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이 도착하지 않았다니, 이게 무슨 말? 내 얼굴이 내 몸과 떨어질 수가 있나? 나는 들어왔는데, 내 얼굴은 도착하지 않았다니... 그렇다면 얼굴이 지닌 뜻이 뭐지?


  얼굴, 그냥 생각하자. 우리는 얼굴이 자신을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얼굴은 내면을 드러내는 통로라고도 하고. 그렇다면 얼굴이 도착하지 않았다는 것은 자신의 본질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는 말이란 말인가.


  잘 모르겠다. 제목이 된 구절은 '붉은 달(24-26쪽)'이라는 시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집에 들어왔는데, '내 얼굴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것을'(26쪽)이라고 문득 깨달았다고 한다.


  여기에 '마트료시카(120쪽)'라는 시를 보면 '어제의 얼굴을 다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는 구절이 있는데, 내가 밖에 나갔을 때는 얼굴이 함께 들어오지 않았고, 내가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만 내 얼굴을 다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하는데...


얼굴이 나를 알려준다고 하면 나는 어떤 얼굴을 지녀야 할까? 이 구절을 읽으면서 문득 최인훈이 쓴 [가면고]가 생각났다. 가장 완벽한 얼굴을 찾아 다니는 다문고 왕자의 이야기. 그는 완벽한 얼굴을 찾았지만, 시인은 아직 완벽한 얼굴을 찾지 못했다. 그것은 이 사회가 이미 완전한 자신을 발견하기 힘들게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신을 찾기도 전에 생활에 치여 살아가고 있는지도... 그러니 나는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처럼 여러 얼굴을 지니고 있고, 한 얼굴 속에 또 다른 얼굴이, 그 얼굴 속에 또 얼굴이, 얼굴이 계속 들어있는, 내 얼굴이지만, 내 얼굴이 아니기도 한. 내가 지니고 있는 얼굴이지만 새롭고, 또 놓고, 감추고 있는 얼굴일 수도 있는.


하여 나는 나를 찾는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수많은 '나'를 인식하고 있는 사람은 그러한 '나'를 찾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나의 얼굴만이 아니라 남의 얼굴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남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에. 그렇기에 남의 얼굴을 통해서 나의 얼굴을 보기도 하니까.


  우리 사회에 다른 인물들인데 마트료시카와 같이 열어도 열어도 같은 얼굴이 나오는 인물들이 있다. 어쩜 이리도 비슷한지. 이들을 열지 않고 그냥 닫아두고 싶은데, 그런 같은 얼굴을 무슨 자랑이라고 계속 내미는 인간들이 있으니... 시와는 별 관계가 없지만 '마트료시카'라는 제목을 보고서 그런 인물들, 선한 마음, 인물들의 연속이 아니라, 안 보여야, 안 나와야 하는 인물들의 연속에 마음이 무거워지고 있으니...


  남 얼굴 타령은 그만하고, 내 얼굴을 잘 찾아야지. 아니 지금껏 내가 지니고 있던 얼굴들을 부정하지 않고 그 얼굴들을 받아들이면서 조금은 다른 내 얼굴을 만들어가야지.


이 시집에는 '마트료시카'라는 제목을 가진 시가 두 편 있다. 똑같은 제목이지만 내용은 좀 다르다. 그렇지만 본질 찾기는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마트료시카


나는 몇 개의 거울을 들고서 달렸다 // 똑같은 것들이 슬퍼 보였다 // 죽은 지 오래된 얼굴들은 더 안쪽 깊은 곳에 있다


이설야, 내 얼굴이 도착하지 않았다, 창비. 2022년. 70쪽.



마트료시카


문을 열면 / 문이 있었다 // 그 문을 열면 / 또 문이 있었다 // 문의 문을 열면 / 내 얼굴들 쌓여 있고 / 문밖에는 똑같은 눈들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 나는 문의 문을 계속 열고 나갔지만 // 어제의 얼굴을 다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이설야, 내 얼굴이 도착하지 않았다, 창비. 2022년. 1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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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야제 2025-03-18 15: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아요 눌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kinye91님의 시와 소설 평론 글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를 좋아해서 혼자 문학 작품도 읽고 공부도 하고 있는데,
작품 속 아름다움들을 하나하나 면밀히 잘 짚어주시는 글을 보면서 저 또한 즐거워졌습니다.
자주 와서 읽고 문학 공부 열심히 하겠습니다.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kinye91 2025-03-18 16:08   좋아요 1 | URL
제가 감사하죠. 책을 읽고 쓴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는 것은 저의 또다른 즐거움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