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냥한 폭력의 시대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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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작가의 생각이 들어 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바로 폭력의 시대다. 그런데 그 폭력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모두를 일상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일상을 살아가는데, 바로 그 일상이 다른 존재들에게 폭력으로 나타날 수가 있다.

 

홀로코스트를 저지른 자들도 집에서는 다정한 사람, 상냥한 사람이었다고 하듯이, 우리가 겪고 있는 폭력 역시 두려움과 공포로, 일상에서 벗어난 테러와 같은 형태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일상으로 다가온다.

 

그러므로 지금 시대는 '상냥한 폭력의 시대'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 모여 지금 이 시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작가는 우리 시대의 모습을 우리 앞에 보여주고 있다. 작가의 말을 보자.

 

동시대인의 보폭으로 걷겠다는 마음만은 변한 적이 없다.

이제는 친절하고 상냥한 표정으로 상처를 주고받는 사람들의 시대인 것만 같다.

예의 바른 악수를 위해 손을 잡았다 놓으면 손바닥이 칼날에 쓱 베여 있다. 상처의 모양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 누구든 자신의 칼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 시대에 살아가는, 나와 빼닮은 그들을 이해하려 노력할 수밖에 없다. 쓸 수밖에 없다. 소설로 세계를 배웠으므로, 나의 도구는 오직 그뿐이다. 248-249쪽

 

그럼, 작가는 이런 세계를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총 7편의 소설이 한 제목으로 묶여 있는데, 각 소설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우리 일상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서로를 보듬어주는 관계를 맺고 있지 못하다.

 

이들이 맺는 관계는 지극히 형식적이고 일상적이다. 그냥 살아가는 도중에 만나는 관계일 뿐이다.

 

첫소설인 '미스조와 거북이와 나'에 나오는 주인공은 가족과 떨어져 죽음을 앞둔 노인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 근무한다. 이미 가족관계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들, 그리고 주인공 역시 가족과 떨어져 있다. 미스조라는 아버지의 옛애인과 만나지만 형식적인 만남일 뿐이다. 이런 형식성은 바로 주인공과 함께 있는 샥샥이라는 고양이 인형에게서 잘 드러난다.

 

굳이 그에게는 생명이 있는 고양이는 필요없는 것이다. 그냥 자신의 감정을 일방적으로 투사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 그가 근무하는 곳에서도 감정의 교류는 없다. 감정의 교류는 낯설다. 미스조가 남긴 거북이를 통해 주인공은 그것을 깨닫는다.

 

샥샥과 나 사이에, 바위와 나 사이에 연결되어 있는 줄은 처음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갈 것이고 천천히 소멸해갈 것이다. 샥샥은 샥샥의 속도로, 나는 나의 속도로, 바위는 바위의 속도로. (33쪽)

 

이 얼마나 상냥한 폭력의 시대란 말인가. 사람들과 또다른 존재들과 서로 연결되어 있는 줄은 없다는 말은. 그냥 자기 식대로 살다 소멸해 간다는 말은. 이는 나를 만들어가는 타자를 인정하지 않는 그런 발언이 아니던가. 그런 모습 아니던가. 우리는 지금 같은 공간, 같은 시대를 살고는 있지만, 모두 각자의 삶을 살고 있을 뿐이라는.

 

다른 소설들도 마찬가지다.

 

고등학생이 애를 낳고, 그 아이가 죽음의 순간에 처해 있음에도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소설이나,

 

돈많은 노인을 죽인 대가로 많은 돈을 받으려 했던 사람들 이야기, 그러나 실제로 죽였는지 또 돈의 출처는 어떤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 안의 천사',

 

뚱뚱한 몸으로 돼지라는 별명을 지닌, 일본인과 한국인을 부모로 둔 아이가 북한 국적의 아이와 만나고 헤어지는 장면을 보여주는, 그러나 그들 역시 어긋날 뿐인 '영영, 여름',

 

나이든 여교사를 등장시켜 어긋나는, 무언가 자꾸 빗나가는 관계를 보여주는 '밤의 대관람차'

 

우여곡절 끝에 집을 장만하지만 그 집을 얻기까지 미끌어지는 관계를 보여주는 부부와 그 집에 얽힌 사연을 보여주는 '서랍 속의 집'

 

영어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와 지식인 엄마, 그리고 영어 유치원 보조 안나의 만남과 헤어짐을 보여주는 '안나'라는 소설.

