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이 지옥일 때
이명수 지음, 고원태 그림 / 해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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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서 힘들어 한다.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자신만이 그 고통의 바다에 있는 양, 도무지 그 바다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양, 남들은 모두 해변에서 즐겁게 노니고 있는데, 자신만 발에 무거운 돌덩이를 달고 자꾸만 바닷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양,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그때가 바로 자신의 마음이 지옥에 있을 때다. 지옥, 우리는 끔찍한 곳, 절대로 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 생각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한 발 한 발 지옥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지옥에 있다고 느낄 때 지옥에서 나오게 하는 불빛 또는 지옥을 가로지는 징검다리가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이다. 사람은 사람으로 인해 절망에 빠지기도 하지만 사람으로 인해 희망을 지니기도 한다.

 

그렇게 사람은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 사람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람을 보아야 한다.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한다. 사람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아간다.

 

더불어 사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는 지옥이 있다 해도 '내 가슴에서 지옥을 거내고 보니 / 네모난 작은 새장이어서/ ... / 지옥은 참 작기도 하구나' (230쪽. 이윤설 '내 가슴에서 지옥을 꺼내고 보니' 부분) 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사람과 함께 살아가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저자는 시에서 찾고 있다. 시는 우리의 마음을 치유해주고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볼 수 있게 해준다.

 

시를 읽는 사람, 시를 가까이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사람이다. 단지 사람만이 아니라 우주의 전존재와 함께 하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지옥은 너무도 작은 존재다. 지옥은 있지만, 그 지옥에 자신을 빠뜨리지 않는다. 또한 지옥에 빠진 사람에게도 나올 수 있게 방향을 알려주거나 그가 딛고 나올 수 있는 디딤돌이 된다.

 

이렇게 시를 읽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지옥일 때는.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가? 이 책은 한 편의 시, 이 시 하나로 이 책을 설명할 수 있단 생각을 했다.

 

회사

 

꽃 피고

꽃 지는 것 모르고

 

비 뿌리고

장마지는 것도 모르고

 

투명한 어항 속에 비치는

캄캄한 심해

 

술취한 고래처럼

이따금 푸우 푸―우

하늘을 솟구쳐 올랐다가

 

바람 불고

낙엽 지는 것 모르고

 

눈꽃 피고

얼음 풀리는 소리 듣지 못하고

 

어디쯤 지나고 있을까

밤 기차는

 

이명수, 내 마음이 지옥일 때, 해냄2017년 초판 2쇄. 송종찬, '회사' 134쪽.

 

이게 어디 회사만일까? 학교는 어떤가. 한창 청춘인 젊은이들이 과연 이 시에 나오는 장면들을 볼 수 있는가. 이들도 회사원처럼 그냥 모든 것이 캄캄한 상태에서 내달릴 뿐이다. 학생만이 아니다.

 

나이듦을 여유로움이라고 했던 시대가 있었는데, 지금은 나이듦 역시 무작정 달리는, 주변을 살피지 못하는 그런 상태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 시에서 말하고 있는 '회사'는 바로 우리 사회가 아닐까. 지금 우리들의 모습 그 자체 아닐까.

 

이런 상태에서 우리는 시를 읽을 여유가 있는가? 없다. 시를 읽을 마음을 내지도 못한다. 시와 멀어진 삶, 그것이 지금 우리들의 모습 아니던가. 시는 학교에서나 배우는 것, 시집은 감히 사서 읽을 엄두도 내지 않는 것.

 

시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다른 사람들과 만나는 일을 하지 못하는 시대. 그런 시대에서 다시 시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진정으로 지옥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자 해서이다.

 

심리기획자인 저자가 우리 마음을 어루만져 우리를 옥에서 건져주고 싶어 82편의 시를 선택해서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짧막한 그의 말들과 함께...

 

읽으면서 위안이 된다. 생각보다도 마음이 먼저 움직인다. 마음이 따스해지고 편안해진다. 그렇게 읽으면서 내가 지옥의 한복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옥의 바깥으로 걸어나오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꼭 저자의 시 해석을 따라가지 않아도 된다. 내 맘대로 읽어도 된다. 그것이 바로 시의 힘이다. 그 점을, 너는 너라고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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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6 12: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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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6 13: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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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준열의 시대 - 박인환 全시집
박인환 지음, 민윤기 엮음, 이충재 해설 / 스타북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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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을 편찬한 사람은 박인환을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의 시인으로만 알고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한다.

