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 - 미투 운동에서 기후위기까지
리베카 솔닛 지음, 노지양 옮김 / 창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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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미국 사회에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리베카 솔닛의 글을 모아놓은 책이다. 읽으면서 역시 솔닛이야 하게 하는 책.


일어났지만 보이지 않았던 일들, 말해야 하지만 말하지 못했던 일들에 대해서 솔닛은 보여주고 말하고 있다. 감추려고 하지 않는다. 솔닛에게 진실은 말해져야 한다. 


그런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약자인가, 강자인가? 책 제목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


두 가지 의미가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누구의 이야기인가에서 말해지지 않았던 사람들, 우리 주변에서 늘 일어나고 있었지만 모른 체 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뜻도 있겠고, 반대로 그렇게 힘없는 사람들은 말을 하지 못하게 하고 오로지 자신의 말만을 했던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는 생각이 든다.


즉 '누구'란 말에는 강자와 약자 쪽, 어느 쪽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이야기를 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바로 강자다. 이야기의 대상이 되는 존재는 약자다. 지금까지는 그래왔다.


강자는 이야기를 하고, 약자는 이야기를 억압당해 왔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조차도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약자들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한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를 이끌고, 또다른 이야기들이 꼬리를 물고 계속 나온다. 세상을 향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말을 한다는 것은 이제는 강자에 의해 입을 다물고만 살지 않겠다는, 삶의 주체로 살아가겠다는 선언이자 행동이다.


이런 점에서 미투 운동도 나왔고, 또 다른 많은 운동들이 나왔다. 그럼에도 여전히 약자들은 이야기하기를 꺼려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약자들의 이야기는 강자들의 관점으로 굴절된다. 강자들이 변형시킨 이야기들만을 진실인양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솔닛은 이 점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라는 말 속에서 우리는 강자가 왜곡시킨 말과 진실을 이야기하는 말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녀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말잔치가 벌어질 때가 있다. 선거 때면 온갖 말들이 난무한다. 그런 말들이 나돌아다닐 때, 솔닛의 이 말 '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라는 질문을 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한 이야기인가, 아니면 약자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어 말하는 이야기인가? 약자에 공감하는 이야기인가, 약자를 억압하는 이야기인가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이 책에는 그런 조작된 이야기들의 사례가 많이 나온다. 


우리가 민주주의 국가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미국에서 이런 거짓들이, 이런 폭력들이 행해지고, 이 행위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사회 분위기가 여전하다는 사실에서, 최근에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사람들에 대해서 만나게 된다.


한편 한편의 글들이 다 좋지만, 그 중에 이런 말이 나오는 글 '영웅의 등장은 일종의 재난이다'를 읽으면 뛰어난 개인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된다. 이 중에 이런 말...


'긍정적인 사회적 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을 뛰어넘기보다 그 사람들과 손을 잡아야 한다. 변화는 한 사람의 행동이 아닌 공동 작업에서 비롯된다. 이때 필요한 자질은 전통적으로 남성적이라기보다는 여성적이라 여겨졌던 특징, 스포츠맨보다는 모범생이 갖춘 자실이다. 즉 경청하기, 존중하기, 인내하기, 협상하기, 전략과 계획 짜기, 이야기 만들기 등이다. 하지만 우리는 고독하면서 특출난 영웅을 좋아하고, 주먹 싸움과 멋진 근육을 사랑한다.' (228쪽)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바로 이것이다. 손잡고 함께 행동하기. 이런 일들을 말끔하게 해결해줄 헤라클레스는 없다. 아니 있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우리의 이야기를 그에게 넘겨주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솔닛의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간 우리 사회에서도 어떤 사람들이 주로 이야기를 했는지 생각하게 됐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 묻혀버렸던 수많은 약자들의 이야기가 이제는 우리에게 들리게 해야 한다.


그래서 이젠 이야기의 주인공이 강자가 아니라 바르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진실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행동할 수 있을 때 그 사회는 편견과 혐오, 차별이 없는 사회가 된다. 우리가 원하는 사회가 그런 사회 아닌가. 그런 면에서 우리 모두는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걸 누군가가 막아서는 안 된다.


어떤 책을 읽어도 결코 실망을 주지 않는 솔닛이다. 이 생각을 또 하게 만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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