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 2023년 여름호 - 통권 182호
녹색평론 편집부 지음 / 녹색평론사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녹색평론이 재발간 되었다.  


오랫동안 구독을 하면서 두 달에 한 번 만나는 녹색평론을 내 정신을 깨우는 죽비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한 해 남짓 휴간한 기간 동안 환경에 대한 감수성이 좀 무뎌진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재발간하고, 다시 받아서 읽어보니 역시 녹색평론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 해의 공백을 이번 호가 메워주고 있다고 해도 좋겠단 생각. 기후재앙과 전쟁과 평화와 민주주의가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민주주의는 전쟁을 막고 평화를 정착시키면서, 기후재앙을 막는 여러 정책들을 실시할 수 있다는 생각에 우리 삶에서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우치게 하는 이번 호이기도 했다.


보통 잡지가 휴간을 하면 그 휴간이 종간이 되는 수가 많다고 하는데, 격월간지에서 계간지로 바뀌기는 했지만, 녹색평론이 계속 발행된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이기도 한다.


녹색평론을 통해서나마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에 대해서 알게 되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행동을 변화시키고, 실천을 해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거기까지 가지 못해서 마음이 편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는 노력을 한다고 마음의 위안을 삼는다.


오랜만에 나온 녹색평론, 이번 호에서는 기후재앙과 전쟁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전쟁이 이리도 많은 탄소배출을 하는지 몰랐다. 단지 인명 살상만이 아니라 지구에게도 전쟁은 재앙임을, 그래서 전쟁은 기후재앙을 더욱 부추기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이번 호를 통해서 확실히 알게 되었고.


추정을 할 수밖에 없지만 그 통계에 따르면 온실가스 배출로만 따지면 '그 양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5.5%를 차지하는데, 하나의 국가라고 치면 중국, 미국, 인도 다음으로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나라에 위치하게 된다'(94쪽)고 하니, 기후재앙에 전쟁도 큰 몫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후재앙으로 인해서 세계는 갈수록 힘들어지는데, 우리나라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번 호에는 정부의 대책이 너무도 미흡함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것도 이번 정부 내에서 해결하려 하지 않고, 다음 정부에 해결을 미루고 있다고 하니, 다른 나라들에게 우리나라는 기후악당으로 비춰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 기후재앙은 단순히 남의 일이 아니다. 올해 꽃들이 피는 시기를 보라. 평년보다도 한두 주 더 빨라지지 않았던가. 또한 기후가 어떻게 될지 아직도 잘 모르고 있는데, 그럼에도 기후재앙이 다른 나라 이야기인 듯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다.


기후재앙을 막기 위해서는 평화가 필수적이고 (전쟁이 온실가스를 그렇게 많이 배출하니), 또한 농업에 대한 (기계식 농업이 아니라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농업) 관심이 높아지고, 그에 대한 정책이 적절하게 마련되어야 하는데, 아직 기후재앙을 극복할 대책을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있으니...


기후재앙과 전쟁, 평화, 농업, 그리고 무엇보다도 민주주의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이번 호를 통해서 알 수 있게 된다.


하승수와의 대담에서 이런 문제를 만나게 된다. 이 대담에서는 지방자치의 단위를 읍,면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 시골이라고 하는 데서는 읍이나 면이 지방자치의 기본 단위가 되어야 실질적 민주주의가 이루어지고, 그래야 그 장소에 사는 사람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다는 하승수의 주장을 곱씹어보게 된다.


여기에 더해서 웬델 베리의 삶을 소개하면서 농업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글. 농업이 우리 생명을 살리는 기본임에도 우리는 농업을 천시하고 있다는 사실. 특히 학교에서는 농업을 도외시하고 있으니 더 큰 문제라고 주장한다.


산업주의와 농본주의를 대조하면서 농본주의가 미래를 이끌어갈 사상이 되어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 더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한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나라 교육에서 농업은 너무도 적게 다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적게가 아니라 아예 안 다뤄지고 있다고 봐도 좋다. 특성화고등학교라고 하면 상업계와 공업계를 생각하지 농업계를 생각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현실을 봐도 그렇다.


