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이다
김탁환 지음 / 북스피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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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읽기 힘든 소재다. 세월호는. 소설을 읽으며 마음은 계속 심해로 가라앉는듯한 느낌을 받는다. 더이상 내려갈 곳도 없는데, 이미 세월호는 지상으로 올라왔는데, 똑바로 세워졌는데도 여전히 마음은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해결된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다. 배만 올라왔을 뿐이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책임져야 할 자들은 쏙 빠져나가고 소위 잔챙이라고 하는 사람들만 처벌을 받았다. 
 
여기에 처벌이나 비난을 받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비난을 받기도 했고. 진실을 바닷속에 묻어두려고 했는지, 계속되는 진실규명 요구도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런 정권이 몰락했다. 그건 몰락이다. 국민들이 마음으로 쫓아낸 부패한 권력. 그들은 감옥에 갇혀 있지만 무엇을 잘못했는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생목숨들이 차가운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있는데, 그 시간에 머리를 매만지고 있었다는 사람이나 재난구호 책임자이면서도 제대로 사태 파악도 하지 못했던 장관들이나 관계 부처 관료들, 그리고 방송이나 제대로 했으면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었는데, 그것도 하지 않은 배와 해경 관계자들... 여기에 정부에서 하는 말만 그대로 받아썼던 소위 기레기들.
 
기레기들 말만 믿고, 또 유언비어만 믿고 피해자들을 파렴치한으로 몰아가는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들. 
 
소설이다. 소설이지만 소설이 아니다. 소설보다 더 지독한 현실이다. 세월호는. 소설 제목이 '거짓말이다'다. 
 
무엇이 거짓말일까? 정부의 발표, 언론의 발표, 사람들이 들었던 일들이? 그렇다. 많은 정보가 차단되어 있고, 여전히 세월호에 관한 진실은 안갯속에 있다.
 
안갯속에서 세월호를 꺼내야 한다. 아니, 안개를 몰아내야 한다. 안개를 몰아내는 방법, 그것은 진실을 밝히는 일밖에 없다.
 
이 소설은 민간잠수사를 주인공으로 한다. 누구보다도 먼저 달려와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수색작업을 했던 사람들.
 
누구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보상을 받으려고 한 것이 아니다. 자신들이 지닌 능력으로 바닷속에 있는 사람들을 모시고 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공권력이 제대로 활동하지 않았기에, 마치 전쟁 때 의병이 나라를 구하겠다고 일어났듯이, 이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또 해야만 할 일이었기 때문에 앞뒤 재지 않고 바다로 달려왔다. 
 
그리고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한 명이라도 더 모시고 나오기 위해서. 데리고가 아니다. 모시고다. 소설에서는 분명 모시고 온다고 표현되어 있다. 얼마나 소중한 생명인가? 비록 목숨이 끊어졌다고 해도 소중한 존재다. 함부로 할 수 없는. 모셔야만 하는 그런 존재.
 
하지만 그런 민간잠수사들에게 나라는 어떠했는가를 생각하면 참으로 답답하다. 그들이 어떤 대우를 받고 한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그들이 생활할 수는 있게 해주어야 하는데, 그 뒤에 일어난 일들은 참담하다.
 
나라 존재가 무엇인지, 위정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 이 점을 소설은 허구로 파고든다.
 
소설이 꾸며낸 이야기라고 하지만, 이 꾸며냄은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방편이다. 4년이 지났음에도 세월호는 진행형이다. 밝혀야 할 사실이 너무도 많다. 그리고 해결해야 할 일도 많고.
 
소설을 읽으며 최명란이 쓴 시 '베짱이'가 생각났다. 지금도 이런 베짱이들이 국회에 드글드글하니, 세상 일은 반복이 되는지. 학습효과가 없나 보다. 아니면 기레기로 통하는 언론들이 국민들의 귀와 눈을 막은 정도가 아니라 뇌 깊숙이까지 점령했는지도.
 
   베짱이
 
너 전생에 정치인었나 보구나
늘 같은 소리로만 울어대니 말이야
 
최명란, 결혼, 맛있겠다. 문학수첩. 2001년 초판. 35쪽.
 
