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 - 미투 운동에서 기후위기까지
리베카 솔닛 지음, 노지양 옮김 / 창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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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미국 사회에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리베카 솔닛의 글을 모아놓은 책이다. 읽으면서 역시 솔닛이야 하게 하는 책.


일어났지만 보이지 않았던 일들, 말해야 하지만 말하지 못했던 일들에 대해서 솔닛은 보여주고 말하고 있다. 감추려고 하지 않는다. 솔닛에게 진실은 말해져야 한다. 


그런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약자인가, 강자인가? 책 제목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


두 가지 의미가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누구의 이야기인가에서 말해지지 않았던 사람들, 우리 주변에서 늘 일어나고 있었지만 모른 체 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뜻도 있겠고, 반대로 그렇게 힘없는 사람들은 말을 하지 못하게 하고 오로지 자신의 말만을 했던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는 생각이 든다.


즉 '누구'란 말에는 강자와 약자 쪽, 어느 쪽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이야기를 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바로 강자다. 이야기의 대상이 되는 존재는 약자다. 지금까지는 그래왔다.


강자는 이야기를 하고, 약자는 이야기를 억압당해 왔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조차도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약자들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한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를 이끌고, 또다른 이야기들이 꼬리를 물고 계속 나온다. 세상을 향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말을 한다는 것은 이제는 강자에 의해 입을 다물고만 살지 않겠다는, 삶의 주체로 살아가겠다는 선언이자 행동이다.


이런 점에서 미투 운동도 나왔고, 또 다른 많은 운동들이 나왔다. 그럼에도 여전히 약자들은 이야기하기를 꺼려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약자들의 이야기는 강자들의 관점으로 굴절된다. 강자들이 변형시킨 이야기들만을 진실인양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솔닛은 이 점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라는 말 속에서 우리는 강자가 왜곡시킨 말과 진실을 이야기하는 말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녀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말잔치가 벌어질 때가 있다. 선거 때면 온갖 말들이 난무한다. 그런 말들이 나돌아다닐 때, 솔닛의 이 말 '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라는 질문을 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한 이야기인가, 아니면 약자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어 말하는 이야기인가? 약자에 공감하는 이야기인가, 약자를 억압하는 이야기인가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이 책에는 그런 조작된 이야기들의 사례가 많이 나온다. 


우리가 민주주의 국가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미국에서 이런 거짓들이, 이런 폭력들이 행해지고, 이 행위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사회 분위기가 여전하다는 사실에서, 최근에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사람들에 대해서 만나게 된다.


한편 한편의 글들이 다 좋지만, 그 중에 이런 말이 나오는 글 '영웅의 등장은 일종의 재난이다'를 읽으면 뛰어난 개인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된다. 이 중에 이런 말...


'긍정적인 사회적 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을 뛰어넘기보다 그 사람들과 손을 잡아야 한다. 변화는 한 사람의 행동이 아닌 공동 작업에서 비롯된다. 이때 필요한 자질은 전통적으로 남성적이라기보다는 여성적이라 여겨졌던 특징, 스포츠맨보다는 모범생이 갖춘 자실이다. 즉 경청하기, 존중하기, 인내하기, 협상하기, 전략과 계획 짜기, 이야기 만들기 등이다. 하지만 우리는 고독하면서 특출난 영웅을 좋아하고, 주먹 싸움과 멋진 근육을 사랑한다.' (228쪽)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바로 이것이다. 손잡고 함께 행동하기. 이런 일들을 말끔하게 해결해줄 헤라클레스는 없다. 아니 있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우리의 이야기를 그에게 넘겨주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솔닛의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간 우리 사회에서도 어떤 사람들이 주로 이야기를 했는지 생각하게 됐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 묻혀버렸던 수많은 약자들의 이야기가 이제는 우리에게 들리게 해야 한다.


그래서 이젠 이야기의 주인공이 강자가 아니라 바르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진실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행동할 수 있을 때 그 사회는 편견과 혐오, 차별이 없는 사회가 된다. 우리가 원하는 사회가 그런 사회 아닌가. 그런 면에서 우리 모두는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걸 누군가가 막아서는 안 된다.