 

이 모든 소설들에서 서로를 보듬어주는 관계는 나타나지 않는다. 함께 살아가되 다르게 살아갈 뿐이고, 이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진심을 상대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들의 만남에서는 어떤 칼들이 숨겨져 있다.

 

웃음이라는, 일상이라는 관계 속에 위장된 칼들, 그 칼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폭력으로, 상처로 다가오게 된다.

 

그런 관계들을 소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고 보면 된다. 갈수록 우리는 관계맺기를 포기하고 이런 '상냥한 폭력'으로 들어갈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나'란, 절대적 개인이 아닌, 다른 존재들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존재라는 것을 이 소설을 통해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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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에 연설하러 오지 않았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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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잘 알려진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연설문을 모아놓은 책이다. 그가 젊은 시절에 한 연설부터 나이들어서 한 연설까지 실려 있어서 마르케스의 인생사가 담겨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짤막한 글들의 모음이고,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알면 이 연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그의 소설을 환상적 리얼리즘이라고 부르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글들도 있다.

 

여기에 그의 사생활을 보여주는 글들이 있는데, 돈이 없어서 고생을 하던 시절, "백년 동안의 고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겪은 일들을 알려주는 글(스페인어 메시지로 채워질 열린 영혼)을 읽으면 그에게 더 친근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노벨상 수상 연설인 '라틴 아메리카의 고독'을 읽으면 그가 생각하는 라틴 아메리카에 대해서도 알 수 있고, '다모클레스의 재앙'과 같은 시사적인 문제를 다룬 글들을 통해 그의 사상을 알 수도 있다.  

 

여러 글들 중에서 그가 '시를 위해 축배를'이라는 연설에서 시에 대해서 한 말을 인용한다.

 

  시는 부엌에서 병아리콩을 삶고, 전염병처럼 사랑을 퍼뜨리며, 거울 속에 반복된 이미지들을 비추는 일상생활에 존재하는 비밀스러운 힘입니다.

  저는 한 줄 한 줄 글을 쓸 때마다 항상, 그 성과가 크든 작든, 시라는 포착하기 힘든 정신을 불러일으키려고 애씁니다. 그리고 단어 하나하나에 제 애정의 증거를 남기려고 노력합니다. 시가 지닌 예언적인 힘, 그리고 죽음이라는 숨죽인 힘에 맞서 거둔 영원한 승리 때문입니다. 34-35쪽

 

그의 작품에 이 말을 적용할 수 있겠다. 이런 말을 듣고 그의 작품을 읽으면 그의 작품에 대해서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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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사람들·계엄령 알베르 카뮈 전집 13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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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사람들"은 오랜만에 다시 읽은 희곡이고, "계엄령"은 처음 읽은 희곡. 두 희곡의 공통점은 독재, 또는 전제국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 "정의의 사람들"은 러시아를, "계엄령"은 스페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압제에 대항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희곡이라고 보면 되는데, 정의의 사람들에서는 테러로 권력을 휘두르는 한 개인을 암살하는 것을 소재로 삼고 있다면, "계엄령"은 페스트라는 서양을 휩쓸었던 질병에 독재를 비유해서 전개하는 희곡이다.

 

"정의의 사람들"이나 "계엄령"이나 생각할 것이 많은데, 우선 폭력과 사랑의 문제다. 그리고 복종과 저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두려움.

 

더 큰 사랑을 위해서 작은 사랑을 포기하고, 폭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정당하다. 이는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은 어떠해도 된다는 말로 전이가 될 수 있는데...

 

민중을 위한 사랑이 독재자를 위한 테러로 나타나는데, 테러를 하기 전에 이들이 고민하는 점, 우리 역시 고민해야 하고, 테러가 성공한 뒤에 대공비와 이야기하는 지점에서 과연 테러는 정당한가라는 질문을 다시 한 번 하게 된다.

