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에 초록을 더해가는 숲은 봄에서 여름으로 탈바꿈하느라 쉴틈이 없다. 뭇생명들을 품고 기르기 위해 숲은 짙어지고 깊어진다. 풀은 땅을 덮고 나뭇잎은 하늘을 가린다. 닫힌듯 열린 숲은 숨 쉴 틈을 마련하느라 분주한 때를 보내고 있다.

온기를 담은 품으로 생명을 기르는 일이 숲만의 고유 영역은 아니다. 사람도 사람들의 숲에서 자신의 자리를 잡고 자신의 공간을 만들어 고유한 빛과 향기로 채워간다. 사람의 숲에서는 모두가 서로를 거울로 삼고 제 길을 간다.

온기와 그늘로 생명을 품어주던 숲도 눈보라와 비바람으로 그 생명을 내치듯, 언제나 내 편으로 든든한 언덕일 것만 같던 사람들도 자신의 잇속을 챙기느라 너무도 쉽게 손바닥을 뒤집는 것이 사람의 숲이다. 이렇게 생명을 낳고 기르는 일에서 풀과 나무의 숲이나 사람 숲은 서로 다르지 않다.

떨어진 노린재나무 꽃잎에게 제 품을 내어주었다. 생의 마지막이 이토록 편안하다면 다음 생을 꿈꾸어도 좋지 않을까.

스승의날이다. 풀 한포기, 새싹 하나, 떨어진 꽃잎ᆢ. 돌아보면 세상 만물 어느 것 하나 스승 아닌 것이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각시붓꽃
연분홍 진달래가 지고 산철쭉이 피기 시작하면 꽃을 찾는 눈길은 땅에서 높이를 점차 높여간다. 그럴때 아직은 아니라는듯 키는 작지만 특이한 모양과 강렬한 색으로 눈을 사로잡는 꽃이 있다.

삼각형 모양의 보라색 꽃잎에 선명한 무늬를 새기고 하늘을 향해 마음껏 펼쳤다. 꽃줄기 하나에 꽃이 한 송이씩 달린다. 햇살이 잘 들어오는 양지바른 곳에 주로 자라며 큰 군락을 이루는 곳은 별로 없고 대부분 군데군데 모여 핀다.

붓꽃 종류 중 가장 먼저 피고 키가 가장 작기 때문에 갓 시집온 새색시처럼 귀엽고 이쁘다고 '각시붓꽃'이라 한다.

미인박명이라 했던가 봄이 가기 전 꽃과 잎이 땅에서 모두 없어지고 만다. 옮겨 심는 것을 싫어해 자생지에서 피어난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좋다. 같은 시기에 노랑색으로 피는 금붓꽃과 함께 숲으로 마음을 이끄는 꽃이다.

비슷한 꽃으로 넓은잎각시붓꽃이 있다. 현장에서 두 종류를 비교하면서 보고도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서로 닮았다. 국가표준식물목록에 등재된 이름이다.

피는 모습에서 연유한 듯 '기별', '존경', '신비한 사람'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모란

강렬하다. 꽃잎과 꽃술의 그 대비가 뚜렷한 만큼 서로를 더 돋보이게 한다. 나풀거리는 꽃잎에 쌓여 그 속내를 감춰두지만 결코 스스로를 가두는 것은 아니다.

틈을 두었기에 그 틈으로 드나드는 숨결로 인해 꽃을 피운 정성이 보람을 얻을 수 있다. 모란을 보는 나는 꽃잎보다 꽃술에 꽂혔다.

붉은 모란도 좋지만 이 흰색을 보지 않고 봄을 살았다 말하지 못하리라.

삼백예순 날을 기다려 다섯 날을 보는 꽃, 어찌 그립지 않겠는가.

다시 1년을 기다려 모란을 보고자 한다. 당신과 함께 모란을 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제주도 꽃놀이 가서 얻었다. 노심초사 하는 마음으로 겨울을 나고 봄을 맞았다. 밖으로 내놓았던 화분에 어느날 불쑥 솟아오른 꽃대가 하도 반가워 다시 서재로 들여 놓았다.

조바심 내는 모습이 우습기도 해서 슬그머니 처마밑 밖으로 내다 놓았다. 아침 저녁 나고 들며 살피는 눈길에 애지중지 하는 모습에 실없이 웃기만 한다.

실꽃풀이다. 화분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으나 적절한 환경을 유지해주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 받아들인다.

꽃이 피는 날 조촐한 의례라도 치뤄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산반화
그윽한 향 좋은데 물들이는 쓰임 더욱 좋구나

山礬 산반
功卽山礬狀玉蘂 공즉산반장옥예
佳名不一亦何妨 가명불일역하방
春深芬馥遍山野 춘심분복편산야
又爾宣稱七里香 우이선칭칠리향

野有幽花世莫聞 야유유화세막문
叢榛苞櫟與爲羣 총진포력여위군
染家只解充礬用 염가지해충반용
玉蘂芸香誰更分 옥예운향수갱분

쓰임은 산반이요 모습은 꽃술이니
예쁜 이름 하나가 아닌들 무슨 상관이랴
깊은 봄 온 산과 들에 향기 퍼지니
칠리향이라 불러도 마땅하네

들판의 그윽한 꽃 세상에 알려지지 않아
개암나무 상수리나무와 무리를 이루네
염색하는 사람이 명반으로 사용할 뿐
옥 같은 꽃술과 짙은 향기 누가 구분하랴

*알고 보면 반할 꽃시(성범중ㆍ안순태ㆍ노경희, 태학사)에 여덟 번째로 등장하는 김창업(金昌業, 11658~1721)의 시 '山礬 산반'이다.

우선, 산반이라는 생소한 이름은 어디서 온 것일까? 礬반 자는 명반 반자로 매염자로 쓰이는 백반, 명반을 뜻한다.

노린재나무란 이름은 황회목(黃灰木)에서 유래되었다. 식물성 물감을 천연섬유에 물들이려면 매염제(媒染劑)가 반드시 필요한데 노린재나무는 전통 염색의 매염제로 널리 쓰인 황회를 만들던 나무다. 여기에서 산반이란 이름으로 불렀고 이명으로 노린재나무라고 했다.

봄이 끝자락으로 이를무렵 숲에 들어가며 흰꽃이 뭉쳐서 피는 나무를 볼 수 있다. 가는 꽃잎에 유난히 긴 꽃술이 무수히 나와 있는 모습이 눈길을 사로 잡는다. 은근한 향기도 빼놓치 않고 눈맞춤 하는 이유 중 하나다.

5월 중순이면 높은 산에 피는 꽃을 보기위해 어김없이 지리산 노고단으로 향한다. 길을 올라 한숨 쉬는 곳이 무넹기 폭포가 있는 곳이다. 높은 곳에서 듣는 물소리는 특별한 기분을 전하기에 지나치지 않지만 그것보다는 폭포가 시작되는 바위 틈에 노린재나무가 하늘거리며 향기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게 노린재나무는 녹색 잎에 떨어진 하얀 꽃송이 하나가 주는 떨림으로 기억되어 있다. 이 꽃 피는 철이면 일부러 찾아서 보는 장면 중 하나다.

*'알고 보면 반할 꽃시', 이 책에 등장하는 꽃시를 따라가며 매주 한가지 꽃으로 내가 찍은 꽃 사진과 함께 꽃에 대한 내 나름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