생명이 직결된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업에 대해서 과연 어떤 교육을 하고 있는지, 도시뿐만이 아니라 시골에서도 농업은 교육과정에 속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 웬델 베리의 말을 이에 적용하면 우리는 미래를 위한 교육을 하고 있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IT교육, 코딩교육, 전자교과서 등등을 말하기 전에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먹을거리를 만들어내는 일에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농본주의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기후재앙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레 생기고,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려고 하게 될테니 말이다.


오랜만에 만난 녹색평론, 다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생각하게 한다. 앞으로 한 해에 네 번은 만날 수 있을테니, 녹색평론이 우리에게 길을 안내해주는 역할을 해줄 것이라 기대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3-06-12 1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6-12 14: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열다섯, 그럴 나이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나윤아 외 지음 / 우리학교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열다섯. 보통 중2다. 질풍노도의 시기라고도 하고 사춘기라고도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중2병이라고도 한다. 중2병이라는 말은 쓰지 말자는 움직임이 많아서, 가급적 그 말은 쓰지 않으려 하지만 여전히 그 말을 쓰는 사람도 있다. 사실 중2가 병은 아니지 않은가. 


[열다섯, 그럴 나이]라는 제목으로 다섯 편의 소설이 묶였다. 열다섯에 겪음직한 일들을 소설을 통해서 보여주고, 이 나이 대의 사람들이 읽으면서 자신만이 아니라 많은 열다섯들이 그런 일들을 겪고, 또 고민하면서 지낸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려는 의도가 담겼다고 볼 수 있다.


열다섯에 무엇을 고민하는가? 남들과 다른 자신의 모습을 꿈꾸고(영웅-히어로), 새로운 기술을 이용해 소통을 하며(스마트폰을 이용한 SNS-톡방), 자신의 현재 모습에 실망해 다른 삶을 꿈꾸기도 하고(이번 생은 망했어-이.생.망), 사이버 세계에서 뜻하지 않게 피해를 입게 되기도 하며(몸캠피싱), 친구관계로 고민을 하기도(인싸) 한다.


아마도 청소년기에 영웅을 꿈꾸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웅이란 세상과 동떨어진 특출난 존재가 아니라 바로 우리 주변에 있는 보통 사람일 수 있다는 사실.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서 영웅을 발견할 수 있을 때, 그럴 때 공상의 세계에서 현실의 세계로 넘어올 수 있음을 첫번째 소설, 탁경은이 쓴 '캡틴 아메리카도 외로워'에서 만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삶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사람. 그럼에도 무언가 조금이라도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영웅이 아닐까 하는, 그럼에도 그런 영웅은 외로울 수밖에 없음을 소설이 보여주고 있다.


그런 외로움을 견뎌내고, 자신이 바라는 삶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사람을 만나는 나이, 그 나이가 열다섯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여기에 수시로 울리는 까톡, 까똑 소리. 아마 하루에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은 그 소리를 들을 테다. 요즘 열다섯 살 사람들은. 하지만 과연 그 카톡으로만 소통이 잘 될까? 서로 바쁘다는 핑계로 만나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카톡으로 대화하는 세상이 과연 좋기만 할까?


이 카톡으로 인해서 벌어지는 일들이 이선주가 쓴 '앱을 설치하시겠습니까'에 나오고 있다. 누구나 편하게 쓰는 카톡 앱을 깔지 않은 사람이 있을 때 소통방법? 편한 앱인데 굳이 안 깔겠다고 하는 아이를 이해 못하는 아이들. 또 그때만 깔고 지우면 되는데도 깔지 않는 아이. 과연 어떤 아이에게 감정이입을 해야 할까? 