 

어려운 문제다.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시켜도 되는가라는 질문인데... 이것이 자칫 공리주의로 흐르지 않기 위해서는 인간의 생명이란 절대적이라는 것, 그것은 누구에게도 해당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다면 독재를 물리치기 위해서 한 개인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개인이 나타나게끔 되어 있는 사회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어떻게? 개인이 공고하게 그 구조를 지탱하고 있지 않은가라는 질문도 할 수 있다.

 

러시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희곡, 정의의 사람들에서는 이 질문에서 사회구조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냥 그 사회구조를 지탱하는 인물인 대공을 암살할 생각, 그 암살에 대한 정당성을 이야기할 뿐이다.

 

과연 대공의 암살 이후 사회구조가 바뀌었는가? 이는 우리나라 박정희의 죽음으로 민주화가 이루어졌는가라는 질문과 상통한다. 사람만 바뀔, 그것도 더 좋지 않은 쪽으로 바뀔 확률도 많다.

 

반면에 계엄령엔 이러한 테러는 나타나지 않는다. 독재에 저항할 수 있는 길, 여기서는 특정한 개인을 암살하는 테러가 나오지 않는다.

 

독재자에 대해 지니고 있는 두려움, 그 사회에 퍼져 있는 이념에 대한 두려움이 자발적으로 사람들을 독재에 따르게 하고 있다는 식으로 해석이 될 수 있다.

 

지배층은 말할 것도 없고 민중들 역시 두려움에서 독재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냥 순응할 뿐이다. 그들이 말살정책을 펴도 두려움에 쌓인 민중들은 말살될 뿐이다.

 

이들이 말살되지 않기 위해서는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한다. 깨어있는 사람, 한 사람이라도 있어야 한다. 두려움을 없앤 깨어있는 그 사람이 독재자에게 자신의 온몸을 걸고 이야기해야 한다. 그랬을 때 남들도 깨달을 수 있다.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정의의 사람들이 개인의 투쟁을 중심으로 개인을 제거하는 것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면, 계엄령은 독재를 물리치는 개인을 주인공으로 하고는 있지만 폭력이 아닌 방식으로도 독재를 물리칠 수 있음을, 어쩌면 우리나라 촛불집회를 연상시키는 그런 희곡이다.

 

박정희와 박근혜에 비유할 수도 있는 이 두 희곡들, 독재, 전제를 물리칠 수 있는 방법, 수단과 목적에 관한 고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좋은 작품은 시대, 나라를 초월해 적용될 수 있다더니, 우리나라와 먼 시대, 먼 나라 이야기를 다룬 이 두 희곡이 우리나라 상황에 이렇게 적용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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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인 김승옥 - 김승옥의 문학과 예술에 바침
백문임 외 지음 / 앨피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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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옥 하면 "무진기행"과 "서울 1964년 겨울"이 떠오른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고, 중고등학생에게 필독도서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학창시절에 국어 시간 또는 문학 시간에 배웠던 작품이기도 하고... 그런데 이 작품들은 그의 20대 작품이고, 그 이후의 작품으로 유명한 작품은 별로 없다.

 

초기에 명작을 쓰고 그 이상의 작품을 쓰지 못한 작가, 그래서 김승옥은 내게는 잊혀진 작가였다. 그냥 아주 먼 오래 전 작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김승옥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사실이 새삼 새롭게 느껴질 정도였다.

 

친구 사이라는 김지하처럼 여러 면에서 언론에 노출이 된다면 친숙한 작가로 인지하고 있겠지만, 김승옥은 그렇지 않다. 언젠가 문득, 그가 쓰러졌다는 기사를 본 듯도 한데...

 

이 책을 통해서 김승옥이라는 인간에 대해서, 김승옥이라는 작가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었다. 그를 인터뷰한 글도 실렸으니.

 

뇌경색으로 쓰러진 것은 맞고, 언어를 잘 구사하지는 못하지만, 회복되어 가는 중이라고 하고, 이 책이 나온 2005년에,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이다. 아마도 젊은시절의 김승옥은 되지 못할지라도 살아있음으로 그는 여전히 작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김승옥의 예술활동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고찰한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김승옥 헌정논문집이라고 해도 될 책인데... 소설가로만 알고 있던 김승옥의 다른 면모들을 알 수 있어서 좋았던 책이다.