어떤 책을 읽어도 결코 실망을 주지 않는 솔닛이다. 이 생각을 또 하게 만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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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 - 어쩌다 자본주의가 여기까지 온 걸까?
데이비드 하비 지음, 강윤혜 옮김 / 선순환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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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를 모르는 사람들도 있겠다. 이제는 한물 간 사상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다. 그만큼 마르크스에 대한 연구는 줄어들었다. 그리고 그에 관한 책들도 많이 줄었고. 우리나라 학계에서도 마르크스 경제학이라고 할 수 있는 정치경제학을 강의하는 교수도 많이 줄었다. 한때 서울대 김수행 교수의 후임을 놓고 설왕설래한 경우가 있었다. 김수행 교수는 우리나라에 자본론을 번역하기도 한, 정치경제학을 전공한 교수였는데, 그 후임으로 정치경제학을 전공한 교수를 뽑지 않았다고 한다. 서울대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한 교수는 없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여전히 마르크스주의를 주장한다. 한물간 사상가가 아니라 지금 꼭 필요한 사상가라고, 우리 시대를 넘어 새로운 시대를 열 때 그 열쇠를 제공하는 사람이 마르크스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 여러 곳에서 마르크스의 글을 인용하고 있다.


우선 그는 자신이 마르크스주의자(?)임을, 정확히는 사회주의자임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이제 사회주의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사회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주변부가 아닌 핵심 과제로 두고 싶어하는 운동'(90쪽)이다. 그리고 이런 사회는 사람들이 부유하게 사는 사회인데, 그때 말하는 '부란 잉여노동시간을 좌지우지하는 데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과 사회 전체가 직접적인 생산에 필요한 시간 외에 이용할 수 있는 시간에서 생기는 것이다'(324쪽)라고 하고 있다.


그러니 이런 사회에서는 노동시간은 하루 6시간이 되어야 한다. '우리 삶의 두 가지 기본적인 요소는 주거지에서 보내는 일상생활과 일터에서 보내는 일상적인 노동의 리듬' (274쪽)이라고 하는데, 이런 리듬이 깨진 사회가 바로 자본주의 사회인 것이다. 일상적인 노동의 리듬이 깨지면서 주거지에서 보내는 일상생활도 흔들리고 있는 상태인 사회가 된다.


그런 사회에서 사람들은 불안과 분노에 차 있게 된다. 이들에게는 어떤 계기가 있으면 폭발하게 되는데, 그 폭발이 자본가나 권력자들에게 향하지 않고 약자들에게 향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팬데믹에 빠져 있을 때 소수자들을 향한 분노들이 어떻게 표출되었는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또한 이를 이용하는 정치가들이 있음도 알고 있고.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가 지니고 있는 내재적인 문제라고 한다. '자본의 관점에서 보는 노동이 어떤 것인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입니다. 즉 노동은 사용가치에 불과하며, 생산에 필요한 한 가지 요소일 뿐입니다. 따라서 일회용이며, 일정한 환경과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취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그러나 노동자에게 노동은 가족의 생활이며, 사회관계이며, 공장에서 일어나는 일인 동시에 지역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모든 것이 연결되어 일어나는 일이며, 노조의 일원으로 수행하는 일입니다.' (289쪽)라는 말로 저자는 정리하고 있다. 사람을 목적으로 대하지 않고 수단으로 대하는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라는 말이다.


상황이 이런 데도 사회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지내온 것과 같이 소외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물론 사회를 바꾸는 일은 단번에 되지 않는다. 저자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냥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자본주의 사회가 지닌 문제점을 지적하고 알리는 일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들 삶을 자유롭게 하자고, 부유한 사회에서 살아가도록 하자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우리의 과제는 현 사회에 잠재되어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잘 살펴서 그 대안이 될 수 있는, 보다 사회주의적인 시대로 평화롭게 전환될 수 있도록 모색하는 것입니다. 혁명은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기나긴 여정입니다.'(28쪽)라고 말하고 있으니 그 과정이 쉽지 않음을 저자 역시 지적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으로 더 힘들어진 사람들이 누구인지 우리는 온몸으로 겪고 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지도 알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이 틀에서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없다면 다른 방법을 모색해 봐야 한다. 물론 그 방법은 평화적이어야 한다. 지금은 폭력으로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시대는 아니다. 그리고 폭력은 폭력을 부를 뿐이니...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그가 왜 사회주의를 주장하는지, 그리고 그런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 알아야 할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는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사회주의나 자본주의라는 사회체제를 떠나서 저자는 '개인의 자유와 해방의 진정한 뿌리는 하루에 6시간 노동을 통한 집단적인 행동으로 우리의 기본적인 욕구가 해결되고 나머지 시간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는 상활 속에 있습니다'(331쪽)고 말하고 있다. 지금 우리 역시 6시간 노동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이처럼 이 책은 기존 체제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다른 상상력을 동원해 해결하려는 자세를 지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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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 에콜로지와 민주주의에 관한 에세이
김종철 지음 / 녹색평론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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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속담이 생각난다. 아주 조금씩, 서서히 우리들에게 다가와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게 해, 알아차리는 순간은 이미 다 젖어 있게 되는 상태. '시나브로'라는 우리말 부사가 이렇게 적절하게 잘 맞는 때가 바로 지금이다.