 

한 시인을 특정한 시로만 기억하는 일, 그것은 시인에게는 행복일 수도 있지만, 시인을 시에 가두는 일이 되기도 하니 행복한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슬프지만 참으로 많은 시인들은 시로도, 시인의 이름으로도 기억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니 박인환은 어떤 면에서는 두 시는 교과서에도 실리고, 또 노래로도 불리기도 하니 행복한 시인이라고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박인환은 이렇게 전후 모더니즘 시인, 허무를 노래한 시인으로, 그래서 그의 시들은 '목마와 숙녀'의 그 애상적인 분위기, '세월이 가면'에서 마음을 파고드는 쓸쓸함 등으로 우리들 가슴 속에 남아 있다.

 

바로 이 점이 안타까웠으리라. 박인환 시에 대해서 많이 알면 알수록 박인환을 이렇게 특정한 경향으로만 국한시키는 것이.

 

이런 국한된,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박인환에 대한 평가를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명확하다. 그의 시 모두를 읽게 하는 것이다. 시를 모두 읽다 보면 박인환이 쓴 시들 가운데 자신의 마음에 와닿는 다른 시들이 나올테고, 또 박인환 시가 한 경향만 지니지 않고 여러 경향을 지녔음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하여 박인환의 모든 시를 다 모았다. 지금까지 알려진 그리고 찾을 수 있는 시들을 모두 찾으니 90편이란다. 이를 발표 순으로 엮으면 간단하겠지만 그럼 시인이 지닌 시의 경향을 파악하는데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90편을 비슷한 경향의 시들로 엮으면? 읽으면서 시의 경향을 더 잘 느낄 수 있고, 또 다른 시들과 구별된다는 것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이 시집은 '박인환 전(全)시집'이라는 이름을 걸고 시들을 총 4부로 나뉘어 엮어 출판했다. 맨 앞에는 박인환에 대한 해설을, 뒤에는 박인환 시에 대한 비평을, 그리고 맨 뒤에는 발표된 시들을 발표순으로 정리했다.

 

그렇게 엮은 시들을 읽어가며 박인환은 자신이 살던 시대를 빗겨가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려 했다는 점을 알 수 있게 됐다.

 

김수영을 참여시인이라고 하고, 박인환은 참여시를 쓰기 전에 모더니즘 단계, 도시적인 시를 쓰는 시인으로만 생각하기 쉬운데, 박인환의 시 중에는 적극적으로 현실에 관여하는 시들도 많음을 알게 된다.

 

그런 시들을 읽으며 시인은 결코 현실에서 떨어져 살 수 없음을, 현실을 자기 것으로 체화해서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박인환 역시 해방과 전쟁이라는 우리나라 격랑을 피해가지 못햇음을, 그래서 그것을 자신의 시로 가져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모더니즘 시인, '세월이 가면'의 시인으로만 알고 있던 박인환 시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점을, 그에게도 현실참여적인 시가 꽤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해준 책이다.

 

어쩌면 이 시집은 교과서에 갇혀 있던 박인환을 현실 사회로 끌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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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형대에 걸린 시
김수영 지음, 김종욱 엮음 / 아라(도서출판)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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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형대에 걸린 시'

 

김수영 전집에 실리지 않은 글들을 발굴해 모아놓은 책이다.

 

책형대, 지금으로 말하면 십자가 정도라고 하면 되겠다. 책형(磔刑)은 기둥에 묶어 세우고 창으로 찔러 죽이던 형벌이라고 하니, 책형대는 그런 형벌을 당하는 기둥에 해당할 것이다.

 

자신의 시를 책형대에 걸어두었다는 것은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에 무관심하지 않고 할 말을 하겠다는 것이다. 전집에 있는 글에서 '시란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라고 했던 시인의 정신과 어울리는 다짐이다.

 

4.19가 일어나고 이승만의 하야 선언이 있은 뒤 김수영은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고 이 글에서 말하고 있다. 