한결같음이 짜증날 때가 있다. 십 년 넘게 한결같이 헛소리만 하는 정치인들을 보며, 그들을 소환할 방법도 없는 현실이 갑갑하기만 하다.
 
소설에는 정치인은 나오지도 않는다. 지나가는 투로 국회의원들이 잠깐 언급되기는 하지만, 세월호 사건 때 정치인들은 제 역할을 하나도 하지 못했다. 그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4년이 지난 지금에도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지. 같은 소리만 반복한 정치인들이다.
 
이 소설은 유가족을 주인공으로 삼지 않고, 수색 작업에 참여했던 민간잠수사를 통해 세월호에 다가가고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은 분명 구조 작업이 아니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미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는 골든 타임이 지난 다음에 그들이 배로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무엇하고 있었나? 민간잠수사들이 올 때까지 배 속에 있던 사람들을 구할 잠수사가 우리나라에는 없단 말인가. 그런 구조 팀이 나라에 없단 말인가. 분명 아닐텐데... 따라서 소설에서 주인공은 구조 작업이 아니라 희생자를 모시고 오는 작업이라고 한다. 너무 슬프게도) 그들이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는지, 단지 세월호 유가족들뿐만이 아니라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이 모두 고통받고 있음을 소설은 잘 보여주고 있다.
 
이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은 진실을 밝히는 것뿐이다. 진실이 밝혀져야 이들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그 점을 명심하지 않으면 누가 세월호에 대해서 이야기해도 그것은 '거짓말이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철저하게 밝혀야 한다. 밝힌 다음 사람들 마음을, 몸을 치유해야 한다. 또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땜질 식 처방이 아니라 사회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소설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다. 
 
먹먹함 속에서 읽어나가는 소설. 하지만 읽어야 할 소설. 소설을 통해서 우리는 여전히 진실은 멀리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소설은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 이렇게 희망이 우리에게 다가왔으면, 우리가 희망을 잡고 진실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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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라 시대의 사랑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8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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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이다. 천천히 읽게 된다. 페르미나와 플로렌티노가 늙어가듯이 소설도 그렇게 천천히 전개된다. 우르비노 박사가 죽은 뒤, 그들이 다시 만나게 되기까지 과정이 하나하나 펼쳐진다.

 

열정적인 사랑, 죽을 것 같은 사랑 속에서도 페르미나를 잊지 못하는 플로렌티노는 페르미나를 잊지 않기 위해 육체적인 사랑에 빠져든다. 그가 관계한 여성이 600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그 중에 열정적인 관계를 맺은 여인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남자가 사랑을 유지하는 방법은 자신의 몸을 확인하는 것. 확인을 다른 여자의 몸을 통해서 하는데, 여기에 단순히 몸만을 취하지는 않는다.

 

몸을 취한다는 것은 마음을 취한다는 것과 연결이 된다. 몸만을 추구하는 사랑은 돈이 매개된 사랑이다. 돈으로 제 욕정으로 해소하기 위해 사는 관계, 그것이다. 그러나 플로렌티노는 돈으로 여자를 사지 않는다.

 

물론 돈을 받고 몸을 파는 여인과도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그 여인은 직접 돈을 받지 않는다. 저금통에 돈을 넣고 마는 것, 또 플로렌티노가 힘들어할 때 찾아가 위안을 받는 것.

 

이렇게 그와 관계를 맺은 여인들도 늙어가는데, 유일하게 관계를 맺지 않는 여인이 있다. 흑인 여성인 레오나 카시아니. 이 여인은 플로렌티노가 자려고 할 때 그를 아들로 생각한다고, 아들과 관계를 맺을 수 없다고 거절한다.

 

이 여인은 플로렌티노가 선박 회사의 회장에 오르게 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는데, 어머니를 잃은 그에게 레오나는 어머니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또 한 여인이 등장하는데, 결국 자살하고 마는 아메리카 비쿠냐, 십대의 나이에 플로렌티노와 관계를 맺는 그녀는, 마치 롤리타를 연상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플로렌티노가 페르미나로 인해 그녀와 관계를 끊자 자살하고 만다.

