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교육은 야만이다 - 김누리 교수의 대한민국 교육혁명
김누리 지음 / 해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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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교육=능력주의=공정' 세 축이 함께 돌아가고 있다고 했다. 야만을 향해. 야만인지도 모르고, 그것만이 미래로 가는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하는 듯이, 경쟁 교육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서 더 심해졌다.


김누리 교수는 우리 교육이 이렇게 황폐화된 데에는 경쟁 교육이 주요한 축으로 작동한다고 본다. 경쟁은 곧 능력주의와 연결이 되고, 이는 승자에게는 우월감을, 패자에게는 열등감을 넘어 모멸감을 심어준다고 한다. 그러니 이러한 능력주의가 곧 공정이라는 말과 연결이 되어, 자신이 누리는 결과를 당연하게 여기게 된다. 


오찬호의 책처럼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가 되는 사회다. 이런 말을 공공연히 할 수 있는 사회가 과연 바람직한 사회라고 할 수 있는가.


중고등학교 교육만이 아니다. 지금 경쟁 교육은 초등학교부터 빠르면 유치원 단계에서부터 시작된다. 아주 어려서부터 경쟁을 내면화시키는 것이 현재 우리나라 교육의 모습이다.


그런 사회에서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을까? 성적이 좋은 아이는 좋은 아이대로, 안 좋은 아이는 안 좋은 아이대로 불행의 늪에서 허우적 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종 목표는 대학입시. 아니다. 요즘은 대학에 들어가도 눈코 뜰 새 없이 공부하고, 아르바이트 해야 한다고 하니, 대학에 들어가서도 경쟁이 몸에 밴 행동들은 고쳐지지 않는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또다른 경쟁을 해야 한다.


평생토록 경쟁을 해야 하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행복은 저 멀리에 있다. 그리고 이렇게 행복을 쫓아버리는 역할을 학교 교육이 담당하고 있다는 씁쓸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우리 교육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너무도 당연한 말. 당연해서 상식이라고 해야 할 말들인데, 이 상식이 우리에게는 왜 유토피아로 여겨질까.


갈 수 없는 곳,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의미를 지닌 말 그대로의 유토피아. 다른 나라에서는 상식으로 이미 실현되고 있음에도, 우리에겐 그냥 남의 나라 일인 교육 혁명. 교육 개혁으로는 부족하다고 교육 혁명을 이루어야 한다고 김누리 교수는 주장하고 있는데...


교육 혁명의 주체는 교사-학부모-학생이어야 하는데, 그런데, 정치적 능력을 거세당해버린 교사들은 집단 행동을 할 수조차 없고, 학생들은 경쟁 교육을 내면화해서 함께하기보다는 나만 아니면 돼, 또는 나만 잘하면 돼라는 인식을 지니고, 학부모는 우리 아이들이 아니라 내 아이가 잘 돼야 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으니...


이 나라는 소위 교육의 3주체라고 하는 집단이 모두 교육 혁명과는 거리가 먼 상태에 빠져 있으니, 김누리 교수의 이 책이 아무리 좋은 제안을 하고 있어도 '유토피아'에 불과하게 될 거라는 비관적 전망이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희망은 절망 속에서 보이지 않는가. 이런 경쟁 교육의 야만성을 깨뜨릴 존재도 교사-학부모-학생일 수밖에 없다. 결국 교육 혁명의 희망은 이들에게서 찾아야 한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김누리 교수는 자신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교육 원리를 '능력주의에서 존엄주의로' 바꾸어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 능력주의의 문제는 많은 학자들이 이미 이야기했다. 그러니 교육은 능력주의가 아닌 존엄주의로 바뀌어야 한다. 그런 교육을 해야 한다. 교권이니 학생인권이니 하는 말이 이러한 존엄주의 교육에 녹아들어가기 때문에, 교권과 학생인권이 분리될 수가 없다. 인간의 존엄은 누구에게나 해당되기 때문이다.


다음은 교육 목표를 '인적 자원에서 민주시민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한다. 당연한 말이다. 사람을 자원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교육을 상품으로 여긴다는 말이다. 상품에는 존엄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교육이 상품이 되는 순간 학생과 학부모와 교사는 분리될 수밖에 없다. 소비자와 서비스 제공자로. 자신을 가르치는 사람, 자기 자식을 가르치는 사람을 단순히 서비스 제공자로 본다면, 이 관계에서는 교육의 '주체'라는 말을 쓸 수가 없게 된다.


