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수요일

그 다음 오늘이 할 일은

씨앗은 씨방에
넣어 보관하고

나뭇가지 사이에 걸려있는 바람은
잔디 위에 내려놓고

밤에 볼 꿈은
새벽 2시쯤에 놓아두고

그 다음 오늘이 할 일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에 잠기는 일이다

가을은 가을텃밭에
묻어 놓고

구름은 말려서
하늘 높이 올려놓고

몇송이 코스모스를
길가에 계속 피게 해놓고

그 다음 오늘이 할 일은

다가오는 겨울이
섭섭하지 않도록

하루 한 걸음씩 하루 한 걸음씩
마중가는 일이다

*오규원 시인의 시 "그 다음 오늘이 할 일은"이다. 나의 오늘이 할 일은 무엇이 있을까.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구례통밀천연발효빵 #들깨치아바타 #곡성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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題三十二花帖 제삼십이화첩
 
초목의 꽃, 공작새의 깃, 저녁 하늘의 노을, 아름다운 여인
 
이 네가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깔인데, 그 중에서도 꽃이 색깔로는 제일 다양하다. 미인을 그리는 경우 입술은 붉게, 눈동자는 검게, 두 볼은 발그레하게 그리고나면 그만이고, 저녁 노을을 그릴 때는 붉지도 푸르지도 않게 어둑어둑한 색을 엷게 칠하면 그만이며, 공작새의 깃을 그리는 것도 빛나는 금빛에다 초록색을 군데군데 찍어 놓으면 그뿐이다.
 
꽃을 그릴 적에는 몇가지 색을 써야 하는지 나는 모른다. 김군金君이 그린 서른 두 폭의 꽃 그림은 초목의 꽃을 다 헤아린다면 천이나 백 가운데 한 둘 정도에 불과하지만 오색五色도 다 쓰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공작새의 깃ᆞ저녁노을ᆞ아름다운 여인의 빛깔이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아하! 한 채 훌륭한 정자를 지어 미인을 들여앉히고 병에는 공작새 깃을 꽂고 정원에는 화초를 심어두고서, 난간에 기대어 저무는 저녁 노을을 바라보는 이가 세상에 몇이나 될꼬? 하나 미인은 쉬이 늙고 노을은 쉽게 사그라지니, 나는 김군에게서 이 화첩花帖을 빌려 근심을 잊으련다.
 
*조선 후기를 살았던 유득공(柳得恭,1748~1807)의 글이다. 북학파 계열의 실학자로, 정조가 발탁한 네 명의 규장각 초대 검서관 중의 한 사람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김군金君은 박제가의 '꽃에 미친 김군'에 나오는 김군과 동일인인 김덕형으로 본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물매화가 피었다. 봄을 대표하는 매화에 견주어 가을을 대표한 꽃으로 꼽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귀한 모습이다. 더욱 봄의 매화는 쉽게 만날 수 있지만 이 물매화는 만나기가 쉽지 않다.
 
이 꽃을 만나면서부터 매년 때를 기다려 눈맞춤하고자 애를 쓴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정을 전하는 꽃의 표정에 넋을 잃고 바라보는 시간이 늘어만 간다. 급기야는 뜰에 들여놓고 말았다.
 
외출하기 전 눈맞춤은 당연하고 돌아와 곁을 떠났던 짧은 시간 동안 변한 모습까지 놓치고 싶지않은 마음이다. 나이들어 무엇을 대하며 이런 마음이 생길 수 있을까. 꽃은 늘 깨어 있는 마음을 불어온다. 애써 찾아 꽃을 보는 이유 중 하나다.
 
꽃을 그린 김군이나 그 그림을 보고 심회를 글로 옮긴 유득공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오늘도 저물어가는 시간 이 꽃을 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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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동자꽃
간혹 올라오는 사진을 보면서 때가 되면 만날 수 있으리라 여긴 꽃들을 하나 둘 눈맞춤하게 된다. 억지를 부리지 않고 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하지만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기에 늘 꽃빚을 지고 산다.
 
