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놓고 다정하진 않지만 - 카렐 차페크의 세상 어디에도 없는 영국 여행기 흄세 에세이 5
카렐 차페크 지음, 박아람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행기를 왜 읽을까?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을 다른 사람이 가본 다음에 그곳에 대해 알려주기 때문일까? 단지 가보지 못한 곳을 알려준다는 이유로 여행기를 읽기도 하겠지만, 여행기를 통해서 자신을 발견하려고 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처럼 여행기는 일종의 거울 역할을 한다.


거울에 나를 비추면 내가 보인다. 그런데 그 내가 진짜 나일까? 내 모습을 대칭되게 보여주는 것이 거울 아니던가. 그렇다면 여행기는 나를 살펴보게 하되, 다른 모습의 나를 발견할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차페크가 영국 여행을 하면서 썼던 글이라고 하는데, 단지 영국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역할만 하지는 않는다. 이 여행기를 통해 차페크는 영국이라는 나라를 통해서 다른 무엇을 생각하게 한다. 그것이 여행기의 목적이기도 하겠다.


차페크 글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유머가 이 책에도 어김없이 담겨 있다. 또한 풍자와 해학도 넘쳐나고. 여행기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한데, 무엇보다도 지금의 영국과는 엄청나게 다른 과거의 영국, 무려 100년 전의 영국이기는 하지만 지금도 우리가 맞아, 영국은 그래, 하는 것들을 만나볼 수 있어서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압도적인 느낌에 휩싸이는 경우는 대개 두 가지입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무언가를 발견할 때, 그리고 아주 익숙한 무언가를 발견할 때죠.' (10쪽)


이것이 바로 여행기를 읽는 이유이기도 하고, 여행기에 이런 압도적인 느낌을 주는 무엇인가가 없다면 그다지 흥미롭지 않을 것이다.


제목을 '대놓고 다정하지 않지만'이라고 붙인 이유는 영국인들의 특성을 설명하고 있는 차페크의 내용에서 따왔다고 할 수 있다. 기차 여행 내내 아무 말도 없이, 눈길 한번 주지 않고 함께 가는데, 내릴 때 키가 작아 짐칸에서 짐을 내리는데 어려움을 겪으면 아무 말도 없이 일어나 짐을 그냥 내려주는 영국 사람들 이야기... 대놓고 다정하지는 않지만 그들에겐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다는 것을 차페크는 그러한 예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 단순하게 영국 여행기라고 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영국인들의 특성을 드러내는 제목을 붙인 것은 참 좋다는 생각이 든다.


다정한 표현을 하지 않는 영국 사람들의 모습과 더불어 거리의 모습을 '런던의 거리는 그저 삶이라는 물줄기가 집에 닿기 위해 거쳐가는 홈통 같은 곳입니다. 사람들은 거리에서 삶을 살지 않거든요. 무언가를 보거나 얘기하거나 서 있거나 앉아 있지 않아요.'(22쪽)라고 비판하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대놓고 다정하지 않은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서로 무언가를 만들어가지는 않을 테니까.


그런데 반대로 광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우연히 들르게 된 하이드 파크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여러 활동들을 한다. 즉, 우연한 장소에서는 서로 관계를 맺지 않지만 광장에서는 활발한 관계들이 맺어지고 있는 것이다. 광장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다고 해야 하나...


이 두 장면을 읽으면서 우리나라가 떠올랐다. 우리나라 역시 길거리에서 무언가를 할 수 없다. 그러나 광장에서는 무언가가 일어난다. 이 광장에서 차페크가 본 영국의 하이드 파크에서 일어난 일처럼 수시로,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고, 또 다른 활동을 하는 많은 집단들이 자유롭게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광장을 잘 활용하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 아닌가 하고...


차페크가 런던의 거리를 보면서 천편일률적인 집들에 놀라는 장면(13쪽)이 있는데, 아마도 그가 서울에 오면 사각에 하늘 높이 뻗은 형태의 건물들만 즐비한 모습에 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 물론 빌딩 숲 사이로 고궁들과 한옥이 남아 있는 서울의 모습을 보고 다른 표현을 하기도 하겠지만.


그는 근대 예술과 과거의 활동들을 보면서 예술에서 '발전이라는 건 없습니다. '전진'과 '퇴보'가 아니라 끝없이 새로운 창작이 이어질 뿐이죠. 역사와 다양한 문화, 수집품, 세계 각지의 보물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이것뿐입니다.'(47쪽)라고 하면서 예술에서 등급을 매기거나 발전, 전진, 퇴보라는 평가를 하는 것이 부정하고 있다. 그렇다. 예술에서 어찌 우월을 따질 수 있단 말인가. 그의 생각에 공감한다.


이처럼 차페크는 영국 여행을 하면서 영국의 특성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그러니 이 여행기가 거울의 역할을 하고, 앞에서 인용했듯이 다름과 비슷함을 통해서 충격을 주기도 한다.


그러면서 영국인들은 어디서나 영국인들이라고 하는데, 이는 자신들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영국인들을 비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금도 영국은 마찬가지다. 자신들이 세계라고 생각하는지 차페크가 우려했던 것들을 '브렉시트'를 통해 유럽연합에서 탈퇴하면서 다시금 반복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가 길지 않은 영국 여행임에도 영국의 특성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었고, 그래서 이러한 영국의 모습을 거울로 삼아 자신의 조국인 체코에서 반복하지 않게 하자는 마음을 담아 이 여행기를 썼다고 할 수 있다. 


차페크 글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유머를 보자. 영국 음식은 맛없기로 유명한데, 우리나라 출신으로 영국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장하준 역시 그 점은 언급하고 있으니... 그런데 그 맛없음을 차페크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음식이 그들의 성향과 이렇게 연결이 될 수 있다니... 그의 표현으로 이 글을 맺는다.


'훌륭한 영국 요리는 한마디로 프랑스 요리입니다. 보통의 영국인을 위한 보통 호텔의 보통 요리를 맛보면 영국의 우울함과 과묵함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죠. 압축한 소고기에 맛없는 머스터드를 발라 씹어 먹으면서 어느 누가 환하게 웃고 떠들 수 있겠어요? 이에 붙은 타피오카 푸딩을 떼어내면서 어느 누가 큰 소리로 기뻐할 수 있을까요? 분홍빛 덱스트린에 담근 연어를 먹다 보면 누구든 지독하게 진지해지지 않을 수 없죠. 살아 있을 때는 물고기였다가 식용이라는 우울한 상태가 되면 '신발 밑창 튀김'으로 돌변하는 것을 아침과 점심, 저녁으로 먹고, 가죽을 우린 듯 시커먼 홍차로 하루 세 번 위를 그슬리고, 칙칙한 데다 미지근하기까지 한 맥주를 마시고, 특색 없는 만능 소스와 절인 채소, 커스터드와 양고기를 먹으며 살아왔다면 보통의 영국인에게 주어진 육체적 쾌락은 다 누린 셈이니 이제는 과묵함과 진지함, 엄격한 도덕성을 포용하기 시작합니다.' (183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2025-03-06 1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차페크 님이 남긴 글이 새로 나왔으면 찾아봐야겠습니다

kinye91 2025-03-06 14:14   좋아요 0 | URL
저도 차페크 작품들을 찾아 읽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