' (274쪽)


이게 어디인가? 버틀러의 소설이 바로 이렇게 '좁고 좁은 오솔길 밖'으로 우리를 끌어내고 있으니... 주어진 길에서 벗어나는 즐거움. 새로운 길을 걷는 즐거움. 버틀러 소설에서 느낄 수 있다. 그것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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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의태어의 발견
박일환 지음 / 사람in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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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와 모양을 흉내낸(?) 말을 의성의태어라고 한다. 어떤 말들은 명확히 소리를 흉내내었고, 또 모습을 흉내냈다고 구분할 수 있지만, 소리를 흉내내었는지, 모습을 흉내내었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 딱 의성어, 의태어로 구분하기 힘들다.


하긴 어떤 모습이나 동작에서 소리가 날 때도 있고 안 날 때도 있으니 의태어라고 해서 소리를 포함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고, 의성어라고 해서 모습이나 동작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러니 의성어, 의태어를 굳이 구분하기보다는 그냥 의성의태어로 하자.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세분해도 좋고.


박제천이 쓴 시 '통사론'에 이런 구절이 있다. 


'역사는 주어와 서술어만으로도 이루어지지만 / 시는 부사어를 사랑한다'


그렇다. 단순한 사실 전달이 아니라 감정을 담아서 전달하려면 부사어가 필요하다. 꾸며주는 말, 일명 수식언이라고 하는 말들이 말에 어떤 느낌을 더해준다.


그 중 부사어는 가장 쓰임이 많은데, 부사어를 이루는 말 중에 의성의태어는 표현을 더욱 생동감 있게 해준다.


건조한 말이 아니라 무언가 톡톡 튀는 듯한 느낌을 주는 말, 그런 역할을 바로 의성의태어가 한다. 이 책은 이런 의성의태어에 관하여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준다.


동작, 태도, 말과소리, 동물과 식물에 관한 의성의태어를 소개하고 있고, 그 말들의 어원에 대해서도 잘 설명하고 있다.


그 말이 어떤 상황에서 쓰이는지, 또한 어떤 느낌을 주는지, 비슷한 역할을 하는 말들이 무엇인지를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있어서 의성의태어뿐만이 아니라 우리 말을 어떻게 쓰면 더욱 효과적일지도 생각하게 해준다.


여기에 기존 사전(주로 표준국어대사전과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우리말 샘을 참조했다고 한다)에서 다루고 있는 방식도 비교해주고 있어서 같은 말이라도 사전 편찬자에 따라 어떤 대우를 받는지를 알 수 있다.


사전이 완전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사람들이 많이 쓰는 언어들은 사전에 표제어로 수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그리고 사전이 더욱 풍부하게 그 말의 어원 및 쓰임들을 각종 예를 들어서 수록해주었으면 한다.


요즘은 종이책으로 사전이 발간되기보다는 인터넷으로 다 찾아볼 수 있지 않나? 그러니 사전의 수정 작업도 예전에 비해서는 빨라질 수 있고, 또 용량에 제한받지 않고 수록할 수도 있으니 사전을 보면 그 말의 다양한 쓰임에 대해서 알 수 있게 해줬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의성의태어를 사전에서 찾아 그 말들이 어떻게 쓰이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이 책, 읽으면서 그냥 단순한 사실 전달의 말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담은 말을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의미를 담은 어휘를 알 필요가 있다는 점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박제천 시인의 말처럼 꼭 시에서만 부사어를 사랑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말에서 부사어를 사랑해야 한다. 그 부사어에 속하는 말 중에 의성의태어는 말맛을 살리는데 더 큰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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