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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과 나
이소영 지음 / 글항아리 / 2021년 7월
평점 :
꽃구경, 다양한 꽃과 관련된 축제들이 많다. 지금은 코로나 여파로 꽃 축제 등도 주춤하지만 그래도 꽃이 피는 곳이면 사람들이 모이고 사진을 찍는다. 가끔 아파트 화단 앞에 때 이르게 핀 동백이나 개나리를 발견하면,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간다. 탐스런 수국앞에서 등산복 차림의 아주머니들이 휴대폰을 들이대고 있다. 이 순간은 수국이 아주머니들에겐 임영웅이다. 아름다운 걸 보고 좋아하는 건 인간의 본능이라지만, 아름답다 좋다하고 돌아서는 모습은 아름답지 않을 때가 많다. 작가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온통 짓밟힌 다른 꽃들과 풀, 혹은 혼자만의 소유물로 만들기위해 몰래 캐가기도 한다. 그리고 꽃구경 갈까~ 이 말로 우린 너무나 많은 것을 놓치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꽃, 꽃받침, 줄기, 열매, 그리고 새롭게 알게 된 아름답고 다채로운 색깔의 나무의 피부 수피들을 보러가자고 하기엔 너무 길지 않은가. ㅎㅎ
이소영작가님은 원예학 전공의 식물세밀화가, 학창시절 들었다는 잔디학. 잔디를 뜯어서 전을 붙였다는 전설은 들었지만, 잔디학이라니, 도대체 뭘 배울까 싶지만, 잔디나 질경이처럼 밟혀도 원상복구되는 내답압성을 가진 풀들을 통해 지지 않을 마음을 배우기도 한다. 질경이는 보통 생명력이 질겨서 질경이인가 싶지만, 실제로 길가에서 핀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경상도에선 아직 남아있는 방언으로 길을 질이라고 발음한다. 할머니들은 아직도 질이 질다 (여름에 장마철에 길이 질퍽한 걸 표현 ) 조심해 댕기라 하신다.
이 책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로 나눠 다양한 나무들과 본인의 경험등 주제가 나무와 꽃인 에세이형식이다. 세밀화로 소중히 그린 그림들이 좋아서 한참을 보게 되는 매력적인 책이다. 오렌지의 주황빛이 다 다름을, 설강화의 빛깔과 자작나무의 수피의 고운 자태 등이 그림 속에 잘 나타난다.
처음엔 초록이었을 꽃들이, 사람들 손에 의해 혹은 곤충 등의 선택을 받고자 다양하게 변화하였다는 것, 잎이 변형되어 꽃받침이 되었다 든가 원추리나 나리 등은 꽃잎 일부가 꽃받침이라는 등의 지식들도 담겨 있다.
기억에 남는 식물들로는
아까시 나무, 우리에겐 아카시아 껌때문인지 아카시아로 더 많이 알려진, 그리고 오해를 많이 받는 나무라고 한다. 일본이 원산지도 아니며, 다른 나무들을 괴롭히거나 뿌리가 너무 깊어 땅 속의 관 등을 깨지게 하는 등의 루머는 루머일뿐,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에 생장속도도 빠르고, 질소공급을 해서 땅을 기름지게 하며 산사태를 막는데 도움이 되는 수종이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미선나무, 진천 자생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지만, 지정되자 그 곳에 많은 이들이 몰래 뽑아가서 이젠 그 곳에서 미선나무를 볼 수 없다고 한다.
베트남에서 많이 쓰는 속이 텅 빈 공심채 빨대나 바나나이파리 포장지는 우리도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한 대안이다. (이미 제주도 등에선 바나나 및 열대 과일이 많이 재배되고 있다고.)
어린잎을 데쳐 나물로 임금 수라상에 올린다는 어수리는 중풍과 두통 진통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고구마 품종인 호감미, 고구마가 메꽃과라 나팔꽃을 닮은 꽃을 피운다는 것, 감자는 가지과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감자가 가지과라니.
집 근처에 산이 있어 가끔 가곤 한다. 가장 많은 것은 소나무류지만 중간에 환하게 불을 밝히듯 은사시 나무들이 군락을 이룬다. 메타세콰이어 숲 길 옆으로 조로록 예쁘게 서 있는 자작나무도 볼만 하다. 하얀 수피를 가진 자작나무는 만져보면 맨질맨질해서 촉감도 좋다. 자작나무는 눈이 많이 내린 곳에서 자라기에, 흰눈이 빛을 반사하여 어두운 수피를 가지면 그 빛을 흡수해 불이 날 수도 있다고, 그래서 흰색의 수피를 가지게 되었다는 설과, 나무의 밖에 있는 왁스층이 흰색이란 설이 있다.
이 외에도 다양한 나무들과 꽃들을 그리고 색칠하고 관찰하며, 느끼고 알게 된 것들, 깨달은 것들을 글로 써 내려 간다.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며, 그 곳에서 뿌리를 내려 수수하지만 자신에게 어울리는 꽃을 피우며, 이루어낸 열매들을 내 손에 꼬옥 쥐어 주는 느낌.
“먹어 봐, 만져 봐. 심어볼래? 소중히 가꿔볼래? 또 다른 열매를 만나고 널 닮은 꽃들을 찾아 낼 지도 몰라.” 섬세하게 관찰하며 세밀하게 그려내고, 그러다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게 되는 과정이 삶을 닮았다. 식물들이 살아가는 과정을 닮았다. 작가님 말씀대로 작가님은 식물을 닮아가나 보다.
(아래 그림은 공심채와 호감미 고구마다. 언제쯤 다시 꽃구경이며 축제가 시작될까.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마지막엔 이런 문구가 나온다. 독립된 조국에서 씨유 어게인. 지금은 우리 모두, 역병이 사라진 조국에서 씨유 어게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