 

십대 여인이 칠십 대 노인과 사랑에 빠진다? 소설은 이게 가능하다고 하고 있다. 세상에 사랑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이런 나이가 상관없음이 바로 페르미나와 플로렌티노의 사랑에서 나타난다. 노인들의 사랑을 추악한 것으로 여기는 페르미나의 딸과 아들과 달리 며느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에는 신분도 나이도 필요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만의 사랑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이 들어서 하는 사랑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정신적인 사랑만은 아니다. 육체적 사랑도 가능하다.

 

페르미나와 플로렌티노는 나중에 육체 관계를 갖는다. 처음에는 그다지 만족하지 못하지만, 이들은 서로가 만족할 만한 육체 관계를 찾아낸다.

 

그것은 서로의 마음이 통했을 때 관계를 맺는 것이다. 다른 때는 그저 함께 있기만 해도 좋다. 그렇게 잔잔한 만남, 잔잔한 사랑으로 변해간다.

 

이 소설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공적인 생활의 과제는 두려움을 지배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고, 부부 생활의 과제는 지겨움을 극복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89쪽)

 

그렇다. 이것이 바로 사랑이다. 불처럼 이는 사랑으로 결혼에 이르렀다고 해도, 이들의 생활은 반복으로 점철된다.

 

반복되는 삶, 지겨움이다. 이 지겨움을 이겨낼 때 부부 생활은 지속된다. 하지만 지겨움을 이겨내지 못하면 일탈이 일어나거나 부부 생활이 파탄나게 된다.

 

우르비노 박사와 페르미나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르비노 박사 역시 바람을 피우고, 그런 관계를 통해서도 이들의 결혼 생활은 계속 유지된다. 한때의 바람, 이것은 부부 생활에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다. 몇 십년 동안 지속되는 비슷한 일상이 얼마나 지겹겠는가. 사랑에 빠졌을 당시에는 새로움의 연속이었지만, 결혼하고 몇 년이 지나면 새로울 것 하나 없는 일상이 시작된다.

 

일상의 연속, 이것은 지겨움이고, 바로 '별것'이었던 사랑이 '별것 아님'이 되고 만다. 이렇게 별것 아닌 사랑 속에서도 결혼 생활은 지속되는데, 이런 지속이 바로 사랑을 '별것'으로 만들어 준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랑은 '별것'이  '별것 아닌 것'이 되었다가 다시 '별것'이 되는 과정이다. 이 '별것'에 한 사람과의 사랑이 자리잡을 수도 있고, 또 사별을 한 뒤 다른 사람과의 사랑이 될 수도 있다.

 

이 소설에서는 페르미나와 플로렌티노의 사랑이 대미를 장식하게 되는데... 한 순간도 페르미나를 잊지 못했다는 플로렌티노의 말은 다른 말로 하면 다른 여자들과 사랑을 할 때 최선을 다했다는 의미도 된다.

 

그는 그렇게 페르미나를 기억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해 사랑을 하고 결국은 그가 처음으로 사랑했던 페르미나와 맺어지는 것.

 

환상적인 사랑이 아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사랑이다. 현실로 꽉 찬 그런 삶이 이 소설을 지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누가 사랑에 환상을 품을 수 있단 말인가. 무려 53년을 기다려 맺어진 사랑이라고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생각할 수만은 없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일상이 너무도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적나라한 인생들이 모여 우리 삶을 이룬다는 것을 소설은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별것' 아닌 삶을 '별것'인 것으로 만들어준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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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4 08: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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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4 0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7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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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케스 작품으로는 두 번째 작품 읽기다.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느꼈던 환상적인 이야기가 이 소설에서는 없다.

 

그냥 우리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제목이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다. 콜레라 시대, 지금은 사라진 시대다. 그렇다면 과거 시대의 사랑이라는 말일까. 왠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이들의 사랑이 지금으로부터 따지면 과거에 해당하겠지만, 사랑은 시대를 넘어 공통된 무엇이 있다.