소설은 끝부분에 반전이 있다. 단지 앱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임을, 남들과 함께 어울리는 법을 잃어가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을 담고 있지 않나 한다. 꼭 열다섯의 문제는 아니다. 이는 지금 사회관계서비스망(SNS)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직면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열다섯의 고민을 넘어 우리 모두의 고민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현재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많다. 당연하다. 청소년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에 불만이 많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저런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한 때.


자신이 한껏 초라해 보이고 다른 사람은 다 멋있어 보이는 그런 때, 그런 때 보이는 모습을 환상을 동원해 범유진이 '악마를 주웠는데 말이야'란 소설로 썼다.


악마가 소원을 들어준다. 고전에서 많이 나오는 설정을 활용했다. 그리고 그 소원이 결국은 자신의 본 모습을 사랑하게 한다는 결말로 나아간다.


그렇게 부러워하는 다른 사람의 삶도 알고 보면 저마다의 고민과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소설이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라고, 자신에게서 출발하라고, 하지만 그 일이 얼마나 힘든지를 악마를 동원해서라도 다른 존재로 나아가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은 자신에게로 돌아올 수밖에 없고, 이번 생은 망했다고 말해도, 그 생이 바로 자신의 생이니, 여기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하는.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부작용이 속출했는데, 그 중 가장 심각한 것은 사람을 속이고 괴롭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소위 '피싱'이라고 하는 일들. 보이스 피싱은 잘 알려져 있는데 몸캠피싱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최근에 많이 붉어져서 아는 사람도 많아졌지만, 이 몸캠피싱이 청소년들에게 행해진다는 사실.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해도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가해자보다는 피해자가 더 고통받는 현실, 그런 현실을 나윤아가 '악의와 악의'라는 소설로 썼다.


현실적이다. 누구에게도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은 더 의미가 있다. 청소년들에게 경각심을 준다기보다는,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지녀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서 더 이야기하고 있다.


악의로 가득한 세상에서도 선의를 지닌 사람은 있는데, 청소년기에 세상에 대해서 지녀야 할 마음은 악의로 가득찬 세상이 아니라, 선의가 넘치는 세상이어야 한다.


어려울 때 누군가 손을 내밀어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의 악의에 어느 정도는 견딜 수 있다.


무엇보다 소설은 행복한 결말을 내지 않는다. 몸캠피싱이 쉽게 해결되지 않음을 소설이 보여주고 있는데, 그럼에도 바로 그런 일이 터졌을 때 대처하는 마음 자세가 중요함을, 세상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무엇보다도 자신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음이 중요함을 이 소설에서 느낄 수 있다.


마지막 소설은 청소년기에 가장 중시하는 친구 관계다. 서로 웃고 떠들고 함께 하는 친구 사이지만, 과연 그들은 서로를 잘 알고 있을까?


늘 아이들 중심에 있는 아이가 어느날 사라져 버리고, 그 아이를 중심으로 모여 있던 아이들이 정작 그 아이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음을 우다영이 '그 애'라는 소설로 펼쳐보인다.


또 소설을 읽다보면 친구란 어떤 존재인지 생각하게 된다. 내 주장보다는 상대의 말을 들어주고, 상대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친구 관계가 좋음을.


즉 친구를 잘 사귄다는 말은 상대의 마음을 읽을 줄 안다는 말이고, 소설은 사라진 그 애를 통해서 그런 자세를 가르쳐준다.


이렇게 다섯 편의 소설들이 열다섯에 겪을 만한 일들을 다루고 있다. 아마도 청소년들이 읽으면 바로 자신들의 이야기임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청소년들이 읽으면서 자신들의 모습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강남. 우리나라 부를 대표하는 곳. 부자들이 사는 곳. 이곳 아파트 값이 얼마나 비싼지 보통 사람들은 전세로 들어가 살기도 힘들다. 일반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하지만 강남이 처음부터 이렇게 부촌이었을까? 아니다. 강남은 강북에 비해 허허벌판이었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곳이 바로 강남이다.


