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탄잘리 열린책들 세계문학 151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지음, 장경렬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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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알고 있는 작품이 참 많다. 그냥 너무도 많이 들어서 마치 읽은 듯한 느낌을 주는 작품들. 그래서 이 작품들을 끝까지 읽기는 힘들다. 그냥 안다고 생각하고 넘어가기 때문이다. 너무 친숙한 느낌을 주는 책.

 

타고르의 '기탄잘리'는 내게 그런 책이었다. 학생 때 동양인으로서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일제시대때 우리나라를 동방의 등불이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던 작가. 그가 쓴 대표작으로는 '기탄잘리'가 있다고 배웠다. 이게 다다.

 

시 제목인 '기탄잘리' 뜻도 모른 채.

 

이런 작품에 도전해 보기로 한다. 책을 구해서 읽기 시작한다. 우선 '기탄잘리'의 뜻. 이 책 옮긴이의 말에 잘 나와 있다.

 

'『기탄잘리』는 103편의 시로 이루어진 영문 시집으로, 이 시집의 시편들은 시인 자신이 벵골어로 된 자신의 여러 시집에서 일부를 뽑아 영어로 번역한 것이다. 한편, 시집의 제목으로 남아 있는 벵골어의 단어인 <기탄잘리>는 <노래>를 뜻하는 <기트git>와 <바침>, <올림>을 뜻하는 <안잘리 anjali>를 합친 것이다. 즉, <기탄잘리>는 <노래를 바침>의 뜻을 갖는데, <바침>의 대상이 절대자 또는 신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신에게 바치는 노래>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205쪽)

 

이게 시집 기탄잘리의 뜻이다. 언뜻 읽어보면 사랑시같지만 그 사랑이 절대자에 대한 사랑을 노래했다고 할 수 있다. 그냥 사랑이 아니라 신에 대한 사랑, 즉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시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를 읽다보면 자연스레 우리나라 한용운이 생각난다. 한용운이 낸 시집 '님의 침묵'에 나오는 수많은 님들... 그 님들을 해석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통상 세 가지로 나눈다.

 

그냥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님, 또 하나는 조국, 또 하나는 부처님(절대 진리)이라고 말이다.

 

이런 점에서 한용운의 '님의 침묵'은 사랑시이자 애국시이고 절대 진리를 추구하는 시가 되기도 한다.

 

타고르의 이 시들도 마찬가지다. 님이 나오는데 굳이 이 님을 한 가지로만 해석할 필요가 없다. 다양하게 해석이 되기에 더 넓고 깊은 울림을 주는지도 모른다. 

 

이 시의 첫번째를 보자. 시에는 각자 숫자가 붙어있는데 1부터 103이다.

 

1

 

  님은 나를 언제나 새롭게 하시니, 여기에 님의 기쁨이 있습니다. 빈약한 이 그릇을 님은 비우고 또 비우시며, 언제나 신선한 생명으로 채우고 또 채우십니다.

  언덕 넘어 골짜기 넘어 님이 가지고 다니는 이 작은 갈대 피리는 님의 숨결을 받아 영원히 새로운 가락을 울려 왔습니다.

  님의 불멸의 손길에 내 작은 마음은 기쁨에 젖어 그 한계를 잊고, 표현 불가능한 것들을 말로 바꾸어 놓기도 합니다.

  님이 나에게 주는 무한한 선물은 오로지 아주 작은 이 두 손으로만 옵니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님은 나를 채워 주시지만, 나에게는 아직 채울 자리가 남아 있습니다.  (23쪽)

 

그렇다. 님에게 나는 한없이 작은 그룻에 불과하겠지만, 님은 그것에 개의치 않는다. 님의 사랑은 내 그릇과 상관없이 늘 내게 베풀어진다. 영원히 쉬지 않고. 다만 우리가 그것을 깨닫느냐 깨닫지 못하느냐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런 님을 기리는 노래, 님에게 바치는 노래. 그것은 자신이 삶을 잘 살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이렇게 주기만 하는 님, 늘 채울 자리가 비어 있는 내게는 삶은 늘 새로울 수밖에 없다.

 

삶은 정해지지 않았고, 끝나지도 않았으며 고정되어 있지도 않다. 나는 끊임없이 님을 생각하며 님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 님이 사람이든, 신이든, 나라든 상관없다. 이런 마음, 이런 태도를 지니면 된다. 그것이 삶에 충실한 자세, 님을 사랑하는 자세다.