 

'4.26 사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통찰하지 못하는 사람은 미안하지만 시인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불쌍한 사람들이 소위 시인들 속에 상당히 많이 있는 것을 보고 정말 놀랐다' (35쪽)

 

'시대의 윤리의 명령은 시 이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거센 혁명의 마멸 속에서 나는 나의 시를 다시 한 번 책형대 위에 걸어놓았다' (36쪽)

 

이런 치열함이 지금까지 김수영 시를 읽는 이유가 되고 있다. 시인이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이 글이 김수영의 미수록 원고 제목이 된 이유이기도 하겠다.

 

산문만이 아니라 미수록 시도 세 편이 실려 있고, 번역한 글들과 좌담이 이 책에 실려 있다. 특히 산문 중에서는 김수영의 포로생활을 잘 알 수 있는 글들이 - 시인이 겪은 포로 생활, 나는 이렇게 석방되었다 - 있다. 의용군으로 끌려갔다가 포로로 잡혀 거제도에서 포로 생활을 하던 그때의 김수영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

 

여기에 실린 소설가 김이석의 죽음에 따른 문인들의 생활에 대한 좌담은 문인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는지가 잘 나와 있는데... 예나 지금이나 문인들은 풍족하게 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니.

 

얼마 전에 최영미 시인의 말이 논란이 되었다. 생활하기가 힘든 시인이 자신에게 호텔방 하나를 빌려주는 호텔이 있으면 좋겠다는 말... 그러면 자신을 만나러 온 사람들 때문에 호텔 홍보도 되고, 호텔의 영업에도 도움이 될테니 방 하나를 자신에게 빌려주었으면 한다는.

 

그런데 시인이 무슨 벼슬이냐고, 다른 문화인들은 어떻게 하느냐고... 참 많은 반론들이 나왔고, 시인에게 호텔방을 제공하는 업체는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때도 문인들이 먹고 살기 힘들어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그런 좌담을 했는데, 이들이 제시하는 것이 신간이 나오면 도서관에서 구입하도록 하는 도서관법 제정이다. 책이 많이 팔리면 인세로 작가들이 먹고 살지 않을까 하는 그런 바람.

 

꼭 문인만이 아니더라도 모든 사람이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사회적 토대를 마련해야 하는데... 그런 정책이 많이 나오고 있으니 잘 살펴서 실현가능하게 하는 것도 우리의 일이겠다.

 

그동안 누락된 김수영의 글들을 모아놓았다는 의미... 김수영의 포로생활을 시인의 글을 통해 알 수 있다는 것, 그리고 4,19에 대한 김수영의 생각 등을 다시 한 번 만나게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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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 소설
한강 지음, 차미혜 사진 / 난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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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소설이라고 해서 읽었는데, 소설로 보기가 참 힘들다. 짧은 글들이 이어져 있을 뿐이다. 물론 이 짧은 글들을 꿰고 있는 소재는 바로 '희다'이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은 '흰' 것들에 대한 단상.

 

'나, 그녀, 모든 흰' 이렇게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읽다보면 이어지는 내용이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흰'이 밝음 보다는 어둠 쪽에 더 가깝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보통 '흰'은 밝은, 깨끗한, 순수한, 맑은, 가벼운 등등의 의미를 불러일으키는데, 이 소설에서는 영어 제목부터가 '어두운, 무거운, 슬픈' 등등의 느낌이 나게 한다. 영어로 표기되어 있는 것이 'The Elegy of Whiteness'다.

 

엘레지(Elegy), 사전을 찾아보면 '비가(悲歌)'라고 나온다. 슬픔의 노래라는 뜻이다. 흰이 비가라니... 그렇다. '흰'은 어떤 슬픔을 불러일으킨다. 1부인 '나'로부터 시작하지만 이 '나'는 부재의 나다. 없는 나다.

 

바로 나자마자 세상을 뜬 아이로부터 시작한다. 그렇게 시작해서 다시 아이로 간다. 결국 없음에서 시작에 없음으로 가는 인생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없음에서 시작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있음으로 만들지만, 그 있음 역시 없음 속에 존재하게 된다.

 

'흰'은 다양한 색채들과 함께 존재하지만 그 색채들을 다시 '흰'으로 만든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생이다.

 

굳이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는 말을 떠올리지 않아도 된다. 지금 내게 있는 수많은 색채들은 바로 '흰'을 바탕으로 한다. '흰'을 바탕으로 하지만 이들은 시간이 지나면 '흰'으로 돌아간다.