기후위기라는 말을 넘어서 이제는 기후재앙이라는 말을 써야 한다고 하는데, 미세먼지 나쁨은 일상이 되었고, 감염병들이 도처에서 창궐하고 있는데, 비단 사람만이 아니라 동물들에게도 온갖 감염병들이 확산되고 있는 상태, 이것들의 위험을 깨달은 순간에는 이미 널리 퍼져 있는 상태.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라도 시작한다면 늦지 않은 상태가 될 수 있는데도, 이왕 젖은 옷이니 갈아입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그때 그때 일시적인 처방에만 힘쓴다면,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가랑비에 옷 젖는 일은 반복될 수밖에 없는데...


이 책은 김종철 선생의 생태사상론집이다. 이 책에 수록된 많은 글들이 이미 [녹색평론]에 실린 글들이지만, 그 책에 실리지 않은 글들도 있어서 김종철 선생의 생태사상에 대해서 일별하기엔 좋은 책이다. 그것도 2000년대 글만 모아놓았으니, 시대에 뒤떨어진 글들도 아니다.


하긴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글이나 말은 시대를 넘어선다. 그 시대에만 국한된 말ㅡ글이 아니라 인류 역사를 통해서 필요한 말-글이 된다. 왜냐하면 그들의 말은 현재만을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류가 지속적으로 이 지구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때문에 이들의 말-글에는 현대만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가 함께 담겨 있다. 그러니 그런 말-글들에서 시대의 한계를 인식하기는 힘들다.


김종철 선생의 주장을 한 마디로 말하면 생태문명으로 전환하자이다. 근대문명은 차별의 문명이고, 약자들의 착취를 기반으로 한, 또 자연파괴를 기반으로 한 문명이기에 이대로 지속할 수는 없다고 한다.


생태문명으로, 사람들이 생활 모습을 바꾸지 않으면 지속가능한 삶은 힘들어진다고 한다. 그렇다면 생태문명이란 무엇일까? 간단하게 딱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이 말을 중심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우리의 삶의 방식을 영구적인 지속이 가능한 방식, 즉 자연과 인간 사이의 물질적 대사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순환적' 방식으로 갈 수 있는 길을 탐구하고, 가능한 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 그 방향으로 전환하려고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 영구적으로 인간다운 삶의 영위를 보장하는 거의 유일한 생존·생활 방식이 농사라는 점을 재인식하고, 그 농사의 궁극적인 토대인 토양을 건강하게 가꾸고 보존하는 것이랴 말로 얼마나 중요한가를 우리는 숙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 우리의 집단적 삶의 운명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의사결정 과정, 즉 '정치'가 합리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안된다. (7쪽)


이런 이야기를 주제별로 묶어서 이 책에 실었다. 김종철 선생이 이야기하는 농사는 대농, 기업농이 아니라 소농을 말한다. 소농 개념에 유기농이 포함되어야 하고, 다품종 소량 생산, 자급자족할 수 있는 농사를 이야기한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농업, 기계와 화학비료를 이용해 대량으로 생산하는 농업, 돈이 되는 환금작물을 중심으로 하는 농업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1장)