이 강남 개발을 둘러싸고 얼마나 많은 이권들이 오갔을까? 이제는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지만, 강남 개발로 떼돈을 번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들이 떼돈을 벌 때, 순전히 자신의 노력만이 아니라 운과 연줄이 작동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강남 개발을 둘러싼 이야기. 역사 책이 아니라 소설로 만날 수 있다. 바로 이 책이다. 강남몽. 우리나라 고전소설에 '몽(夢)'자 들어가는 소설이 많은데 이는 현실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꿈을 빌려온 것이다.


황석영 역시 '지금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사람살이가 어쩌면 꿈과 같이 덧없는 가상의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378쪽. 작가의 말에서)것이라고 하면서 자신이 '강남몽'이라고 제목을 붙인 이유를 대고 있다.


즉, 강남 개발에 뛰어들어 떼돈을 번 사람들의 삶이 가상 현실과 같다고, 그들이 사는 삶은 진정 우리가 추구하는 삶일까 하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소설이 문제적 개인의 이야기라고 한다면, 이 강남몽은 강남 개발을 둘러싼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우리들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하고 있다.


주요 인물이 5명이다. 이들은 서로 얽히고설킨다. 그럴 수밖에 없다. 개발에 따르는 인물 군상을 황석영이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시작은 박선녀다.(1장 백화점이 무너지다) 유흥업소를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보면 된다. 박선녀는 김준의 내연녀가 되는데, 김준은 일제시대 일제의 정보원 노릇을 하다가, 해방 후에는 미군 정보국에 붙어 지낸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바탕으로 정보를 얻어 은퇴한 뒤에 개발 사업에 뛰어든다. 이렇게 김준의 이야기가 펼쳐진 다음에는(2장 생존만으로는 부족하다) 부동산업자가 등장한다.(3장 길 가는 데 땅이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세사기에도 공인중개사가 개입되어 있다고 하는 말들이 있는데, 당시는 더했다. 부동산업자와 짜고 땅값을 올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개발과 관련된 유흥업소, 건설업자, 그리고 부동산업자가 나왔으면 다음에는 누가 나와야 할까? 소설은 현실을 반영하듯이 조폭들이 등장한다.(5장 개와 늑대의 시간) 개발이 되면 상가가 많아지고, 이 상가를 끼고 주먹들이 진출하는 것이다. 단지 주먹만으로? 아니다. 이들 역시 권력을 끼고 활동을 한다. 


강남 개발을 둘러싼 하이에나들이라고 할 수 있는 네 주체가 나왔다. 이들의 삶은 부를 향해 가고 있지만, 그런 부는 모래 위에 지은 집에 불과하다.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소설은 '몽'자를 달고 있는 역할을 하듯이 미리 손을 털고 나온 사람을 제외하고는 다들 몰락한다.


현실의 부귀영화가 덧없다고 하는 '몽자류' 소설을 계승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고전소설의 결말을 따라가면, 이 중 누군가가 깨달아야 한다.


"아, 이것이 아니었구나!" 


현시대에 이렇게 고전소설의 주인공처럼 깨달을까? 아니다.이들은 실패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고, 다른 더 강한 외부 조건을 향해 가려고 할 것이다. 마치 국내 자산이 부족하면 외국 자산을 끌어오듯이.


나라 경제가 파탄났을 당시 국제 통화 기금(일명 IMF)에서 기금을 받고, 그들이 제시한 대로 노동유연화 정책을 펼치게 된 것처럼, 현실은 고전소설에서 말하는 깨달음으로 가지 않는다. 그냥 없는 사람만 더 힘들어질 뿐이다.


그렇다고 소설에서까지 이렇게 현실의 비참함을 고스란히 보여주어야 할까? 황석영은 여기서 한발 나아간다. 현실을 깨지는 못하겠지만, 그런 현실 속에서도 꿈 속 삶이 아닌 현실의 삶을 사는 사람이 있음을.(5장 여기 사람 있어요)


마지막 장에 나오는 정아를 통해서 현실을 사는 사람이 끝까지 살아남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몽'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정아가 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함께 갇혀 있던 박선녀가 자신이 정아 집안 사람들을 위해 다 해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한 말.