 

소설가로 유명한 그가 먼저 시사만화가로 출발했다는 사실, 그는 '파고다 영감'이라는 4컷짜리 만화를 <서울경제신문>에 연재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았다. 그리고 그가 소설을 쓰지 않는 기간에 영화 감독으로 또 영화 각색자로 참여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70년대에 많은 관객을 동원한 영화 <별들의 고향>이나 <영자의 전성시대>의 각색자가 바로 깁승옥이었고, 그가 대종상 각본상을 수상한 적도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결국 그는 책 제목처럼 만화, 소설, 영화의 장르에 참여한 르네상스인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모두 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말년에 쓰러져서 이들을 종합하는 활동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김승옥은 1960년대의 소설 몇 편으로도 우리에게 중요한 작가로 남아있게 된다.

 

일제시대의 소설을 넘어서서 새로운 독자층을 형성한, 새로운 감성을 선보인 작가 김승옥. 어떻게 김승옥의 독자층이 형성이 되었고, 이들은 왜 김승옥의 소설에 열광했는가부터 시작해서 김승옥의 변모를 다룬 글들이 실려 있다.

 

김승옥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이 책 한 권으로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안 르네상스적 예술가인 김승옥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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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것이 카프카 - 99가지 습득물
라이너 슈타흐 지음, 정항균 옮김 / 저녁의책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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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카프카에 관한 책 중에 가장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일 것이다. 카프카라는 어려운 작가를 99개의 습득물이라는 제목으로 그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해주고 있으니.

 

그간 잘 알려진 카프카의 모습을 만날 수도 있고, 처음으로 만나는 카프카의 모습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99개의 짤막한 글로 이루어진 이 책은 카프카를 그렇게 어렵게 여기지 않게 만든다.

 

이 점이 이 책의 좋은 점이다. 사실 카프카의 작품을 그냥 읽으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잘 알 수가 없다. 가장 많이 알려진 "변신"만 해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니 말이다. 게다가 "소송"이나 "성"이라는 소설을 보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

 

머리를 싸매고 무슨 뜻인지 파악하려 해도 안개 속을 헤매듯이 그냥 헤맬 뿐이다. 그러니 카프카는 어렵다.

 

그렇다고 그를 읽지 않을 수도 없다. 그는 우리에게 어떤 넘어야 할 산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런 산을 넘을 수 있는 방법, 준비를 철저히 하고, 우선 쉬운 길부터 가는 것.

 

그 쉬운 길을 제시해주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99편의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모여 카프카란 사람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신비롭고 고뇌하는 천재라는 생각을 하게 한 카프카가 부정행위도 저질렀음을, 그리고 학교 성적도 그리 우수하지 않았음을 이 책에서 말해주고 있으며, 그가 당시의 문화에 따라 사창가에도 드나들었음을 알 수 있다.

 

카프카란 인물이 어려운 작품을 썼다고 하지만 그 역시 동시대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고, 그래서 그가 사업을 하기 위해 여러 발명품에 대한 조언을 하기도 했지만 그것들이 이미 시판되고 있었던 현실, 도박장에 가서 돈을 날렸던 사실, 그가 의사들을 믿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글들이 이 책에 실려 있다.

 

카프카란 인물이 시대와 동떨어진 어떤 신비로운 인물이 아니라 동시대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고 숨쉬며 살아갔던 사람임을 잘 알 수 있게 해주는데, 어떤 소녀를 위해 이야기를 꾸며내는 모습도 이 책에 잘 나타나 있다.

 

어쩌면 이것이 카프카, 그렇다. 카프카는 단순한 사람은 아니다. 그는 여러 복합적인 요인들이 모여 그를 만들어냈다.

 

그런 그를 99가지의 습득물을 통해 만날 수 있다. 그다지 어렵지 않은, 친숙한 카프카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이 책은 제공해주고 있다. 그 점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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