 

사랑에 빠졌을 때는 열병을 앓듯이 사랑이 전부인 것처럼, 목숨을 바칠 것처럼 푹 빠져 있고, 그 사랑에 전염되어 다른 것은 생각도 못하게 되는데, 시간이 지나면 콜레라가 이미 과거 질병이 되었고, 이제는 어떻게 예방해야 하는지도 잘 알려졌듯이, 사랑 역시 과거의 어떤 일로 사라지고 만다.

 

자신을 달뜨게 하고, 들뜨게 하고, 사랑 외에는 다른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게 하는 그런 열병같은 사랑이 시간이 지나면서 생활 속에 녹아들어가고 결국 생활밖에는 남지 않게 되는 상황. 결국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는 콜레라에 걸렸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라는 것. 그럼에도 그게 지속되면 안 된다는 것.

 

1권의 마지막 대사가 바로 이것이다. "별것 없더라고요." (286쪽)

 

신혼여행에서 행복한 순간을 보내고 돌아온 페르미나 다사가 한 말이다. 사랑은 빠져 있을 때는 별것이다. 정말로 특별한 무엇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별것 아닌 것이 된다.

 

이렇게 별것 아닌 것이 되었을 때 사랑은 생활 속에 녹아들어 더 이상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렇게 말한다.

 

처음에는 사랑으로 살지만 나중에는 정으로 산다고. 이 소설의 주인공인 페르미나 다사와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 역시 정으로 살아간다. 이들은 50여 년을 함께 살지만 그것은 함께 살아가는 것뿐이다.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 즉 페르미나 다사가 플로렌티노 아리사와 사랑에 빠졌을 때 그를 이상적인 모습으로 만들게 되는 것, 그러나 결혼이라는 현실에 직면했을 때 그를 다르게 보게 되는 것. 그리고 현실에 안주해 결혼 생활을 하면 그 다음부터는 죽을 것 같은 사랑은 없다.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참 어려운 일이다. 별것이다. 그래서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은혼식, 금혼식, 금강혼식(다이아몬드식)을 하는 것 아니겠는가.

 

함께 25년, 50년, 75년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겠는가. 처음엔 불붙는 사랑이 있겠지만, 콜레라와 같은 열병을 앓겠지만, 콜레라가 지속되면 삶은 유지될 수 없으니, 곧 정신차리게 된다.

 

그 다음에는 생활이 자리를 차지한다. 그렇게 생활 속에서 관계를 맺고 살아가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 삶이다.

 

소설은 나이 든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로부터 시작한다. 그가 죽게 되는 사건이 소설의 앞부분을 차지한다. 그 다음에 우르비노 박사의 부인인 페르미나 다사와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사랑, 서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편지로 서로에게 환상을 키워가는 그런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다.

 

편지로 만나는 사랑, 그것은 상대에 대한 환상을 키우게 된다. 이런 환상은 실물을 보는 순간 깨지게 된다. 환상이 깨지면 그때부터 현실이 들어온다. 현실이 들어왔을 때 페르미나 다사가 선택하는 것은 결혼이다.

 

상류층 인사라고 할 수 있는 우르비노 박사와 결혼하는 것. 이들의 결혼으로 충격을 받은 아리사는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되고, 파리로, 유럽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아이를 임신한 페르미나가1권 마지막에서 하는 말 "별것 없더라고요."

 

이 '별것 없더라고요'가 바로 '별것이더라고요'가 된다. 우리 삶은 이런 별것 없는 것이 바로 별것인 삶이다. 그렇게 삶은 유지된다.

 

'백년 동안의 고독'이 환상을 보여주고 있다면 이 소설은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2권에서는 결혼한 페르미나가 어떤 현실을 살아가는지, 페르미나를 사랑하는 아리사가 어떤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지가 펼쳐질 것이다.

 

내 삶, 별것 아닌 것 같은 이 삶이 바로 별것이라는 생각을 소설을 읽으면서 하게 된다. 그러니 이런 별것 아닌 삶이 소설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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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7
에드워드 올비 지음, 강유나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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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속았다. 아니, 번역을 한 제목에 속을 수밖에 없었다. 영어로 몇 개 철자만 바꾸어 뜻을 전달할 수 있겠지만, 영어와 전혀 다른 언어인 한글로 번역을 했을 때는 영어로 말하는 말장난이 먹혀들지 않는다.