"사모님이 다 해줄 수 있단 말씀 다신 하지 마세요." (338쪽) 


이 말로 황석영은 꿈이 아닌 현실을 사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강남 개발로 떼돈을 벌고 여전히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사람들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앞에 나온 네 사람의 삶은 '몽'에 가깝다면, 정아의 삶은 꿈이 아닌 현실이다. 이렇게 꿈과 현실을 보여줌으로써 황석영은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생각하게 한다.


소설을 읽다보면 현대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이름들이 나온다. 소설이라서 약간 변형을 가했지만, 강남 한복판에서 무너진 백화점이라면 누가 모르겠는가? 또한 강남 개발에 얽힌 여러 이야기들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들이 추구했던 삶이 '몽'에 불과해야 한다고, 그런 꿈은 깨게 해야 한다고 마지막 장에서 '여기 사람 있어요'라는 말을 통해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억 전달자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0
로이스 로리 지음, 장은수 옮김 / 비룡소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늘 같음 상태'만 유지되는 사회가 있을까? 질문을 하지 않는 사회. 아마도 그런 사회가 늘 같음 상태의 사회이리라.


질문은 나와 다름을 인식하고, 다름을 통해서 함께 하려고 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는데, 다름조차도 주어진 채로 살아가는 사회라면, 그래서 질문을 할 수 없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행복한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온갖 차별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차별을 없애는 일은 좋지만, 차별이라는 명목으로 차이까지 없애는 일, 차이를 없애기 위해서 선택조차 없애는 사회는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없다.


선택이란 다름을 인식하는 일. 또한 책임을 지는 일. 선택할 수 없는 사람은 책임을 질 일이 없다. 자신의 생명, 직업, 가족 등을 선택하지 못하고 주어진 대로만 살아가야 하는 사회. 그 사회에는 미움도 질투도 없다. 다만 사랑도 우정도 없다. 그냥 주어진 대로 살아갈 뿐이다.


따라서 이런 사회에서는 기억도 없다. 개인의 기억, 집단의 기억이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해서는 안 된다. 기억이란 과거를 현재로 불러오는 일. 기억이 있다면 늘 같음 상태는 이루어질 수가 없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사회는 바로 그런 사회다. 모든 생활이 통제되는 사회. 하다못해 사람들이 통제하기 힘든 식욕, 색욕까지도 통제하는 사회. 가장 개인적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부도 위원회에서 지정해주는 사회니, 색욕이 발동할 수가 없다. 알약으로 해결해 버린다. 누구도 의문을 갖지 않은 채.


자신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는 모두 감시되고 있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할 존재들은 '임무 해제'라고 해서 다른 세계로 보내진다. 말이 좋아 임무 해제지, 그것은 죽음이다. 그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다른 존재들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기억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기억은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는 지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돌발적인 상황이 생겼을 때 과거에서 해결책을 가져오는 역할을 누군가는 해야 한다. 그래서 그 사회는 누구도 기억을 가지면 안 되지만, 단 한 사람만은 모두의 기억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런 임무를 맡은 사람을 기억 보유자라고 한다.


그는 모든 기억을 갖고 있기에, 이 사회에서 유일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모두가 기계처럼 살아가는 사회에서 홀로 인간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 고독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자신은 인류가 그동안 겪어왔던 기억들을 모두 소유하고 있으므로. 이렇게 기억 보유자로 선택된 조너스. 그가 기억을 전달받으면서 깨닫게 되는 일.


그가 살고 있던 세계가 진실한 세계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고, 임무 해제가 무엇을 뜻하는지 진실을 알게 되면서, 그는 하나밖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사회에서 탈출하게 된다.


어쩌면 기억 보유자는 판도라의 상자라고 할 수 있다. 그에게는 모든 기억이 담겨 있다. 이 기억은 그만이 간직해야지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서는 안 된다. 판도라 상자처럼 열려서는 안 된다. 이 사회는 그렇게 기억 보유자에게만 기억할 수 있는 책임을 지우고 있다.