소농 중심으로 서로 돕고 사는 자치가 살아있는 농촌을 이야기한다. 그러기에는 비대한 국가보다는 지역자치가 살아있는 사회를 꿈꾸게 된다. 이는 바로 민주주의와 직결되는데, 어떤 민주주의냐 하면 형식적 민주주의가 아니라 시민들이 참여하는 민주주의를 말한다. 그래서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할 수 있는 시민참여 민주주의에 대하여 고민하고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2장)


시민참여가 활발해지기 위해서는 삶에 여유가 있어야 한다. 생계에 급급하다보면 참여하고 싶어도 참여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기본소득을 이야기한다. 지금 대선 후보들 중에 기본소득을 이야기하다가 철회하는 경우가 있는데, 김종철 선생은 예전부터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글에서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사람들 주장이 지금도 통용이 되고 있고, 기본소득에 대한 반대여론이 더 높은 상황이니, 이 장을 읽고 기본소득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되어야 할 거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대통령 선거가 있는 올해를 앞두고 심도 있는 논의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수박 겉핥기 식으로 넘어가지 말고 철저한 검토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기본소득을 기본배당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하는데... 이 기본소득과 더불어 은행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은행에 대해서도 많은 논의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하고. (3장)


4장에서는 우리나라 촛불시위 또는 촛불혁명에 대해서 그 의의를 이야기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시민들이 참여해서 정치에 영향을 끼친 대표적인 사례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 글에서 '시인 김해자는 근작 시 <여기가 광화문이다>에서 "대통령 하나 갈아치우자고 우리는 여기에 모이지 않았다"고 일갈한다. 이것은 지금 주말마다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오는 수많은 시민들의 공통적인 심경일 것이다'(324쪽)라고 하고 있다. 


그렇다. 대통령 한 사람을 바꾸자고 촛불을 들지 않았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하기 위해서 그 추운 날에도 촛불을 들고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광장에 나섰다. 이 말, 지금 또다시 대선을 앞두고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과연 우리는 대통령 한 명 바꾼 것에서 얼마나 나아갔을까 생각하게 된다. 


마지막 5장에서는 탈핵에 관해서 이야기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여전히 논쟁 중인 탈핵이다. 원자력발전을 포기하지 않고 외국에 수출까지 하는 나라가 됐는데, 기후위기를 벗어날 길은 원자력발전이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꽤 있으니... 하지만 원자력발전이 지닌 이면에 대해서 김종철 선생은 이 글들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생활 형태를 바꾸면서 실질적 민주주의를 이루어 지역자치를 이루고 다품종 소량생산을 하면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더 이상 성장지상주의에 빠지지 않는 그런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생태문명'이라는 말로 정리해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고 한다. 기후위기는 기후재앙이 되었다고, 그러니 변해야 한다고.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변해야 하기 때문에, 어떻게 변할 것인가에 대해서 논의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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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번 버스 - 두 명의 십대와 그들의 삶을 바꾼 그날의 이야기 생각하는 돌 25
대슈카 슬레이터 지음, 김충선 옮김 / 돌베개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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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에 기반한 이야기라고 한다. 읽으면서 아직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미국이라는 나라가 인종다양성을 존중하고 있지만, 인종 차별 역시 여전한 나라라는 사실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

 

하긴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는 이유로 언제 경찰에게 총을 맞을지 모르는 불안감을 늘 지니고 살아가야 하는 사회라고도 하는데, 아프리카계 미국인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불안감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가 바로 미국 사회 아닌가 한다.

 

버스에서 방화 사건이 일어난다. 공공 운송수단에서 다른 사람들이 타고 있는 상태에서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불을 지른다?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일을 저지른 사람은 인종, 경제력, 성별을 막론하고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만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합당한'이라는 말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 문제가 된다. 무엇이 합당한 처벌인가? 법전에 나와 있는 대로 판결하고 집행하면 합당한 벌을 준다고 할 수 있는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법률을 적용해야 하는가? 이런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같은 사건은 없다고 하더라도 비슷한 사건에 같은 형량을 구형하고 판결해야 합당하다고 할 수 있는가?

 

버스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불을 지른다. 그 사람은 하체에 심각한 화상을 입는다. 불을 지른 사람은 어떤 처벌을 받아야 할까? 그가 어떤 처지에 있느냐에 따라 다르다. 또한 피해자가 어떤 처지에 있느냐에 따라서도 다르다.

