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에서 고른 두 번째 시집. 아니, 요즘에 고른 시집으로는 세 번째다. 헌책방에서 시집을 고르는 재미가 쏠쏠하다.

 

대형서점에 가면 시집을 전시해 놓은 서가가 계속 줄고 있는 현실에서.. 좋은 시집을 헌책방에서 만난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러한 축복을 받기 위해 가끔은 헌책방에 갈 일이다.

 

이번 시집은 풍자시집이다. 예전에는 시인으로 더 많이 알려졌지만, 요즘은 "고양이 학교"의 저자로 더 잘 알려진 김진경의 시집.

 

아마도 90년대 초반 우리나라 현실을 비판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리라.

 

이런 풍자시집은 잘못하면 때가 지나 시대와 맞지 않게 되고, 또 풍자를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해질 수도 있다.

 

이 시집도 마찬가지다.

 

무지렁이(이런 표현이 맞는지... 무지렁이라고 말해지는 사람들은 사실, 자기의 일을 묵묵히 하는 사람들이고, 또 이들은 자연과 인간이 어떻게 하면 조화롭게 사는지,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조화를 이루며 살 수 있는지를 몸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농민의 입을 빌려 당시 지배층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데...

 

상황을 모르는 사람은 이 시를 곧이곧대로 해석해서 내용을 잘못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불행이라고 해야할지, 이 시집에서 풍자하고 있는 내용이 지금에도 유효하다는 사실.

 

세월이 흘러 민주화가 되었다는 지금에도 이 시집이 유효하다는 사실은 서글픔을 넘어선 어떤 감정을 느끼게 한다.

 

세상에, 아직도 이렇다니...

 

뉴스에 보니 송전탑 건설 반대로 농민들이, 그것도 나이 드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나서고 있는 현실과 미국이라는 거대 제국에 아직도 의존하고 있는 현실이라든지... 참...

 

하여 남에게 빌붙어 잘 살려고 하지 말고, 자기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뜻을 이 시집의 제목으로 삼고 있으니... 명심할 일이다.

 

이 시집을 풍자시집이라고 알게 해주는 시가 있다. 그 시는 '확인'이다.

 

확인

 

우리가 노예라면

"노예이다"에서 시작하자.

우리의 땅이 식민지라면

"식민지이다"에서 시작하자.

다른 나라 군대가

우리의 땅을 짓밟고 있다면

"짓밟고 있다"에서 시작하자.

이렇게 시작되지 않는 민주는

진열대에 놓여 있는 미국산 담배이름이다.

 

김진경, 닭벼슬이 소똥구녕에게, 실천문학사, 1991.  71쪽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 자리에서 시작하자는 이 시는, 그래서 다른 시들이 풍자적인 의미를 담고 있음을 파악하게 해준다.

 

이런 풍자시집... 그 땐 그랬지 하고 끝나는 세상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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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풍물시장을 가다.

 

풍물시장과 동묘 벼룩시장이 연결이 된다.

 

이 곳을 다 돌려면 발품이 많이 든다. 다리도 아프고, 또 많은 사람들 속에서 머리도 아프고.

 

풍물시장답게 노인들이 많다.

 

옛것에 대한 향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싸다는 얘기도 된다.

 

예전 놋그릇도 사고, 또 나무 조각도 사고, 그리고 요즘 유행하는 LP 턴테이블도 샀다.

 

물론 잘 알지 못하면 수업료를 톡톡히 치러야 한다.

 

턴테이블도 마찬가지다. 그냥 이것만 있으면 LP판을 돌려 음악을 들을 수 있겠거니 했던 무지함.

 

턴테이블을 돌리려면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서 알게 되었으니, 수업료를 지불한 것이 아깝지 않다고 해야 하나...덕분에 더 많은 발품을 팔았지만.

 

풍물시장에서 내게 가장 큰 기쁨을 주는 곳은 헌책방이다. 작은 책방이 아니다. 엄청나게 많은 책들이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고서라는 값나가는 책이 아닌, 정말로 주인의 품에 안겨 읽힐 책들이 말이다.

 

이런 서점에 들어가면 책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아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별로 없다. 물론 핑계다. 다른 물품들을 보아야 한다는 핑계로 헌책방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시가 꽂혀 있는 서가로 간다.

 

그리고 죽 훑어본다. 얼마 걸리지 않는다. 이 중에 맘에 드는 시집이 있으면 망설이지 않고 집어든다.

 

시집 가격은 대체로 1000원이기 때문에 가격 부담도 없다.

 

이번에 고른 시집은 두 권. 그 중에 한 권인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

 

집에 "접시꽃 당신2"가 있기에, 그리고 이제는 그가 국회의원이 되었기에, 처음 그의 이름을 전국적으로 알린 시집이 있다는 사실이 반갑기 그지 없다. 그냥 집어든다.