하지만 조너스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기로 한다. 기억은 상자 속에 담겨 있기만 해서는 안 된다. 기억은 각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그렇게 기억을 사람들에게 돌려주려 조너스는 탈출한다.


그 다음은 아마도 혼란이겠지. 고통이겠지. 선택하지 않았던 삶에서 선택하는 삶으로 돌아간다는 일은 고통과 용기를 수반하니까. 또한 책임을 동반하니까. 


소설은 조너스가 떠난 다음 마을을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조너스가 희망을 품고 다른 세계로 가는 장면에서 끝난다. 마찬가지다. 조너스가 마을을 떠날 때 겪게 되는 고통, 좌절을 마을 사람들도 겪게 되겠지.


눈 내리는 날, 언덕을 힘겹게 조너스가 오르듯이, 마을 사람들도 돌아온 기억 때문에 힘겨움을 겪게 될 터이다. 다만 조너스는 언덕에 올라 다른 세계를 본다. 다른 세계로 갈 썰매를 탄다. 마을 사람들도 아마 이 힘겨움을 겪으면서 누군가는 내리막을 달리는 썰매를 탈 것이다.


이렇게 소설은 디스토피아 세상을 그리고 있다. 사람들은 아무런 의문 없이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에게는 '행복'이라는 말은 있을 수 있어도 행복을 느낄 감정은 없다. 그러니 '사랑'이라는 말은 쓰일 수가 없는 사회다. 


"절 사랑하세요?" ... "아버지 말씀은 네가 매우 일반화된 단어를 사용했다는 거야. 그 단어는 너무 무의미해서 거의 쓰이지 않게 되었지." ... "넌 이렇게 물었어야 했어. '어머니 아버지는 저와 즐거우세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래'란다." (216-217쪽)


이런 사회다. 개인의 감정은 철저하게 감춰야 하는 사회. 이런 사회에 책은 필요없다. 책은 해악이다. 그래서 이 사회에서는 책을 읽을 수가 없다. 책의 존재조차 알리지 않는다. 기억 보유자에게만 책은 존재한다.


'늘 같음 상태'가 바로 이렇다. 하지만 기억의 저장소는 책이다. 또 늘 같음 상태에 균열을 내는 것은 예술이다. 기억 전달자가 된 전 기억 보유자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조너스는 색깔을 볼 수 있는 능력(미술이라고 해도 좋겠다)이 있었다. 예술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 그런 능력이 그들을 기억 보유자가 되게 한다.


하나의 세계로 달려갈 때 여러 세계를 보게 만들어주는 역할, 그것이 바로 예술의 역할임을 소설은 잘 보여주고 있고, 책은 인류의 기억 저장소임을 말해준다.


그러니 이 소설은 과거의 소설이 아니라, 고도로 발전해 가는 세계, 앞으로 최첨단 아이티(IT) 기술이 발전해, 인공지능을 비롯한 기술발전으로 디지털화 되어 가는 세상에서 아날로그적 삶에 대해서 생각해야 함을 제시하는 미래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쟁과 약, 기나긴 악연의 역사 - 생화학무기부터 마약, PTSD까지, 전쟁이 만든 약과 약이 만든 전쟁들
백승만 지음 / 동아시아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쟁과 약은 상반될 것 같지만, 함께 가는 경우가 많다. 전쟁은 적을 죽음으로 몰아가야 한다. 마찬가지로 약도 몸에 들어온 안 좋은 요소들을 쫓아내야 한다. 즉 상대에 대한 죽음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또한 전쟁은 가능하면 우리 편의 피해를 최소화 해야 한다. 약도 마찬가지다. 우리 몸에 대한 해로움을 최소한으로 해야 한다. 그리고 전쟁이나 약이나 다 긴급한 상황에 쓰인다. 물론 오래도록 준비도 해야 한다. 오랜 준비, 그리고 과감하고 빠른 실행. 이것이 전쟁과 약의 공통점이다. 


