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를 만나는 날은 등심붓꽃이 피어있었다.

평사리 어느집 마당에 청사초롱이 걸리고 원근에서 온 이들로 북적이던 날 그 무리들 속에서 각자의 자리를 잡고 불이 켜지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무리들 사이를 분주하게 돌아다니던 주인장의 소개로 한 부부를 만났다. 시골 일소의 순박한 눈을 빼닮은 남편과 세상 모든 일을 설레임 가득한 미소로 대할것 같은 부인이 부부에 대한 첫 인상으로 기억한다.

식이 끝나고 집에 들러 차한잔 하고가라는 인사를 받았던 기억이 있고 그날 그집에서 차담을 나누었는지는 모른다. 평사리를 들고날 때면 인사차 안부를 물었고 어느날인가는 그 마당에 들었고 그후론 평사리 보다는 그들이 사는 토담농가가 목적지가 되어 그렇게 시간이 쌓여갔다. 간혹 달을 핑개로 안부를 주고 받았으며 그집에서 만드는 강정과 쑥차를 맛보며 마음의 거리가 좁혀졌을 것이라 짐작한다.

노고단 숲길을 내려오는데 내가 사는 집에 들렀다는 전화를 받고 급하게 귀가한 날이 처음 내집에 온 날로 기억하고 있다. 광주로 음악회에 가던 길이라고 했다. 잠깐의 만남을 위해 긴 시간을 기다려준 정성이 고마웠던 날이고 여러가지 핑개거리를 찾아 만남을 이어가는 개기가 된 날로 기억한다.

간혹 식사를 때론 공연관람을 이유로 서로가 청하여 만남이 이어졌다. 어느해 여전히 찬바람이 부는 이른 봄날 섬진강 소학정 매화 소식을 궁금해하자 몸소 안내해주었고 그길에 자신이 애지중지 가꾸는 매실농장까지 이어졌다. 여전히 섬진강을 넘나들며 정을 쌓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부부가 불쑥 집으로 찾아온 것이다. 맛난 저녁을 대접받고 차를 마시며 조심스럽게 꺼낸 말이 내게 가면 길을 찾을지도 모른다며 함께 아는 이가 보냈단다. 그간 사정을 귀담아 들었고 뭔가 도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겁도 없이 메일주소를 건네고 말았다.

원고를 받고 거듭 읽고 읽었다. 글자 하나를 놓치면 안될 것 같은 일상이 녹아든 귀한 글들을 보면서 이건 되겠다 싶어 일면식도 없는 출판사로 원고 투고를 했다. 이런 무모함이 또 있을까 싶지만 몇권 읽어온 그 출판사의 느낌과 이 원고가 만나면 일이 벌어지겠다는 뭔지모를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이 서로 인연이 되어 책이 발간되었다. 공상균 작가의 "바람이 수를 놓는 마당에 시를 걸었다"(2020, 나비클럽)가 그 책이다.

그후로도 두분에게 알게 모르게 과분한 대접을 받고 있다. 종종 책 발간 이후의 이야기를 다시 쓰는 일에 대해 궁금해 하면 두번째 책을 출판사와 계약했고 부인도 요리에 관한 책 출간으로 계약서 도장을 찍었다는 반가운 이야기를 들었다. 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그 결과가 양영하 작가의 "지리산학교 요리 수업"(2022, 나비클럽)으로 나왔다. 지리산 자락 유명인사가 이제 부부 작가로 더 빛나게 되었다.

남들에게 딱히 내놓을 것은 없지만 세상 부러운 것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그런 나에게도 이 부부 '공상균ㆍ양영하' 두사람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남편인 공상균 작가의 부인을 바라보는 눈엔 언제나 꿀이 떨어진다. 그것도 흘러 넘치는 수준이다. 천하에 이리 수줍음을 타는 이가 있을까 싶지만 강단 있는 부인의 애교가 그 비밀인듯 보이지만 절묘하게 서로의 틈을 매워주는 마음이 그 중심에 있어 보인다. 이런 분들을 만난 것은 내게 큰 복이다.

