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뒤숭숭하다.

 

한 나라를 대표한다는 대변인이 성추문 사건에 휩싸이지 않나, 어느 대학에서는 국문과를 없애겠다고 하지 않나.

 

적어도 국문과는 우리나라의 학문을 연구하는 곳이고, 이는 인문학에서 대표적으로 존재해야 하는 곳일텐데, 이익이 남지 않는다는 이유로 없애겠다고 하는 사람이 대학을 운영하는 현실.

 

결국 대학이란 학문을 하는 곳이 아니라, 이익을 추구하는 곳임을 만천하에 알리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국문과가 '굶는과'라고 굳이 대학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

 

이제는 학문도 경제의 영역에 편입되고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처럼 잘 보여준 사례가 있을까 싶다.

 

사람들이 반대를 엄청하고 있고, 비판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에는 눈이 없고, 귀가 없다. 오직 돈맛을 아는 촉수만이 있을 뿐이니.

 

마찬가지다. 한 나라를 대표한다는 대변인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는 일반 국민들도 상식처럼 알고 있지 않은가.

 

쓸데없이 오해받을 일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 어떤 상황에서도 냉철한 이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사실. 그 점을 다들 알고 있는데 당사자만은 모르고 있다고 해야 하나.

 

왜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

 

이번 녹색평론 130호를 읽으면서, 우연인지, 아니면 이미 앞을 내다보고 있었는지, 이번 호의 주된 기사가 지식인에 대하여였기 때문이다.

 

지식인,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성찰할 뿐만이 아니라, 사회를 성찰하고,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끔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는 지식인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들에게 나름의 존경하는 마음을 보내는 것이다.

 

지식인들은 주로 대학에서 길러진다고 믿어지고 있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대학에서는 지식인이 아니라, 지식노동자, 또는 어용학자들을 양산하기 쉽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지식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이 외국에까지 나아가서 한 일을 보면 역시 지식인이 길러지기는 참으로 힘들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고.

 

경어인(鏡於人)이라고 자신을 거울이나 물이 비추어보지 말고, 사람에 비추어보라는 말. 나를 알고 싶다면, 나를 제대로 판단하고 싶다면 내 주위의 사람을 살펴보면 된다는 말이 새삼 떠오르는 요즘이다.

 

녹색평론을 읽으면서 소위 지식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자신 주변의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받고 있는지를 한 번 살펴봤으면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고.

 

적어도 삶을, 사회를 성찰하는 지식인들이 우리나라에 많다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진정한 지식인이 존재하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도대체 대학은 어떠해야 할지, 그리고 공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어찌해야 할지, 또 학자라는 사람들은 어떤 태도로 학문에 임해야 하는지를 성찰해야 한다.

 

그런 성찰을 바탕으로 사회는 좋은 쪽으로 흘러가게 된다.

 

성찰할 수 있는 주제 참 많다.

 

하지만 그 많은 것 중에서 녹색평론에서 끊임없이 성찰의 주제로 삼은 것은, "핵, 민주주의, 농업, 환경, 생태 등"

 

하여 녹색평론은 내 주변의 사람들과 더불어 나를 살펴보게 되는 거울이 된다. 끊임없이 나를 성찰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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