하지만 보통 전쟁은 죽음, 약은 살림으로 대별된다. 전쟁과 약을 함께 생각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이 책은 전쟁과 약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간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약을 이용하는 경우, 이 경우는 생물학 무기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지금도 무서운 질병인 페스트 균을 무기로 사용한 적도 있다고 하고, 스페인 독감을 연구하여 그를 무기로 쓰려고 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반대로 우리 편의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 약을 개발해야 하기도 한다. 약을 통해서 우리 편의 전력 상실을 막고, 상대편을 위기로 몰아넣기도 한다. 


이렇게 전쟁에 무기로 사용하기 위해서나 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그런 질병들의 원리가 밝혀져야 한다. 전쟁을 통해서 질병에 대한 연구가 깊어지고, 전쟁이 끝난 다음에 일반인들을 치료하기 위한 약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전쟁과 약은 관계를 맺으며 발전해 왔다. 지금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이 책의 끝부분에서 외상후스트레스 장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그 점을 반증한다.


전쟁이 끝난 뒤에 특히 미국에서 베트남 전쟁이 끝난 뒤에 더 잘 알려진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는 베트남 전쟁 이후에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을 거치면서 그 심각성이 잘 알려졌다. 또한 그를 치료하기 위한 약들도 개발되고 있는 중이고.


단지 전쟁만이 아니다. 전쟁과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이런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를 겪게 되니, 전쟁으로 인해서 만들어지는 약들이 일상생활에서도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에는 다양한 질병과 전쟁의 관련성이 소개되고 있다. 인류가 질병을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했던 과정도 잘 나와 있다. 물론 전쟁이 꼭 약의 발전을 이끈다고 할 수만은 없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짧은 기간에 집중적인 투자와 연구로 약의 발전을 이끈 경우도 있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그 전부터 꾸준한 연구의 집적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그렇게 만들어진 약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도 잘 고려해야 한다고 한다. 항생제가 우리 몸을 지켜주는 역할을 했지만, 내성이 생긴 균들이 등장해(일명 슈퍼 박테리아라고 하는 것들) 항생제를 무력하게 만들고 있듯이, 약도 잘 써야 한다고 한다.


약은 아무리 좋아도 우리 몸에 외부에서 들어온 외부세력일 수밖에 없다. 이런 외부세력을 우리 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저자는 그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전쟁과 약이라는 제목과는 관련이 없는 듯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이 말도 전쟁과 관련이 있다.


'약을 사는 행위는 불편해야 한다. 제도적으로 불편하게 만들어야 한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도 논의할 수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약을 사는 과정은 최대한 불편하게 하는 것이 맞다.'(310쪽)


전쟁은 가능하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약도 가능하면 복용할 일이 없도록 만드는 것이 좋다. 그 점에서도 전쟁과 약은 비슷한 점을 지니고 있다.


다양한 약이 어떻게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쉽고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어서 좋은 책이다. 지금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고 쓰는 약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나왔는지, 또 그 약의 효능과 부작용은 어떤지 이 책을 읽으면서 만나보자.


약을 통해 인류가 겪어온 현대사를 알게 되기도 하니, 그야말로 일석이조를 이룰 수 있는 책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즐라탄이즐라탄탄 2023-05-31 18: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쟁과 약의 관계를 보면서 지난 몇년간 유행했던 코로나 바이러스와 이를 막기 위해 세계굴지의 제약회사들이 만들었던 각종 백신들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위기가 곧 기회다‘라는 말처럼 위기의 순간에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들이 새롭게 개발되고 그러면서 인류가 발전해 나가는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kinye91 2023-05-31 19:04   좋아요 1 | URL
그 동안 축적되어 왔던 성과들이 위기 상황에서 결실을 맺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전쟁은 없어야겠지만 약은 앞으로도 계속 연구되고 발전되어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