 

이런 타고르가 우리나라를 기리는 시를 썼다고 한다.

 

일즉이 아세아의 황금시기에

빗나는 등촉의 하나인 조선

그 등불 한 번 다시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비치 되리라  

 

1929(68세) 조선에 관한 시 한 편을 [동아일보]에 보냄. 주요한의 번역문이라고 이 책 213쪽에 실려 있다.  원문 그대로 표기했다. 이 책에 보면 영인한 사진이 나온다.

 

그러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할 수밖에. 천천히 한편 한편을 읽어보면서 삶의 자세를 가다듬어 보자. 비록 번역문이지만 말의 울림으로도 느끼기는 힘들겠지만 의미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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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하여 오늘의 젊은 작가 17
김혜진 지음 / 민음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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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평등 시대. 참 오래 전부터 하던 말이고, 양성평등 교육, 학교에서도 강조하고 있고, 성평등은 이제 두 말 할 필요없는 당연한 일이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이론에서는.

 

그런데 현실을 따져보면 과연 그럴까? 미투 운동으로 대변되는 성추행 폭로들을 보면 여전히 여성들은 남성들에게 차별을 받고 있다. 

 

성추행뿐만이 아니라 승진에서도 여전히 유리벽이 존재한다고 하는데... 이런 현실에 동성애자 여성은 더욱 힘든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겠다.

 

여성이라는 존재에 성소수자라는 존재가 덧붙여지니 이들이 서로를 보듬고 더 나은 조건으로 나아가게 하지 못하고, 서로가 엉켜 더욱 낮은 곳으로 끌어내리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절대로 그러면 안 되는데...

 

여전히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심하고, 초등학교에서 페미니즘 교육을 했다는 이유로 여러 곳에서 항의를 받은 교사가 있고, 교육방송에서는 이런 성소수자들이 참여하던 프로그램이 종료하는 일도 있었으니...

 

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우리 사회에서 정상 범주 -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는 일이 이미 비정상인데, 다수를 벗어난 사람들을 비정상이라고 칭하는 현실에서 그냥 이 용어를 쓰면 - 에 속한다고 여기는 사람보다 험난할 수밖에 없다.

 

이 소설을 보라. 동성애자 딸이 나온다. 그런데 주인공은 동성애자 딸이 아니다. 동성애자 딸을 바라보는 엄마가 주인공이다. 엄마가 서술자로 나와 자신과 딸, 그리고 '젠(이제희)'이라는 여성의 삶을 이야기한다.

 

우선 엄마는 교사라는 직업을 가졌었지만 딸을 키우기 위해 직장을 포기한다. 그렇다고 일을 안 할 수는 없다. 딸이 큰 다음 살아가기 위해 직장을 얻는데, 마지막에 얻은 직장이 요양보호사다.

 

아픈 사람, 이젠 죽음을 앞둔 사람을 돌보는 사람. 엄마의 역할은 이렇게 줄곧 누군가를 돌보는 일로 점철된다. 이것이 인정받아야 하지만 자본의 논리 앞에서는 절대로 인정받을 수 없다. 수치로 - 연봉 또는 월급이라는 - 표현되는 경제 논리, 자본 논리 앞에서 돌봄은 돈과 직결될 수밖에 없다.

 

요양소들이 모두 이런 모습을 지니고 있지는 않겠지만 돈을 목표로 하는 요양소들이 보호사들에게 요구하는 일은 결국 돈을 벌 수 있게 하는 일이다. 인간적인 돌봄은 없다. 엄마가 일하는 직장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돌봄을 우선 가치로 두는 사람, 그 직장에 오래 있을 수가 없다. 엄마 역시 해고 통보를 받는다. 왜냐하면 상품으로  대해야 할 사람을, 사람으로 대했기 때문이다.

 

이런 엄마는 '젠'이라는 과거에는 남을 돕고 좋은 일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누구도 돌보는 사람이 없고 치매까지 걸린 사람을 결국 제 집으로 데리고 오는 일은 여전히 여성과 돌봄이 관계가 있다는, 여성이 돌봄을 포기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자신보다 윗세대를 돌봄으로 대하는 엄마는 자기 딸이 이런 모습을 보면서 자신을 따르기를 바라지 않는다. 엄마는 동성애자인 딸에게 나중에 너도 이렇게 될 수 있다고 몸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엄마는 여전히 '보통-정상'이라는 범주를 포기하지 않는다. 딸을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이해까지 도달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내가 너희를 이해할 수 있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까. 때로 기적은 끔찍한 모습으로 오기도 하니까.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오긴 오겠지.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건 시간이 필요한 일이잖니. 나한테 그만큼의 시간이 남았는지 모르겠다.' (194-195쪽)