대립하는 관계로 정립이 된다. 학부모-학생은 요구하고, 교사는 제공해야 한다. 소비자가 만족할 만한 서비스를. 그렇지 않으면 온갖 민원에 시달리게 된다. 환불해달라고 난리다.


이런 극단적인 경우가 최근에 있었던, 교사들은 체험학습을 가지 않기로 하고, 학부모들은 그런 교사들을 아동학대로 신고하겠다고 한 사건에서 볼 수 있다.


체험학습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모든 책임을 (그것도 민형사상 책임을) 교사에게 지우는 현실에서 교사들은 체험학습을 기피하고, 학생들이 좋아하는 체험학습을 가지 않으려 하는 교사들은 아동을 학대하는 것이라고 판단하는 학부모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소비자와 서비스 제공자로 자리매김한 학교 현실의 모습인 것이다.


그러니 교육 목표가 절대로 '인적 자원'이어서는 안 된다. 민주시민 교육을 목표로 한다면, '민주'라는 말에는 대화, 타협, 존중 등의 개념이 들어있기에, 소비자-서비스 제공자 개념이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된다. 지금까지 교육 혁명을 가로막는 교육의 3주체를 분열시키는 장벽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과 더불어 교육 방식을 '경쟁 교육에서 연대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한다. 당연한 말이다. 민주시민 교육은 이미 연대 교육이 될 수밖에 없다. 함께하는 교육. 이것이 앞으로 살아갈 세대에게기성 세대가 줄 수 있는 선물일 수 있다. 희망은 홀로가 아니라 함께에서 더 강해질 수 있다.


  독일 교육을 이야기하면서 독일 68혁명의 걸출한 지도자였던 루디 두치케는 학생들에게 "제도를 통한 행진"이라는 말로 대학에서 선취한 유토피아의 체험을 현실에 확산시킬 것을 요구했습니다.

  68혁명을 주도했던 대학생들은 실제로 독일의 다양한 제도들 속으로 행진에 들어갔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민주주의, 가장 이상적인 사회정의, 가장 이상적인 권력비판의 체험은 이제 현실의 제도 속에서도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들이 가장 중시했던 제도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언론과 교육기관이었습니다. 이것이 인간을 변화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기관이라고 본 것이지요. (279쪽)


이렇게 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민주시민 교육이고, 연대 교육인데, 과연 형식적 민주주의를 이루어냈던 우리의 86세대들은 어떠했는지, 김누리 교수는 이를 비판적으로 보고 있으니, 이 책을 읽으면서 그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러면서 마지막으로 세 가지를 폐지하자고 한다. 그것은 대학 입학시험, 대학 서열, 대학 등록금이다. 아직까지는 우리나라 교육이 대학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 대학 교육을 우선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한 듯하다.


입시제도 개혁과 대학 서열, 대학 등록금 폐지는 예전부터 나왔던 주장이다. 어쩌면 당연할 수 있는 이 주장이 아직까지도 제기되고 있는 이유는, 경쟁 교육을 통한 능력주의가 공고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주장들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강력한 정치력이 필요하다. 뚝심 있는, 교육에 대해 전망을 지니고 있는 정치가 필요하다. 결국 정치다. 제도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개혁은 공염불에 불과하기에, 정치에 참여하는 학생, 교사들이 많아질 수 있게 또다른 축에서 운동을 해야 한다고 한다.


이렇게 교육을 바꾸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없다고 한다. 의사 증원에 반대하는 의사들이 우리나라 의료에는 미래가 없다고 하던데, 그것보다 지금처럼 교육이 지속된다면 의료의 미래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미래가 없어진다. 정말 심각한 문제인데... 사람의 생명을 살린다는 의사들이 이런 교육에 대해서 생각을 해본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하고.


여담으로 우리나라 경쟁 교육이 얼마나 야만적인지 단적으로 알려주는 일이 있다. 어느 고등학교에서 중간고사를 보았는데, 문제가 쉬워서 백 점을 맞은 학생들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보통 그러면 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했구나 좋아해야 하는데, 백 점이 많으면 1등급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백 점을 맞아도 2등급이 되니, 시험 문제를 낸 교사에게 원망의 화살이 돌아갈 수밖에.


이것이 바로 경쟁 교육이 야만일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내가 성취한 결과가 중요하지 않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어느 위치에 있느냐가 중요하다. 그러니 이런 사회에서 어떻게 행복할 수가 있겠는가.


김누리 교수는 이러한 교육을 비판하면서, 자신이 제시한 것들을 실천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교육 효과는 '불행감에서 행복감으로' 바뀔 수 있다고. 그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교육의 모습 아닌가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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