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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준열의 시대 - 박인환 全시집
박인환 지음, 민윤기 엮음, 이충재 해설 / 스타북스 / 2016년 3월
평점 :
품절
이 시집을 편찬한 사람은 박인환을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의 시인으로만 알고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한다.
한 시인을 특정한 시로만 기억하는 일, 그것은 시인에게는 행복일 수도 있지만, 시인을 시에 가두는 일이 되기도 하니 행복한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슬프지만 참으로 많은 시인들은 시로도, 시인의 이름으로도 기억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니 박인환은 어떤 면에서는 두 시는 교과서에도 실리고, 또 노래로도 불리기도 하니 행복한 시인이라고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박인환은 이렇게 전후 모더니즘 시인, 허무를 노래한 시인으로, 그래서 그의 시들은 '목마와 숙녀'의 그 애상적인 분위기, '세월이 가면'에서 마음을 파고드는 쓸쓸함 등으로 우리들 가슴 속에 남아 있다.
바로 이 점이 안타까웠으리라. 박인환 시에 대해서 많이 알면 알수록 박인환을 이렇게 특정한 경향으로만 국한시키는 것이.
이런 국한된,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박인환에 대한 평가를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명확하다. 그의 시 모두를 읽게 하는 것이다. 시를 모두 읽다 보면 박인환이 쓴 시들 가운데 자신의 마음에 와닿는 다른 시들이 나올테고, 또 박인환 시가 한 경향만 지니지 않고 여러 경향을 지녔음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하여 박인환의 모든 시를 다 모았다. 지금까지 알려진 그리고 찾을 수 있는 시들을 모두 찾으니 90편이란다. 이를 발표 순으로 엮으면 간단하겠지만 그럼 시인이 지닌 시의 경향을 파악하는데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90편을 비슷한 경향의 시들로 엮으면? 읽으면서 시의 경향을 더 잘 느낄 수 있고, 또 다른 시들과 구별된다는 것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이 시집은 '박인환 전(全)시집'이라는 이름을 걸고 시들을 총 4부로 나뉘어 엮어 출판했다. 맨 앞에는 박인환에 대한 해설을, 뒤에는 박인환 시에 대한 비평을, 그리고 맨 뒤에는 발표된 시들을 발표순으로 정리했다.
그렇게 엮은 시들을 읽어가며 박인환은 자신이 살던 시대를 빗겨가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려 했다는 점을 알 수 있게 됐다.
김수영을 참여시인이라고 하고, 박인환은 참여시를 쓰기 전에 모더니즘 단계, 도시적인 시를 쓰는 시인으로만 생각하기 쉬운데, 박인환의 시 중에는 적극적으로 현실에 관여하는 시들도 많음을 알게 된다.
그런 시들을 읽으며 시인은 결코 현실에서 떨어져 살 수 없음을, 현실을 자기 것으로 체화해서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박인환 역시 해방과 전쟁이라는 우리나라 격랑을 피해가지 못햇음을, 그래서 그것을 자신의 시로 가져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모더니즘 시인, '세월이 가면'의 시인으로만 알고 있던 박인환 시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점을, 그에게도 현실참여적인 시가 꽤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해준 책이다.
어쩌면 이 시집은 교과서에 갇혀 있던 박인환을 현실 사회로 끌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