 

아내에 대한 그리움, 사랑이 절절하게 드러나 있다. 그런 사랑, 가슴 아프게 다가오지만...너무 많이 알려진 영화로도 만들어진 '접시꽃 당신' 말고, 이런 시, 그냥 조용히 마음에 스며드는 시.

 

봉숭아

 

우리가 저문 여름 뜨락에

엷은 꽃잎으로 만났다가

네가 내 살 속에 내가 네 꽃잎 속에

서로 붉게 몸을 섞었다는 이유만으로

열에 열 손가락 핏물이 들어

네가 만지고 간 가슴마다

열에 열 손가락 핏물자국이 박혀

사랑아 너는 이리 오래 지워지지 않는 것이냐

그리움도 손끝마다 핏물이 배어

사랑아 너는 아리고 아린 상처로 남아 있는 것이냐

 

도종환, 접시꽃 당신, 실천문학사, 1990. 16판. 75쪽

 

그리고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교사로서, 또한 전교조 교사로서 그가 고민했던 내용들이 4부에 시로 담겨져 있다는 사실.

 

그래서 그는 아내에 대한 그리움만을 이 시대 담고 있지 않고, 시대의 아픔을, 제자들에 대한 사랑도 이 시집에 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전에 다른 어떤 책에 소개되어 알고 있었던 '앉은뱅이 민들레'란 시와 '김선생의 분재'라는 시는 여전히 맘에 울림을 주었으며, 또한 이 시집의 마지막에 수록되어 있는 시, '답장을 쓰며'는 지금,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과 겹쳐져서 여전히 쓰라린 울림을 주고 있다.

 

이 시의 마지막에 나온 '우리의 생명을 기쁨과 고마움으로 누리는/그날은 반드시 오고야 만다./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라고 했던 시인.

 

이제 그는 국회의원이 되었다. 이제는 시에서만 외치는 것이 아니라, 도종환 스스로, 국회의원 도종환으로서, 정치인 도종환으로서 그런 날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래야 그는 시를 배신하지 않게 된다.

 

그걸 기대한다. 그것이 헌책방에서 이 시집을 구한 보람이기도 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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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맞이하는 부처님 오신 날.

 

부처님은 신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지 않고,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왔다.

 

인간의 모습으로 왔기에,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온갖 고난들을 겪었다.

 

그러한 고난을 통해 부처님은 인류의 스승이 될 수 있었다.

 

부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오지 않고 신의 모습으로, 인도의 신화에서 말하는 비슈누의 환생으로

우리에게 왔다면 그는 신으로만 존재하지 인류의 스승으로는 존재하지 않았으리라.

 

인간의 모습으로 와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고통들을 겪었으며, 이를 극복해가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몸소 인간이 인간으로서 가야할 길을 보여주신 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생의 고통들(苦)들이 모여서(集) 우리를 괴롭게 하지만, 그것을 없애서(滅) 진리의 경지(道)에 오르게 되리라.

 

이러한 단계에서 겪게 되는 우리의 일곱가지 마음들...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

 

이 중에서 통제를 잘못해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이 중에서 자기가 원하는 감정만을 추구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가.

 

이렇게 이들에게 세상을 그렇게 살지 말라고, 세상을 이렇게 살라고 말하는 스승이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말로는 멘토, 멘토 하지만, 진정 스승을 찾으려는 노력을 해봤는지 생각해보게 하는 부처님 오신 날이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우리네 삶에서 덜어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이미 부처님은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단지 부처님 오신 날만이 아니라, 평소의 생활에서도 우리는 이러한 스승의 가르침을 실천해야 하지 않겠는가.

 

스승은 있다. 다만 우리가 찾지 않을 뿐이다.

부처님 뿐만이 아니라, 예수도 공자도 또다른 다른 성인들도 모두 우리의 스승이 아니던가.

 

그런 스승들은 모두 하나로 통하지 않던가.

 

바로 잘 삶. 어떤 삶이 잘 삶인가. 다시 스승을 찾자.

 

스승을 찾아나선 선재동자처럼. 우리도 스승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서자.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더불어 그러한 스승들이 존재하는 곳, 절에 대해서도 종교를 떠나 한 번은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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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삼 시인에 대해서는 그냥 모더니즘 시인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의 시들은 짧고, 또 내용없는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내용없는 아름다움이었을까?

 

그것은 그의 시 "북치는 소년" 때문이었다.

 

북치는 소년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가난한 아희에게 온

서양 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어린 양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

 

김종삼 시선, 스와니강이랑 요단강이랑, 미래사, 1994. 1판 4쇄. 28쪽

 

바로 이 시 때문에 내용보다는 어떤 분위기로 시를 느끼게 하는 그런 시인으로 알고만 있었다. 여기에 "묵화"란 시에서 느껴지는 한 편의 그 고요한 동양화 같은 느낌. 분위기...