이제 부부 작가를 만나는 날엔 가방에 꿀단지를 넣어가야겠다. 나란히 어깨를 기댄 등심붓꽃 같은 두분 사이에 흘러넘칠 꿀을 담아와 두고두고 부러워할 것이다.

출간기념회도 못갔는데 싸인은 언제 받나~

#지리산학교요리수업
#양영하 #나비클럽 #토담농가 #공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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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小雪이다.
이때부터 살얼음이 잡히고 땅이 얼기 시작하여 점차 겨울 기분이 든다고 한다. 그럴듯한 서리 두어번 내렸으나 아직 따뜻한 햇볕이 간간이 내리쬐어 소춘小春이라고도 불린다는 이 말에 더 가깝다.
 
반가운 새들이 날아왔다. 큰 날개로 유유자적 하늘을 선회하는 독수리떼도 왔으니 때는 분명 겨울로 들었다는 것을 안다.
 
비가 오려나 싶다.
기온으로 봐선 눈은 아직 멀은듯 한데 하늘의 일이라 짐작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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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바위솔
좀바위솔을 지척에 두고도 보지 못하고 지나간 것이 아쉬웠나 보다. 늦은 물매화와 조금 멀리가서 볼 요량으로 진주로 향했다. 뒷자석에 앉아 느긋하게 주변을 살피며 처음 간 곳의 풍경을 누린다.
 
좀바위솔 있다고 찾아간 곳엔 낯선 바위솔이 세개쯤 하늘을 향해 꽃대를 올리고 있었다. 예년에 비해 많이 줄었다고 하나 주변에는 꽃대를 올리지 못한 어린 개체들이 수없이 다음해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주지역에 난다고 진주바위솔인가. 좀바위솔과는 확실하게 다르다. 울진에 가서 보았던 둥근바위솔에 더 가까운데 잎의 크기가 훨씬 작다. 정선바위솔과도 차이가 난다.
 
겨울눈으로 월동하고 내년에 꽃 피울 개체에 대한 희망으로 다시 계절의 변화를 기다린다. 척박한 자연환경의 변화에 잘 적응해온 바위솔들을 보면 생명의 신비로움 사뭇 더 크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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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 좋고 바람 적당한 날
무엇하나 서두를 것 없다는 듯
숲은 고요하다
 
고로쇠나무에 앉은 늦가을이
바람의 유혹에 헛눈 팔다
저와는 상관도 없는
어설픈 함정에 빠졌다
 
머뭇머뭇 딴짓하다
붙잡힌 것은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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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里靑天 雲起雨來 만리청천 운기우래
空山無人 水流花開 공산무인 수류화개
靜坐處 茶半香初 정좌처 다반향초
妙用時 水流花開 묘용시 수류화개
 
덧없는 푸른 하늘엔 구름 일고 비가 오는데
텅 빈 산엔 사람 없어도 물은 흐르고 꽃은 핀다
고요히 앉아 차를 반쯤 마셔도 그 향은 처음과 같고
묘용시에 물은 흐르고 꽃은 핀다
 
*중국 북송시대 황정견(1045~1105)의 시다. 수많은 시간동안 많은 이들이 시를 차용하며 그 의미를 나누었고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그 중심에는 "공산무인 수류화개"나 "다반향초"가 있는 듯하다.
 
어떤 이는 시종일관에 주목하고 다른이는 물아일체에 주목한다. 다 자신의 의지나 지향점에 비추어 해석한 결과이니 스스로 얻은 이치를 살피면 그만일 것이다.
 
하늘을 날아서 짠물을 건넜다. 어느 지점에 이르러 요동치는 바람과 부서지는 파도 앞에서 무심히 바라본 꽃에 몰입한다. 바깥 세상의 혼란스러움과는 상관없다는듯 고요함을 유지하고 있는 꽃이나 그꽃을 바라보는 이나 다르지 않다.
 
고요히 앉아 차를 마시는 것은 내면으로 들어가는 과정이다. 몸과 마음에 움직임이 없으니 우러난 차향과 같다. 비로소 움직이면 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물아일여物我一如,
물은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꽃은 그냥 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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