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코메티의 아틀리에
장 주네 지음, 윤정임 옮김 / 열화당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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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메티 작품은 책에서만 봤다. 직접 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특히 이 책을 읽으면서는 책에서 본 자코메티의 작품만으로는 잘 이해할 수 없단 생각이 들었다.

 

장 주네 역시 우리에게 친숙한 작가는 아니다. 나 역시 그가 쓴 작품 중에서 읽은 것이라곤 [도둑일기]가 유일하니까. 하지만 그는 우리가 비천하다고 여기는 일들을 어린시절, 젊은시절에 다 겪은 작가니, 그가 만난 자코메티의 작품에 대해 궁금증이 일었다.

 

책은 아주 얇다. 60쪽 정도니까, 문고판 책보다도 더 얇다고 보면 된다. 마치 자코메티의 조각상들이 너무도 가냘프듯이...

 

하지만 자코메티 조각상들이 주는 느낌은 가냘픔과는 다르게 무거움을 주는데, 이 책도 마찬가지다. 얇은 책이지만 그 속에는 상당한 두터움이 들어 있다. 구절구절 마음에 와 닿는데...

 

몇 구절을 인용하는 것이 장 주네가 자코메티 작품에 대해 하고픈 말을 가장 잘 전달하는 일이 된다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움이란 마음의 상처 이외의 그 어디에서도 연유하지 않는다. 독특하고 저마다 다르며 감추어져 있기도 하고 때론 드러나 보이기도 하는 이 상처는, 누구나가 자기 속에 간직하여 감싸고 있다가 일시적이나마 뿌리 깊은 고독을 찾아 세상을 떠나고 싶을 때 은신처처럼 찾아들게 되는 곳이다. ... 내가 보기에 자코메티의 예술은 모든 존재와 사물의 비밀스런 상처를 찾아내어, 그 상처가 그들을 비추어 주게끔 하려는 것 같다. (6-7쪽)

 

...자코메티의 작품들이 '죽은 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또한 그의 작품이, 수많은 사람들이 탄탄한 뼈대 위에 살아 있을 때는 볼 수 없었던 것을 보여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죽음의 지대를 뚫고 들어가 저승의 구멍 난 벽들을 통해 스며 나올 수 있는 기이한 힘을 부여받은 예술 -유려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아주 견고한 예술-이 요구된다. ... 자코메티의 작품은 모든 존재와 사물이 인식하고 있는 고독을 죽은 자들에게 전달해 준다. 그리고 그 고독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우리의 영광이다.(16쪽)

 

자코메티의 조각작품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은, 가장 멀리 떨어진 극한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친숙함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그 왕복에 의해 지탱되는 것 같다. 이 오고감은 끝이 없으며, 그것이 바로 조각들에 움직이는 느낌을 주고 있다. (27쪽)

 

자코메티의 조각상들은 소멸해 버린 세대에 속한 느낌, 숱한 시간과 밤이 지혜롭게 갈고 닦아 부식시킨 후 부드럽고도 견고한 영원성의 기운을 담아 우리 앞에 내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30쪽)

 

사물을 고립시켜 그것이 갖는 유일하고 고유한 의미만을 집적시키는 능력은 관찰자의 역사성의 소멸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바라보는 이의 역사성을 없애려면 특별한 노력이 필요한데, 그렇다고 해서 영원한 현재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미래를 향한 어지럽고 끊임없는 질주, 휴기을 허용치 않는 양극단 사이의 긴장감있는 흔들림이 되어야 한다. (35쪽)

 

자코메티, 혹은 눈 먼 자들을 위한 조각가 (49쪽)

 

자코메티가 그려낸 대상들이 우리를 감동시키고 안심시키는 것은 그 대상이 '좀더 인간적으로 - 인간이 쓸 수 있고 끊임없이 써 왔던 것이라는 의미로 - 표현되어서가 아니며, 가장 좋고 부드러우면서 감각적인 인간의 현존이 대상을 감싸고 있기 때문도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가장 순박하고 신선한 '그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것, 그리고 아무것도 함께 하지 않는, 그 전적인 고독 속의 대상 (59쪽)

 

그것은(자코메티 예술) 차라리 가진 것 없어도 당당한 룸펜의 예술이며, 대상들을 서로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은 모든 존재, 모든 사물의 고독에 대한 깨달음이라는 순수한 지점에 이르고 있다. 대상은 말하고 있는 듯하다. "나는 혼자다. 그러므로 내가 사로잡혀 있는 필연성에 대항해 당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내가 지금 이대로의 나일 수밖에 없다면 나는 파괴될 수가 없다. 지금 있는 이대로의 나, 그리고 나의 고독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당신의 고독을 알아본다." (60-61쪽)

 

이보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냥 이 책을 읽으면서 장 주네가 이야기해 주는 자코메티를 만나면 된다. 그의 작품을 본 적이 있다면 그것을 머리에 떠올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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