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 에콜로지와 민주주의에 관한 에세이
김종철 지음 / 녹색평론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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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속담이 생각난다. 아주 조금씩, 서서히 우리들에게 다가와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게 해, 알아차리는 순간은 이미 다 젖어 있게 되는 상태. '시나브로'라는 우리말 부사가 이렇게 적절하게 잘 맞는 때가 바로 지금이다.


기후위기라는 말을 넘어서 이제는 기후재앙이라는 말을 써야 한다고 하는데, 미세먼지 나쁨은 일상이 되었고, 감염병들이 도처에서 창궐하고 있는데, 비단 사람만이 아니라 동물들에게도 온갖 감염병들이 확산되고 있는 상태, 이것들의 위험을 깨달은 순간에는 이미 널리 퍼져 있는 상태.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라도 시작한다면 늦지 않은 상태가 될 수 있는데도, 이왕 젖은 옷이니 갈아입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그때 그때 일시적인 처방에만 힘쓴다면,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가랑비에 옷 젖는 일은 반복될 수밖에 없는데...


이 책은 김종철 선생의 생태사상론집이다. 이 책에 수록된 많은 글들이 이미 [녹색평론]에 실린 글들이지만, 그 책에 실리지 않은 글들도 있어서 김종철 선생의 생태사상에 대해서 일별하기엔 좋은 책이다. 그것도 2000년대 글만 모아놓았으니, 시대에 뒤떨어진 글들도 아니다.


하긴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글이나 말은 시대를 넘어선다. 그 시대에만 국한된 말ㅡ글이 아니라 인류 역사를 통해서 필요한 말-글이 된다. 왜냐하면 그들의 말은 현재만을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류가 지속적으로 이 지구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때문에 이들의 말-글에는 현대만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가 함께 담겨 있다. 그러니 그런 말-글들에서 시대의 한계를 인식하기는 힘들다.


김종철 선생의 주장을 한 마디로 말하면 생태문명으로 전환하자이다. 근대문명은 차별의 문명이고, 약자들의 착취를 기반으로 한, 또 자연파괴를 기반으로 한 문명이기에 이대로 지속할 수는 없다고 한다.


생태문명으로, 사람들이 생활 모습을 바꾸지 않으면 지속가능한 삶은 힘들어진다고 한다. 그렇다면 생태문명이란 무엇일까? 간단하게 딱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이 말을 중심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우리의 삶의 방식을 영구적인 지속이 가능한 방식, 즉 자연과 인간 사이의 물질적 대사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순환적' 방식으로 갈 수 있는 길을 탐구하고, 가능한 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 그 방향으로 전환하려고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 영구적으로 인간다운 삶의 영위를 보장하는 거의 유일한 생존·생활 방식이 농사라는 점을 재인식하고, 그 농사의 궁극적인 토대인 토양을 건강하게 가꾸고 보존하는 것이랴 말로 얼마나 중요한가를 우리는 숙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 우리의 집단적 삶의 운명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의사결정 과정, 즉 '정치'가 합리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안된다. (7쪽)


이런 이야기를 주제별로 묶어서 이 책에 실었다. 김종철 선생이 이야기하는 농사는 대농, 기업농이 아니라 소농을 말한다. 소농 개념에 유기농이 포함되어야 하고, 다품종 소량 생산, 자급자족할 수 있는 농사를 이야기한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농업, 기계와 화학비료를 이용해 대량으로 생산하는 농업, 돈이 되는 환금작물을 중심으로 하는 농업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1장)


소농 중심으로 서로 돕고 사는 자치가 살아있는 농촌을 이야기한다. 그러기에는 비대한 국가보다는 지역자치가 살아있는 사회를 꿈꾸게 된다. 이는 바로 민주주의와 직결되는데, 어떤 민주주의냐 하면 형식적 민주주의가 아니라 시민들이 참여하는 민주주의를 말한다. 그래서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할 수 있는 시민참여 민주주의에 대하여 고민하고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2장)


시민참여가 활발해지기 위해서는 삶에 여유가 있어야 한다. 생계에 급급하다보면 참여하고 싶어도 참여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기본소득을 이야기한다. 지금 대선 후보들 중에 기본소득을 이야기하다가 철회하는 경우가 있는데, 김종철 선생은 예전부터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글에서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사람들 주장이 지금도 통용이 되고 있고, 기본소득에 대한 반대여론이 더 높은 상황이니, 이 장을 읽고 기본소득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되어야 할 거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대통령 선거가 있는 올해를 앞두고 심도 있는 논의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수박 겉핥기 식으로 넘어가지 말고 철저한 검토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기본소득을 기본배당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하는데... 이 기본소득과 더불어 은행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은행에 대해서도 많은 논의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하고. (3장)


4장에서는 우리나라 촛불시위 또는 촛불혁명에 대해서 그 의의를 이야기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시민들이 참여해서 정치에 영향을 끼친 대표적인 사례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 글에서 '시인 김해자는 근작 시 <여기가 광화문이다>에서 "대통령 하나 갈아치우자고 우리는 여기에 모이지 않았다"고 일갈한다. 이것은 지금 주말마다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오는 수많은 시민들의 공통적인 심경일 것이다'(324쪽)라고 하고 있다. 


그렇다. 대통령 한 사람을 바꾸자고 촛불을 들지 않았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하기 위해서 그 추운 날에도 촛불을 들고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광장에 나섰다. 이 말, 지금 또다시 대선을 앞두고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과연 우리는 대통령 한 명 바꾼 것에서 얼마나 나아갔을까 생각하게 된다. 


마지막 5장에서는 탈핵에 관해서 이야기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여전히 논쟁 중인 탈핵이다. 원자력발전을 포기하지 않고 외국에 수출까지 하는 나라가 됐는데, 기후위기를 벗어날 길은 원자력발전이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꽤 있으니... 하지만 원자력발전이 지닌 이면에 대해서 김종철 선생은 이 글들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생활 형태를 바꾸면서 실질적 민주주의를 이루어 지역자치를 이루고 다품종 소량생산을 하면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더 이상 성장지상주의에 빠지지 않는 그런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생태문명'이라는 말로 정리해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고 한다. 기후위기는 기후재앙이 되었다고, 그러니 변해야 한다고.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변해야 하기 때문에, 어떻게 변할 것인가에 대해서 논의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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