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풍물시장을 가다.

 

풍물시장과 동묘 벼룩시장이 연결이 된다.

 

이 곳을 다 돌려면 발품이 많이 든다. 다리도 아프고, 또 많은 사람들 속에서 머리도 아프고.

 

풍물시장답게 노인들이 많다.

 

옛것에 대한 향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싸다는 얘기도 된다.

 

예전 놋그릇도 사고, 또 나무 조각도 사고, 그리고 요즘 유행하는 LP 턴테이블도 샀다.

 

물론 잘 알지 못하면 수업료를 톡톡히 치러야 한다.

 

턴테이블도 마찬가지다. 그냥 이것만 있으면 LP판을 돌려 음악을 들을 수 있겠거니 했던 무지함.

 

턴테이블을 돌리려면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서 알게 되었으니, 수업료를 지불한 것이 아깝지 않다고 해야 하나...덕분에 더 많은 발품을 팔았지만.

 

풍물시장에서 내게 가장 큰 기쁨을 주는 곳은 헌책방이다. 작은 책방이 아니다. 엄청나게 많은 책들이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고서라는 값나가는 책이 아닌, 정말로 주인의 품에 안겨 읽힐 책들이 말이다.

 

이런 서점에 들어가면 책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아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별로 없다. 물론 핑계다. 다른 물품들을 보아야 한다는 핑계로 헌책방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시가 꽂혀 있는 서가로 간다.

 

그리고 죽 훑어본다. 얼마 걸리지 않는다. 이 중에 맘에 드는 시집이 있으면 망설이지 않고 집어든다.

 

시집 가격은 대체로 1000원이기 때문에 가격 부담도 없다.

 

이번에 고른 시집은 두 권. 그 중에 한 권인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

 

집에 "접시꽃 당신2"가 있기에, 그리고 이제는 그가 국회의원이 되었기에, 처음 그의 이름을 전국적으로 알린 시집이 있다는 사실이 반갑기 그지 없다. 그냥 집어든다.

 

아내에 대한 그리움, 사랑이 절절하게 드러나 있다. 그런 사랑, 가슴 아프게 다가오지만...너무 많이 알려진 영화로도 만들어진 '접시꽃 당신' 말고, 이런 시, 그냥 조용히 마음에 스며드는 시.

 

봉숭아

 

우리가 저문 여름 뜨락에

엷은 꽃잎으로 만났다가

네가 내 살 속에 내가 네 꽃잎 속에

서로 붉게 몸을 섞었다는 이유만으로

열에 열 손가락 핏물이 들어

네가 만지고 간 가슴마다

열에 열 손가락 핏물자국이 박혀

사랑아 너는 이리 오래 지워지지 않는 것이냐

그리움도 손끝마다 핏물이 배어

사랑아 너는 아리고 아린 상처로 남아 있는 것이냐

 

도종환, 접시꽃 당신, 실천문학사, 1990. 16판. 75쪽

 

그리고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교사로서, 또한 전교조 교사로서 그가 고민했던 내용들이 4부에 시로 담겨져 있다는 사실.

 

그래서 그는 아내에 대한 그리움만을 이 시대 담고 있지 않고, 시대의 아픔을, 제자들에 대한 사랑도 이 시집에 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전에 다른 어떤 책에 소개되어 알고 있었던 '앉은뱅이 민들레'란 시와 '김선생의 분재'라는 시는 여전히 맘에 울림을 주었으며, 또한 이 시집의 마지막에 수록되어 있는 시, '답장을 쓰며'는 지금,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과 겹쳐져서 여전히 쓰라린 울림을 주고 있다.

 

이 시의 마지막에 나온 '우리의 생명을 기쁨과 고마움으로 누리는/그날은 반드시 오고야 만다./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라고 했던 시인.

 

이제 그는 국회의원이 되었다. 이제는 시에서만 외치는 것이 아니라, 도종환 스스로, 국회의원 도종환으로서, 정치인 도종환으로서 그런 날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래야 그는 시를 배신하지 않게 된다.

 

그걸 기대한다. 그것이 헌책방에서 이 시집을 구한 보람이기도 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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