 

이 희곡도 마찬가지다. 버지니아 울프하면 유명한 작가를 연상하고, 그를 두려워하랴라고 하면 도대체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희곡인지 뭔지 생각하게 되는데...

 

버지니아 울프가 어렸을 때 성폭행을 당하고 그 후유증을 심각하게 앓았다는 사실, 가정 생활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하고 자살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희곡 내용을 상상하는데... 아니다. 버지니아 울프가 나오는 장면은 노래에서밖에 없다.

 

해설을 보니 조금 이해가 된다. 노래는 아기돼지 삼형제에서 돼지들이 '누가 늑대를 두려워하랴'라고 부르는 노래를 비튼 것이란다.

 

울프... 늑대... 발음에서 같을 뿐이다. 그러니 우리말로 번역을 해놓으면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데... 그런데도 이상하게 버지니아 울프와 이 희곡 내용이 통한다는 느낌이 든다.

 

마사와 조지는 부부지만, 또 손님으로 나오는 허니와 닉도 부부지만 이들에게 사랑이 넘친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아직 젊은 부부인 닉과 허니는 그래도 서로를 이해하는 모습이 보이지만, 주인공인 마사와 조지는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다.

 

어쩌면 이들이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상처를 주면서 그것이 사랑이라고 여기는 것.

 

가족이 이렇게 되면 파탄날 수밖에 없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지, 상대를 한없는 나락으로 이끌어가는지 생각해 보게 하는 희곡이다.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서로를 헐뜯고 서로를 화내게 하고, 그것도 모자라 없던 이야기(아이)도 만들어내는 부부. 이들은 자신들이 살아온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받은 상처를 극복한 다음 만났다면 이들이 서로 상처를 주는 관계만을 지니게 되지는 않았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극한 말들을 쏟아내면서 상처를 주면서 그것이 사랑인 줄 착각한다. 이런 관계에서 사랑이 넘치는 가정, 우리가 꿈꾸는 가정은 이루어질 수 없다.

 

우리는 가정에 대한 환상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서로가 함께 있으면 마냥 행복한 관계, 그런 장소로 가정을 꿈꾸는지도 모른다. 그런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 마음을 열어야 한다. 자신만이 지닌 울타리를 없애야 한다.

 

자기 울타리를 지니고 상대방을 울타리 밖으로 자꾸만 몰아내는 말들, 그런 행동들을 하면 가정은 유지되지 않는다. 자기가 지닌 울타리에 문을 내고, 길을 내고, 서로 받아들여야지만 가정이 유지될 수 있다.

 

서로 자기 이야기만 하는 마사와 조지. 이런 가정이 지금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 가장 평화롭고 사랑이 넘쳐야 할 가정이 비난과 폭력과 두려움이 지배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

 

적어도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자기들 울타리에 문을 내고, 문과 문 사이에 길을 내야 하는데, 또 그 사이에 함께 할 장소를 마련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서로를 밀어내는 말들만, 행동들만 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 희곡이 오래 전 미국 가정이 붕괴되어 가는 모습을 그렸다고는 하지만, 지금 우리 가정들도 이 부부들 모습과 얼마나 달라졌는지...

 

타산지석(他山之石)이어야 한다. 이 희곡을 읽으며 가정이 어떠해야 하는지, 내가 살고 있는 가정은 어떤 가정인지 되돌아 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적어도 이렇게 삭막한 가정은 아니어야 한다는 그런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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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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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읽은 책이다. 그때는 사회-역사 지식이 부족해서 동물들이 반란을 일으켰지만 또다른 동물이 독재를 한다 정도로만 이해하고 말았던 책이다.

 

다시 나이들어 읽으면 그동안 살아온 것들이 소설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 책 해설에서도 나오지만 책이 발간될 당시 사람들은 이 소설에서 풍자하고 있는 대상이 누구인지 명확히 알았으리라.

 

그러나 지금은 소설이 발간된 지도 70년이 넘었고, 그만큼 강산이 일곱 번이나 변했고, 또 이데올로기로 대립하던 것이 이제는 종교 대립이나 경제 대립으로 넘어가 버렸으니, 지금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으며 오웰이 풍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아내는 데 어려움이 있다.