 

그런데 "삶창"을 읽다가 김종삼 시를 소개하는 글을 만나게 되었다.

 

어? 김종삼 시를 이렇게 읽을 수도 있네. 이런 면이 있네.

 

시인에 대해서 시 한두 편으로 고정관념을 지니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가 하는 반성.

 

요즘 시대와 맞물려 가슴 아프게 다가온 시도 있고.

 

또 그의 이번 시집에 등장하는 전봉래나 김관식 등과 가까이 지냈다는 사실에서 그를 단순히 모더니즘 시인으로만 규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단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와 같은 다른 좋은 시들도 많지만, 지금 현재 우리의 상황과 우리의 역사와 관련지어 내 맘을 때리던 시...

 

마음에 큰 울림을 준 시. 왜 이리 서글퍼지는지...

 

민간인(民間人)

 

1947년 봄

심야

황해도 해주의 바다

이남과 이북의 경계선 용당포

 

사공은 조심 조심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

울음을 터뜨린 한 영아(嬰兒)를 삼킨 곳,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을 모른다.

 

김종삼 시선, 스와니강이랑 요단강이랑, 미래사, 1994. 초판 4쇄 69쪽

 

슬프다. 지금 우리도 그 수심을 모른다. 끝도 없는 수심. 

 

세월이 흘러 이제는 이런 시가 과거의 시로만 존재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김종삼은 짧은 시 속에서 우리 민족의 현실을 담아내고 있기도 하다. 이것이 김종삼 시에 대해서 다시 보게 한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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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뒤숭숭하다.

 

한 나라를 대표한다는 대변인이 성추문 사건에 휩싸이지 않나, 어느 대학에서는 국문과를 없애겠다고 하지 않나.

 

적어도 국문과는 우리나라의 학문을 연구하는 곳이고, 이는 인문학에서 대표적으로 존재해야 하는 곳일텐데, 이익이 남지 않는다는 이유로 없애겠다고 하는 사람이 대학을 운영하는 현실.

 

결국 대학이란 학문을 하는 곳이 아니라, 이익을 추구하는 곳임을 만천하에 알리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국문과가 '굶는과'라고 굳이 대학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

 

이제는 학문도 경제의 영역에 편입되고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처럼 잘 보여준 사례가 있을까 싶다.

 

사람들이 반대를 엄청하고 있고, 비판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에는 눈이 없고, 귀가 없다. 오직 돈맛을 아는 촉수만이 있을 뿐이니.

 

마찬가지다. 한 나라를 대표한다는 대변인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는 일반 국민들도 상식처럼 알고 있지 않은가.

 

쓸데없이 오해받을 일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 어떤 상황에서도 냉철한 이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사실. 그 점을 다들 알고 있는데 당사자만은 모르고 있다고 해야 하나.

 

왜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

 

이번 녹색평론 130호를 읽으면서, 우연인지, 아니면 이미 앞을 내다보고 있었는지, 이번 호의 주된 기사가 지식인에 대하여였기 때문이다.

 

지식인,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성찰할 뿐만이 아니라, 사회를 성찰하고,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끔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는 지식인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들에게 나름의 존경하는 마음을 보내는 것이다.

 

지식인들은 주로 대학에서 길러진다고 믿어지고 있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대학에서는 지식인이 아니라, 지식노동자, 또는 어용학자들을 양산하기 쉽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지식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이 외국에까지 나아가서 한 일을 보면 역시 지식인이 길러지기는 참으로 힘들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고.

 

경어인(鏡於人)이라고 자신을 거울이나 물이 비추어보지 말고, 사람에 비추어보라는 말. 나를 알고 싶다면, 나를 제대로 판단하고 싶다면 내 주위의 사람을 살펴보면 된다는 말이 새삼 떠오르는 요즘이다.

 

녹색평론을 읽으면서 소위 지식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자신 주변의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받고 있는지를 한 번 살펴봤으면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고.

 

적어도 삶을, 사회를 성찰하는 지식인들이 우리나라에 많다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진정한 지식인이 존재하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도대체 대학은 어떠해야 할지, 그리고 공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어찌해야 할지, 또 학자라는 사람들은 어떤 태도로 학문에 임해야 하는지를 성찰해야 한다.

 

그런 성찰을 바탕으로 사회는 좋은 쪽으로 흘러가게 된다.

 

성찰할 수 있는 주제 참 많다.

 

하지만 그 많은 것 중에서 녹색평론에서 끊임없이 성찰의 주제로 삼은 것은, "핵, 민주주의, 농업, 환경, 생태 등"

 

하여 녹색평론은 내 주변의 사람들과 더불어 나를 살펴보게 되는 거울이 된다. 끊임없이 나를 성찰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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