 

이것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딸애와 함께 사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이 말에서도 어떤 희망이 읽히는데... 소설의 맨 끝은 이렇게 끝난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건 아득한 내일이 아니다. 마주 서 있는 지금이다. 나는 오늘 주어진 일들을 생각하고 오직 그 모든 일들을 무사히 마무리하겠다는 생각만 한다. 그런 식으로 길고 긴 내일들을 지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볼 뿐이다.' (197쪽)

 

'젠'의 장례식장에서 엄마가 속으로 하고 있는 다짐이다. 이 다짐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엄마는 딸이 늙었을 때, 자신이 생각하는 보통 가족을 이루지 못했을 때 겪게 될, 혹 '젠'과 같은 최후를 맺지 않을까 걱정하는 자신을 질책한다고 할 수 있다.

 

내일은 내일이다. 지금은 지금이다. 딸이 지금 자신의 파트너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다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오늘을 오늘답게 살아가면 그것으로 삶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결말이다. 하지만 엄마는 자신이 살아온 삶에 비추어 딸이 살아갈 날들을 생각하는 태도를 완전히 버리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노력할 것이다. 언젠가는... 그런...

 

여기에 여성과 성소수자라는 이중억압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냥 자신들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너무도 당연한 다름이 차별이 되면 안 되는, 그런 사회...

 

소설을 읽으며 엄마의 고민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소설에서 엄마는 끝까지 딸의 파트너를 '그 애'라고 한다. 자기 딸을 '그린'이라고 부르는 파트너를 못마땅해 하면서도 말이다.

 

엄마가 딸을 이해하는 순간, '그 애'는 자기 이름을 찾을 수 있을텐데... 소설에 아주 잠깐, 지나가듯이 그 애의 이름이 나온다. '레인' 

 

'이제 매일 아침 나는 주방에서 그 애와 마주쳐야 한다. 레인. 그러나 그 이름을 소리 내어 발음한 적은 없다.' (46쪽)

 

엄마가 그 애를 '레인'이라고 부르는 순간, 그 애는 엄마에게 이해받게 된다. 엄마는 그 애를 이해하게 된다.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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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킨 이야기 / 스페이드 여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2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최선 옮김 / 민음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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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로 시작하는 시... 어린 시절 책받침에서건 이발소에서건 볼 수 있었던, 시 구절이 너무도 좋아 외웠던 시.

 

푸슈킨의 시다. 삶은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살다보면 기쁜 날도 오리라는, 그렇지만 그는 결투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고 하니, 참...

 

푸슈킨이 쓴 작품으로 두 편이 실려 있는 책이다. 짧게 줄여서 '벨킨 이야기'라고 했지만 차례를 보면 '고 이반 페트로비치 벨킨의 이야기'라고 하여 '발사, 눈보라, 장의사, 역참지기, 귀족 아가씨 - 농사꾼 처녀'라는 제목을 지닌 다섯 편이 실려 있다.

 

짤막한 단편들. 삶의 여러 형태들이 드러나는 소설들이다. 그야말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라는 말이 어울리는 소설이다. 삶이 그대를 속였기에 그 삶에 속아 미래를 바라지 않고 불행으로 삶을 망친 사람들(발사, 역참지기)과 그럼에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고 살아가 종국에는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들(눈보라, 장의사, 귀족 아가씨) 이야기로 나뉜다.

 

많은 삶의 유형이 있지만 삶에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는 것, 지금은 힘들지 몰라도 결국에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에 대해서 긍정적인 마음을 지녀야 하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

 

벨킨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우리가 어떤 삶을 추구해야 할지 알게 된다. 소설에서 너무도 명확하게 그것을 보여주고 있으니까... 그의 시에서 이야기하는 모습을 소설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고.

 

'스페이드 여왕'이라는 다른 작품을 보면 이것을 더 잘 알 수 있다. 자제력도 있고 자신의 삶에 대해서 계획성도 있는 인물은 게르만은 돈에 대한 유혹을 이기지 못한다.

 

지금처럼 '돈'이 최고로 인정받는 사회는 아니지만, 그 당시 러시아에서도 돈은 삶을 윤택하게 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였으리라.