 

상황과 사람에 따라 다른 판결을 내리는 일을 '합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공정이 화두가 되는 우리 사회에서 무엇이 공정인가와 맞물리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이 사건을 중심으로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주변 친구들, 가족들 이야기를 펼쳐간다. 여기서 가해자를 알려주자. 가해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다. 경제적으로는 중산층 이하라 할 수 있고, 학력은 고등학교를 아직 졸업하지 못한, 학교를 성실하게 다니지 않는 사람이다.

 

이렇게 그에 대해 서술하면 가해자에 대한 동정심이 많이 줄어든다. 가해자는 사고를 많이 친 사람이구나. 앞으로도 더 많은 사고를 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니 가해자를 교도소에 보내 사회에서 격리시켜야 한다고 결정하기 쉽다.

 

경찰이나 언론에서 그렇게 판단하고 일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이게 공정인가? 이것이 과연 가해자에게 합당한 판결을 했다고 할 수 있는가.

 

피해자를 말해 보자. 피해자는 남성과 여성 어느 한쪽 성에 속하지 않는 에이젠더다. 피해자는 남자로도 여자로도 규정받고 싶어하지 않는다. 외모는 남성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는 치마를 즐겨입는다. 사고가 난 그날도 피해자는 치마를 입고 있었다.

 

피해자 역시 사회에서 소수자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는 혐오 표현에 쉽게 노출될 수도 있다. 피해자가 살고 있는 도시가 성소수자에 대해서 열려 있는 도시고, 피해자가 다니는 학교 역시 성에 대해서 고정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가해자는 악당 쪽으로 인식되기 쉬운데, 피해자가 성소수자다. 쉽게 그림이 그려진다. 혐오 범죄다. 아프리카계 흑인이 성소수자를 혐오해서 불을 지른 사건. 그렇다면 가해자는 용서받지 못할 범죄자가 된다. 아직 성인이 아니라고 처벌을 약화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성인처럼 죄를 물어야 한다.

 

사건은 이렇게 전개된다. 피해자, 가해자에 대해서 더 알아보지도 않고. 숨겨진 진실은 무엇일까? 많은 사실들이 감춰져 있다. 더 알려고 하지 않는다. 가해자가 혐오 감정을 지니고 불을 지른 것이 아닌데도 그렇게 몰아간다. 그에게 과연 어떤 처벌이 '합당한' 처벌일까? 이 책은 그 점을 생각하게 한다.

 

청소년 범죄에 대처하는 우리의 방식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자, 그런 청소년을 감옥에 가둬두면 '합당한' 처벌일까? 이 책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뉴욕 대학교 산하 범죄사법연구소의 소장이자 혐오죄 관련 법률 전문가이기도 한 제임스 B. 제이콥스는 이렇게 설명한다. "혐오죄 법안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자유주의자들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이들은 대량 투옥 정책의 열렬한 반대자이기도 합니다. 이런 식으로 아이러니 위에 새로운 아이러니들이 쌓여 갑니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구금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교도소야말로 반사회적인 태도를 양성하기에 딱 좋은 인큐베이터라고 할 수 있거든요." (204)

 

이 말에 대해 잘 생각해 봐야 한다. 이 책은 가해자가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는 서술하고 있지 않다. 감옥에서 달라져 가는 모습으로 감형을 받은 사실만 기록하고 있다. 피해자는 대학에 진학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는 모습으로 서술하고 있다.

 

비슷한 나이 대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삶이 달라지는데, 이들의 삶이 어디에서 만나게 될지, 우리는 이들의 삶이 만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사회가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이고, 그런 사회가 바로 가해자에게는 '합당한' 벌을, 피해자에게는 '합당한' 보상을 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이 책 57번 버스에서 일어난 사건, 이 사건을 둘러싼 언론과 경찰, 재판 과정. 그리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친구, 가족들의 이야기를 통해 과연 무엇이 '합당한'지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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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모로우랜드 - 공상을 현실로 만드는 위대한 여정
스티븐 코틀러 지음, 임창환 옮김 / Mid(엠아이디)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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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공상을 현실로 만드는 위대한 여정'이라고 책 표지에 적혀 있지만, 공상이라는 말보다는 상상이란 말을 쓰는 편이 좋다. 상상은 공상과 다르다. 터무니 없는 생각이 아니라 언젠가는 가능한 상상. 그렇다. 인간은 상상을 현실로 만든다. 그것이 언제가 될지가 문제일 뿐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생각해 낸 무엇은 언젠가는 현실이 될 수 있다. 이때 우리가 생각해 낸 무엇에 윤리적이지 않다면, 나중에 현실이 되었을 때 문제가 될 수 있다. 결국 상상에는 책임이 따른다. 책임의 윤리를 기술에 적용하지 않는다면 무한대로 기술은 확장되고,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될 수 있다.