 

'흰'을 우리는 거부할 수가 없다. 세상에 나온 아이가 처음으로 보는 것은 '흰'일 것이다. 빛... 세상의 빛, 그 다음 아이는 '흰'것으로 자신의 몸을 감싼다. '배내옷'이다. 이렇게 자신을 감싼 것에서 이제 새로운 '흰'이 나온다.

 

바로 엄마의 젖이다. 젖으로 아이는 생명을 유지한다. 그러나 젖은 외부에서 온다. 자신의 '흰'으로 살아가야 한다. 이 때 나오는 '흰'이 바로 이다. 우리 삶을 유지시켜줄, 음식을 씹을 수 있게 해주는.

 

그러다 다시 '흰'이 나오기 시작하면 이제는 처음에 왔던 없음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 검었던 머리가 하얘지고, '흰' 이들이 하나둘 빠져나갈 때... 이제는 다시 한 줌의 재가 될 준비를 한다. 나중에 이 재조차도 없음으로 돌아가게 된다. 텅 빈 흰으로.

 

'없음'에서 태어나 다시 '없음'으로 가는 길, 이 길에서 우리는 수많은 '흰'들을 만난다. 짧은 글들 속에 온갖 '흰'들이 나오지만 이 '흰들'은 바로 우리 삶이다. 

 

하여 소설 속에서 '나와 그녀, 그리고 모든 흰'으로부터 우리는 삶을 만나게 된다. 자신의 삶을 보게 된다.  

 

짧은 글들의 모음이고, 이 글들이 작가의 슬픔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지만, 그 슬픔으로 해서 '흰'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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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도둑 김소진 문학전집 3
김소진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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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읽은 김소진의 소설집이다. 김소진 소설의 특징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단편들이 주를 이루지만 단편 속에 곁가지로 뻗어가는 많은 사건들이 중첩되어 있다.

 

이런 중첩은 장편소설에 더 잘 어울리는데 단편소설에 이런 사건들과 인물들이 나와 이야기의 끝맺음이 잘되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지식인 소설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는 생각이 많은 소설이라는 뜻이다. 짧은 것에서도 여러 가지를 다 이야기하고 싶은 욕구.

 

여전히 등장인물들은 지식인들이다. 그리고 과거로 향해 하고 있다. 제목이 되는 '자전거 도둑'만 해도 단편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사건이 과거와 현재로 나뉘고 있다. 많은 과거들과 회상이 중첩되어 있어 짧은 소설에도 여러 사건들을 만나볼 수 있다.

 

단편소설에서는 그래도 많은 이야기들이 짧은 분량에 녹아 있기에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았는데, 이 전집에 실려 있는 '양파'라는 소설은 단편을 넘어섰는데, 이 소설을 읽으며 민중들의 삶과는 괴리가 있다는 느낌믈 강하게 받았다.

 

김소진 작품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일반 민중이 아니라 지식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 민중들의 삶은 과거에나 존재하고, 그것도 어린 시절 자신의 경험 속에만 존재하는데, 어른이 된 자신은 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 상태.

 

민중들의 삶에서 떠난 자리에서 있는 주인공들이 '양파'에 등장한다. 한때 운동권이었지만 지금은 사회에서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 어느 정도가 아니라 인정받는 자리라는 표현이 어울리겠다. 정치인이 되어 꽤나 유명해졌고, 화가로서 자신의 입지를 마련했으며, 의사, 기자 등등이 된 인물이 등장하니 말이다- 인물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들을 통해서 민중들의 삶이 스쳐지나가듯 나오지만 주된 서술의 방향은 이들이 어떻게 사회에 적응해 가는가 하는 점에 있다.

 

변절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사회의 변화에 맞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읽기에 불편하다. 차라리 단편에서 느꼈던 어두운 분위기, 과거의 그 어두침침한 모습들에서는 과거 우리 모습을 발견하고 현재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할 수 있었는데, 이 '양파'라는 소설에서는 자신을 잃어가는 지식인의 모습을 통해 민중들의 삶이 소설에서 사라졌다는 아쉬움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소설 역시 완성이 되지 않았다. 완성이 되었다면 민중들과의 현재 삶이 더 표현되었을텐데, 그 점은 좀 아쉽다.

 

이 전집을 통해 김소진의 소설 가운데서는 단편들이 더 생각할거리가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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