 

그런 돈을 버는데 자신의 노력으로는 많이 벌기 힘들기는 당시 러시아나 지금의 우리나 마찬가지. 지금은 금수저가 아닌 다음에는 로또나 가상화폐에 투자하는 길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자신의 처지를 확 바꿔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우리 현실인데...

 

당시 러시아에서는 도박으로 자신의 환경을 바꾼 사람들이 꽤 있었나 보다. 이 스페이드 여왕이라는 소설에서는 도박으로 일확천금을 꿈꾼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니 말이다.

 

물론 게르만은 도박에서 돈을 잃고 정신병원에서 평생을 지내게 되지만, 자신의 노력보다는 일확천금을 꿈꾸는 모습이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으리라.

 

푸슈킨 당시의 젊은이들 중에서 이런 모습을 지닌 사람이 꽤 있었을 테고, 푸슈킨은 소설을 통해서 러시아 젊은이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보여주고자 했을 것이다.

 

스페이드 여왕에서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딘 인물, 가난한 양녀는 결국 나름대로 행복하게 사니, 자신의 삶에 체념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자신이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얘기다. 결코 마법같은 일로 자신의 삶이 한번에 확 바뀌지는 않는다는 것.

 

이번 푸슈킨 소설집에서는 그런 점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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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6 10: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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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6 1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체호프 단편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0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박현섭 옮김 / 민음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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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단편소설의 대가라고 불리는 사람이다. 모파상과 체호프. 이 소설집에는 10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200쪽도 안 되는 분량인데 소설이 10편이면 평균내도 한 소설당 20쪽이 채 안 된다는 얘기다. 그만큼 짧은 소설들... 한때 우리나라에서 엽편(葉篇)소설이라고 부르던 길이다.

 

특히 첫번째 소설인 '관리의 죽음'은 짧아도 너무 짧다. 7쪽부터 12쪽까지니 겨우 6쪽짜리 소설이다. 그래도 한두 장짜리 소설보다는 길지만... 단편소설을 읽는 재미는 극적인 반전이다. 한 사건을 두고 인물의 심리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짤막한 상황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체호프의 단편들에서도 그런 점이 잘 보인다. 그래서 단편소설의 대가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관리의 죽음' 죽음이라는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운명, 누구나 피하고 싶어하는 운명을 두고 이렇게 짧게, 그것도 참으로 어이없는 죽음을 그리다니...

 

고사성어 중에 기우(杞憂)라는 말이 있다.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을 하면서 살아가는 기나라 사람의 어리석음을 이야기하는 말인데, 이 말은 지나치게 섬약하여 모든 일에 걱정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지칭한다.

 

다른 말로 하면 모든 일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고,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니, 이런 섬약한 관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갈 수 있는 일에 온 신경을 집중하니 몸이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극장에서 재채기를 한 번 했다고 며칠 동안을, 그 재채기로 인해 침이 튄 것을 생각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찾아가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했으니, 이 정도 심리 상태면 병이 나야 정상이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신경을 쓸테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에서 넘어가야 할 것은 과감하게 넘길 수 있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그러나 이것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해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야 할 일에도 무심한 듯 넘어가면 안 된다.

 

그것은 공감 능력의 상실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공감 능력의 상실이 더 늘어나는 현실에서 체호프의 이 소설이 공감을 받기는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리라.

 

"이거 또라이 아냐...이보다 더한 것도 그냥 넘어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 하나하나 신경쓰다 보면 어떻게 사회 생활을 하나?" 라고.

 

하여 요즘은 '내 탓이요'는 만병의 근원이요, 내 건강의 핵심은 바로 '네 탓이요'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잘하면 내 탓, 못하면 네 탓이니 얼마나 마음이 편할까. 바로 이 소설과 정반대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습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늘어간다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요즘이다. 

 

그래, 이 관리처럼 이런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쓸 필요는 없지만, 정말 신경써야 할 일에는 신경써야 한다. 그것이 배려고, 함께 사는 기본 예의다.

 

짧지만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데, 이 선집에 실린 작품들은 다양한 주제를 지니고 있다. 불륜을 다룬 작품도 있고(공포, 베짱이), 남과 감정을 공유하지 못하는 비극도 있고(드라마), 사랑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작품도 있고(베로치카), 사랑하는 사람과 사는 일의 어려움(거울)과 살아서 위대한 사람도 금방 잊혀진다는 인생무상을 이야기하는 작품(주교)도 있다.