 

그럼에도 소련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이 바로 소련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물들의 반란은 민중들의 혁명이고, 정권을 잡은 돼지는 스탈린이며 쫓겨난 돼지는 트로츠키라는 것. 그리고 한없이 일만 하다 죽게 되는 복서(말)는 프롤레타리아를 의미한다는 것. 여기에 스퀼러라는 돼지가 나오는데, 이는 왜곡된 언론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민중은 혁명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지만, 그 혁명은 곧 몇몇 권력가들에 의해 배신당하게 되고, 민중들의 삶은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

 

얼핏 보면 사회주의를 비판하고 있는 소설같지만, 사회주의라는 이념보다는 스탈린이라는 권력자가 사회주의 이념을 어떻게 왜곡했는지를 비판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조지 오웰은 사회주의 (어쩌면 그는 아나키스트라고 하는 편이 더 좋을지도 모르지만)를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동물농장 말고 또다른 글이 두 편 실려 있는데, 한 편은 '자유와 행복'이다. 인간에게 자유와 행복은 양립할 수 있는가, 없는가라는 질문을 한다면, 독재자들은 양립할 수 없고, 행복을 위해서 자유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유롭지 않은 행복이 어떻게 행복일 수 있을까? 동물농장에서 다른 동물들은 서서히 자신들 자유를 잃어간다. 잃어가는 줄도 모르고 잃어가는데, 이들 삶은 점점 버거워지고 힘들어진다. 반면에 몇몇 권력자들은 점점 더 살찌게 되고.

 

그러니 우리는 자유와 행복은 양립해야 한다고, 어느 하나를 포기할 수 없다고 해야 한다. 이 점을 '동물농장'을 통해 생각하게 된다.

 

따라서 '동물농장'은 단순히 스탈린 체제에 있던 소련 사회를 풍자하는 것을 넘어선다. 우리들이 잘살기 위해서 벌이는 일들이 바로 '자유와 행복'의 관계를 제대로 정립하는 일이라는 것.

 

인간으로부터 독립했지만, 이들은 그래서 자유를 획득했지만, 곧 자유는 구속당하고, 행복은 강요당한다. 강요된 행복은 왜곡된 언론에 의해서 진정한 행복인 것처럼 가려지지만, 그렇다고 진정으로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이들은 점점 힘든 삶을 살아가게 된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돼지와 인간들을 구분할 수 없게 되는 많은 동물들의 모습이 바로 이것이다.

 

혁명은 혁명 이후가 더 중요하다. 혁명 이후 발을 잘못 디디면 혁명 전과 같은 상황으로, 아니 더 나쁜 상황으로 들어가게 된다.

 

'동물농장'에서 권력을 쥐게 되는 돼지들 말고, 다른 동물들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다. 죽을 때까지 일만 하던 복서가 결국 팔려가, 권력자들 향연에 필요한 돈을 마련해주는 것처럼.

 

이런 상황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목적으로 이 소설이 씌어졌다고 보면 된다. 또다른 글인 '나는 왜 쓰는가'에서 오웰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동물농장'은 내가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하나로 융합해 보고자 한, 그래서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충분히 의식하면서 쓴 첫 소설이었다.' (143쪽)

 

한참 세월이 흘렀지만 이 소설은 우리에게 혁명 이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주고 있어서 지금도 유효하다.

 

혁명 자체도 중요하지만, 혁명 이후가 더 중요함을 소설은 생각하게 한다. 혁명 이전의 일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소수에게 권력이 독점되는 일을 막아야 한다는 것, 왜곡된 정보를 흘리는 언론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 무엇보다도 민중들이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

 

깨어 있더라도 참여를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 소설에서는 당나귀 벤자민이 이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혁명 이후를 예측하고 있다. 그럼에도 행동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도 않는다. 이런 사람,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이 점도 경계해야 한다.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가 많은 소설이다. 사회-역사와 관련지어 읽으면,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사회를 꿈꾸며 읽으면 더 많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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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3 09: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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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3 15: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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