 

이 책에 나온 유전자 정보를 가지고, 생물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 유전자 정보를 분석해서 질병을 치료한다는 긍정적인 측면과 그 유전자 정보를 이용해서 표적 테러를 할 수 있다는 부정적 측면이 존재하니, 기술을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해서 치열한 논쟁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상상을 현실로 만들 때 우리가 명심해야 할 일이다.

 

환각제 사용도 마찬가지다. 환각제라는 표현은 순화된 표현이다. 우리는 이를 마약류로 분류한다. 인간에게 해롭다고 금지한 약물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다른 방향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환각제를 치료에 사용할 수 있다고 하는데... 미국이나 유럽에서 사용한 사례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고, 의학적인 처방으로 사용했을 때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다고 하니, 구체적인 사례들을 검증하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지금까지 상식이라고 생각해왔던 것과는 반대되는 주장들이 이 책에 많이 나와 있다. 환각제에 관한 이야기, 스테로이드제에 관한 이야기, 핵발전에 관한 이야기가 특히 그렇다. 좀더 구체적인 증거들을 찾고, 사례들에 대한 연구를 접하고 이 책의 주장과 비교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의 1부에서는 놀라운 과학기술 성과를 이야기 하고 있다. 인공관절이라고 할 수 있는, 절단된 신체를 보강하는 기술. 우리 몸보다도 더 뛰어난 능력을 지니게 하는, 그야말로 옛날 텔레비전에 나왔던 6백만 불의 사나이가 현실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시각장애인들이 볼 수 있게 해주는 시각임플란트라고 하는 기술도 발전해서, 거의 상용화되고 있다고 하니,이런 놀라운 기술발전은 인간에게 이로운 점으로 작용한다. 여기에 하늘을 나는 오토바이도 실현되고 있다니.

 

이제 영화에서나 보던 하늘을 나는 자동차들을 우리 실생활에서도 볼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우리 몸에 대한 이러한 기술의 발전말고도 우리 밖의 기술 발전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고 있고, 그동안 생각 못했던 점들을 알게 해준다.

 

소행성 광산업이라는 말도 이 책에서 처음 듣게 되었다. 소행성에서 광물을 채취하겠다는 계획이 있고, 어느 정도는 실행되고 있다고 하니, 참...

 

하지만 기술은 책임이 따라야 한다. 이 책에서도 그 점에 대해서 놓치지 않고 있다. 특히 정자 은행에 관한 장에서는 수많은 이복형제, 자매들이 태어날 수 있고, 이들이 서로 모른 상태에서 맺어질 수도 있다는 점. 자칫 잘못하면 기술발전이 헉슬리가 쓴 '멋진 신세계'가 될 수도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는 상상을 현실로 만들고 있지만, 이런 과정에서 책임에 대해서 심사숙고해야 함을 생각하게 한다. 어차피 상상이 현실이 되어가는 과정을 막을 수는 없다. 이미 인간이 상상했다는 사실에서 현실이 배태되어 있으니... 그러니 이러한 과정을 공개해서 책임에 대해서 공론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투모로우랜드, 미래의 땅, 약속의 땅이 될지 아니면 '멋진 신세계'가 될지, 그것은 우리에게 달려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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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라 2022-01-05 10: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상상이 현실이 되는 시대네요. 이런 시대적 전환점에 태어난 세대는 어떤 면에서 축복 받은 것일 수도, 위기에 놓인 것일 수도 있구나 생각이 듭니다.

kinye91 2022-01-05 12:50   좋아요 1 | URL
이하라 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전환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 이 시대는 그야말로 축복과 위기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할 수 있겠죠. 우리가 어떤 길을 택하고 나아가야 할지 많은 생각을 하는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