 

우리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삶의 다양한 모습들이 이 소설집에서 표현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아마도 소설을 읽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한다. 다른 삶을 간접적으로 살아보는 것.

 

첫번째 소설인 '관리의 죽음'을 읽으며 내가 내 행동을 판단하는 상태는 어느 정도인지, 중용을 지키며 사는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너무 사소한 것에 집착해서도 안 되지만, 잘못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도 안 된다는 삶의 자세.

 

오래 된 소설이지만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인간의 삶에서 시간의 흐름도 바꾸지 못하는 어떤 보편적인 요소들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여전히 러시아 사람들의 이름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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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8-02-23 1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이 제일 와닿습니다. 삶을 살아가는 자세보다 러시아 사람들의 이름이 어렵다는 말이 왜 이렇게 가슴을 훅 치고 가는걸까요.^^

kinye91 2018-02-23 21:32   좋아요 0 | URL
헤. 정말 러시아 사람들 이름 어려워요...우리나라 이름이 대부분 세 글자라서 그런지 원...
 
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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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7편의 단편소설이 묶여 있는 소설집이다. 작가의 첫소설집이라고 하는데... 읽으면서 마음 속으로 서서히 들어오는 어떤 울림을 느끼게 된다. 공감을 느끼면서 소설의 주인공들의 마음과 같이 울리는 공명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그렇게 이 소설집을 읽으면 마음이 울린다.

 

그렇다고 소설들이 밝지는 않다. 분명 어두운 분위기, 어두운 결말이 많은데도 이상하게 잔잔하다는 느낌과 더불어 마음을 살그머니 흔드는 감동이 있다.

 

어두운 분위기에서도 밝음을 느낄 수 있다고나 할까?

 

소설집의 제목이 된 '쇼코의 미소'만 해도 그렇다. 주인공들의 삶이 결코 행복하다고 할 수 없는데, 읽고나서는 주인공들이 그래도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고 있다는, 자신을 받아들여주는 사람이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온전한 존재로서의 자신을 받아들여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신에게 공감해주고 공명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은 실제 생활이 어떠한지를 떠나서 마음에 위안을 주고, 행복을 준다. 그렇게 소설은 공감의 중요성을 느끼게 해준다.

 

하지만 이런 공감이 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관계에서는 작은 일에서도 틀어질 수가 있다. 그것이 영원한 이별이 되기도 하는데... '한지와 영주'란 소설에서 보면 알 수 없는 이유로 좋았던 관계가 틀어지는 모습이 펼쳐진다.

 

서로를 받아들이고 공감해준다고 생각했는데, 무엇인지도 모를 이유로 멀어지는 관계, 우리의 삶에서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씬짜오, 씬짜오'라는 소설에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가 한 말이 결국 묻혀 있던 진실을 대면하게 해서, 관계를 파탄내는 장면이 나온다.

 

독일에서 만난 베트남 부부와 한국인 부부들. 이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생활을 하지만 뜻하지 않게 나온 베트남 전쟁에서 저지른 한국군의 행동에 대한 이야기로 인해 이들의 관계는 끝나고 만다.

 

성심을 다한 사과가 있어야 용서가 되고 서로 공감할 수 있는데, 우리는 일본에게 그런 사과를 요구하지만 베트남에서 벌인 일에 대해 과연 우리는 제대로 진심으로 사과했는지, 반성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렇게 비록 자신이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자신의 국가, 자신의 민족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 반성하고 피해자에게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 않으면 어떤 관계든 제대로 유지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소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많은 인물들이 지니고 있는 공통적인 정서가 바로 '공감'이다. 이런 '공감'으로 인해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나 '비밀' '미카엘라'와 같은 소설을 읽으면 코끝이 찡해지기도 한다. 이런 삶들이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삶을 사는 주인공들에게 마음을 주면서 우리 삶을 되돌아 볼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집의 장점은 우리들의 공감 능력을 깨우쳐 준다는 것이다.

 

마음 속 깊이 자리잡고 있던 공감 능력을 우리 몸 곳곳으로 퍼지게 한다. 빠르게가 아니라 느리고도 아주 잔잔하게...

 

그래서 읽으면서 몸 전체에 공감이 퍼져나가게 된다. 소설을 읽으며 공감 세포들이 깨어나는 느낌을 받았다고나 할까.

 

말로 표현되지는 않더라도 우리들 삶에서 느낄 수 있는 그런 공감들, 아주 작은 공감들, 그것이 우리를 삶으로 이끌고, 우리를 행복으로 이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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