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레라 시대의 사랑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7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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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케스 작품으로는 두 번째 작품 읽기다.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느꼈던 환상적인 이야기가 이 소설에서는 없다.

 

그냥 우리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제목이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다. 콜레라 시대, 지금은 사라진 시대다. 그렇다면 과거 시대의 사랑이라는 말일까. 왠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이들의 사랑이 지금으로부터 따지면 과거에 해당하겠지만, 사랑은 시대를 넘어 공통된 무엇이 있다.

 

사랑에 빠졌을 때는 열병을 앓듯이 사랑이 전부인 것처럼, 목숨을 바칠 것처럼 푹 빠져 있고, 그 사랑에 전염되어 다른 것은 생각도 못하게 되는데, 시간이 지나면 콜레라가 이미 과거 질병이 되었고, 이제는 어떻게 예방해야 하는지도 잘 알려졌듯이, 사랑 역시 과거의 어떤 일로 사라지고 만다.

 

자신을 달뜨게 하고, 들뜨게 하고, 사랑 외에는 다른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게 하는 그런 열병같은 사랑이 시간이 지나면서 생활 속에 녹아들어가고 결국 생활밖에는 남지 않게 되는 상황. 결국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는 콜레라에 걸렸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라는 것. 그럼에도 그게 지속되면 안 된다는 것.

 

1권의 마지막 대사가 바로 이것이다. "별것 없더라고요." (286쪽)

 

신혼여행에서 행복한 순간을 보내고 돌아온 페르미나 다사가 한 말이다. 사랑은 빠져 있을 때는 별것이다. 정말로 특별한 무엇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별것 아닌 것이 된다.

 

이렇게 별것 아닌 것이 되었을 때 사랑은 생활 속에 녹아들어 더 이상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렇게 말한다.

 

처음에는 사랑으로 살지만 나중에는 정으로 산다고. 이 소설의 주인공인 페르미나 다사와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 역시 정으로 살아간다. 이들은 50여 년을 함께 살지만 그것은 함께 살아가는 것뿐이다.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 즉 페르미나 다사가 플로렌티노 아리사와 사랑에 빠졌을 때 그를 이상적인 모습으로 만들게 되는 것, 그러나 결혼이라는 현실에 직면했을 때 그를 다르게 보게 되는 것. 그리고 현실에 안주해 결혼 생활을 하면 그 다음부터는 죽을 것 같은 사랑은 없다.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참 어려운 일이다. 별것이다. 그래서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은혼식, 금혼식, 금강혼식(다이아몬드식)을 하는 것 아니겠는가.

 

함께 25년, 50년, 75년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겠는가. 처음엔 불붙는 사랑이 있겠지만, 콜레라와 같은 열병을 앓겠지만, 콜레라가 지속되면 삶은 유지될 수 없으니, 곧 정신차리게 된다.

 

그 다음에는 생활이 자리를 차지한다. 그렇게 생활 속에서 관계를 맺고 살아가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 삶이다.

 

소설은 나이 든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로부터 시작한다. 그가 죽게 되는 사건이 소설의 앞부분을 차지한다. 그 다음에 우르비노 박사의 부인인 페르미나 다사와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사랑, 서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편지로 서로에게 환상을 키워가는 그런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다.

 

편지로 만나는 사랑, 그것은 상대에 대한 환상을 키우게 된다. 이런 환상은 실물을 보는 순간 깨지게 된다. 환상이 깨지면 그때부터 현실이 들어온다. 현실이 들어왔을 때 페르미나 다사가 선택하는 것은 결혼이다.

 

상류층 인사라고 할 수 있는 우르비노 박사와 결혼하는 것. 이들의 결혼으로 충격을 받은 아리사는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되고, 파리로, 유럽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아이를 임신한 페르미나가1권 마지막에서 하는 말 "별것 없더라고요."

 

이 '별것 없더라고요'가 바로 '별것이더라고요'가 된다. 우리 삶은 이런 별것 없는 것이 바로 별것인 삶이다. 그렇게 삶은 유지된다.

 

'백년 동안의 고독'이 환상을 보여주고 있다면 이 소설은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2권에서는 결혼한 페르미나가 어떤 현실을 살아가는지, 페르미나를 사랑하는 아리사가 어떤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지가 펼쳐질 것이다.

 

내 삶, 별것 아닌 것 같은 이 삶이 바로 별것이라는 생각을 소설을 읽으면서 하게 된다. 그러니 이런 별것 아닌 삶이 소설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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