강렬하고 날렵한 인상을 사진으로 익혀둔 터라 바로 알아볼 수 있다. 풀숲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지만 숨고자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깊게 갈라진 꽃잎이 제비꼬리를 닮아서 얻은 이름인지도 모르겠다.
 
선자령이라고 했다. 급한 발걸음에도 불구하고 넉놓고 볼수 있어서 고마운 시간이다. 제철을 지났지만 간혹 이렇게 늦게 핀 꽃 덕분에 처음으로 눈맞춤 하는 기회도 만난다.
 
꽃나들이는 늘 이렇게 행운이 따른듯 싶으나 그 내면에는 꽃벗의 수고로움이 있다. 그 수고로움은 꽃이 전해준 마음과 다르지 않아 꽃보듯 벗을 보는 마음들이 꽃처럼 향기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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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백리향
가야산 칠불봉에서 만난 백리향의 바람에 잔잔하게 흔들리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높은 곳 척박한 환경에서 안개에 의지해 살아가면서도 특유의 제 빛과 향기를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이 환경에 적응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울릉도 여행길에 내심 기대했던 것이 섬백리향을 보는 것이었다. 나리분지를 찾은 것도 팔할은 이 꽃을 보자는 이유다. 기대가 컷던 것일까. 자생지의 무리진 모습을 기대했는데 아쉬움만 남는다. 자생지 근처에서 터전을 일궈가는 이의 손길에 피어난 섬백리향으로 그 아쉬움을 대신 했다.
 
연분홍 꽃들을 피우는 섬백리향은 초본이 아니고 반관목이다. 고산지대의 산정 및 바위곁이나 해변 바위 근처에 산다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울릉도에서 볼 수 있다. 밝지 못한 내눈엔 백리향과 구분이 어렵다.
 
나리분지의 섬백리향 자생지를 보면서 식물의 자생지를 관리한다는 것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과잉개입과 방치 사이에서 무엇이 옳은 일일지ᆢ. 자생지의 만개한 모습은 상상 속에만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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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시인은 꽃이 피고 지는 사이를 '한 호흡'이라 부르자고 했다. 이 '한 호흡' 사이에는 중요하지 않은 순간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특정한 때에 주목하여 호불호를 가린다. 찰나와 무한을 포함하는 '한 호흡'에도 주목하는 순간은 있기 마련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고 같은 사람일지라도 처한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이 주목하는 순간이다. 어느 특정한 순간에 주목하여 얻고자 하는 바를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매번 무엇이 스스로를 멈추고 주목하게 하는지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니 다른 도리가 없다. 그저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을 지나치지 않으려 애쓸 뿐이다.

花看半開 酒飮微醉 화간반개 주음미취
此中大有佳趣 차중대유가취
若至爛漫酕醄 약지난만모도
便成惡境矣 변성안경의
履盈滿者 宜思之 이영만자 의사지

꽃은 반쯤 피었을 때 보고 술은 조금 취하도록 마시면,
그 가운데에 멋이 있다.
만약 꽃이 만개하고 술에 만취하면
좋지 않은 경지가 되게 되니
가득찬 자리에 오른 사람은
마땅히 이를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가을꽃의 백미, 물매화가 꽃문을 열기 시작한다. 한동안 곁을 맴돌다 가던 길이지만 다시 돌아서와 이번엔 아애 자리를 잡고 앉았다. 꽃의 무엇이 나를 이토록 붙잡는 이유인지 따져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보고 또 보길 반복한다. 떨어지지 않은 발길을 옮기면서 울렁이는 속내를 다독이는 향기에 그저 미소지을 뿐이다.

매년 반복되는 이 일이 조금씩 쌓이다보면 꽃 피고 지는 그 '한 호흡'에 들어선 자신을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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