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령풀

한번이라도 볼 수 있을까 싶었다. 딱히 나서지 못할 이유도 없었지만 그저 먼길이라 여겨 마음을 내지 못한 탓이다. 아니면 적절한 때에 이르러서 불러주는 이를 기다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만항재라 했다. 동강할미꽃 보러 나선 길에 스치듯 잠시 머무르긴 했지만 안개 속에서 실체에 접근하지 못한 곳에 다시 섰다. 비탈진 경사면에 여기저기 피어나는 중이다. 극히 일부만 봤으니 만항재의 꽃놀이는 아직도 남겨둔 셈이다.

강한 노랑색의 꽃이 모여핀다. 빛을 받아 한껏 미모를 자랑하니 눈맞춤은 오래갈 수밖에 없다. 고도 1,000m가 넘는 강원도의 깊은 산에서 자라는 희귀한 식물이라고 한다. 환경부에서 희귀종으로 지정(지정번호 식-65)하여 보호하고 있다고 하지만 서식지에는 흔한 꽃으로 보일 정도로 많이 핀다고 한다.

실물이 사진보다 이쁜 꽃들이 있는데 한계령풀도 마찬가지다. 노랑의 꽃과 녹색 잎의 어울어짐이 환상의 조합을 이룬다. 실물을 보는 것이 만배는 더 이쁘다. 머리속에 상상으로 그려지는 풍경만으로도 이미 꿈속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난꽃

천향을 사랑하여 저녁 바람 앞에 섰네

題錦城女史芸香畵蘭 제금성여사운향화난

畵人難畵恨 화인난화한

畵蘭難畵香 화란난화향

畵香兼畵恨 화향겸화한

應斷畵時腸 응단화시장

금성여사의 난향난초 그림을 두고 짓다

사람은 그려도 한을 그리기 어렵고

난은 그려도 향기는 그리기 어렵지.

향기를 그리며 한까지 그렸으니

응당 그림 그릴 때 애가 끊어졌으리.

*알고 보면 반할 꽃시(성범중ㆍ안순태ㆍ노경희, 태학사)에 일곱 번째로 등장하는 신위(申緯;1769-1845)의 시 '題錦城女史芸香畵蘭 제금성여사운향화난'이다.

꽃을 보러 나선 길에 종종 꽃놀이 나온 이들을 만난다. 일면식도 없지만 꽃이 좋아 같은 날 같은 길에서 만났다는 것 만으로 친근감이 있다. 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하지만 대부분 꽃에 대한 정보교환이 주다.

어느날 먼길을 왔다는 이가 눈여겨 보며 신기해하는 꽃이 있었다. 자신이 사는 곳에선 이렇게 여러개체의 꽃이 피어 있는 것을 보기 힘들다며 남도에 사는 이들을 부러워 했다. 남쪽에선 흔해서 꽃쟁이들 사이에서 덜 주목 받는 꽃이 바로 이 '춘란'이고 비교적 자주 볼 수 있다.

춘난은 '보춘화'를 부르는 다른 이름이다. 봄을 알리는 난초라는 의미다. 동양에서 선비들이 자주 그렸던 사군자에 등장하는 난초가 이 춘난으로 생각된다. 이 춘난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중투', '복륜', '소심' 등 상당히 복잡한 구성이다. 문외한의 눈에는 그것이 그것 같지만 난초가 가진 멋드러진 풍모는 이해가 된다.

난초 그림으로 유명한 추사 김정희의 "마음속 난과 종이 위의 난이 둘이 아니다"라는 '불이선란'은 "난초를 그리지 않은 그림"이라는 뜻의 '부작난도'라고도 한다."

옛사람들이야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경지의 속내를 그림으로 그렸다지만 그저 꽃이 좋아 꽃놀이를 일삼는 이에게는 딴 세상 이야기다. 내 마음에 들어오는 모습 그대로 카메라를 들이대고 나만의 난향을 담는다. 그 둘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기면 오만일까.

*'알고 보면 반할 꽃시', 이 책에 등장하는 꽃시를 따라가며 매주 한가지 꽃으로 내가 찍은 꽃 사진과 함께 꽃에 대한 내 나름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처녀치마

때가 되면 이루어진다는 말은 가만 있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정성을 다하여 기회를 만든 후에야 비로소 온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꽃을 보는 일도 마찬가지다. 멀리 있어 보지 못하고 아쉬워만 하다가 오는 기회를 놓칠 수 없어 먼길을 나섰다.

죽령 옛길을 올라 그늘진 경사면에서 첫눈맞춤을 했다. 올해는 강원도 어느 숲에서 만났다. 몇번의 눈맞춤이 있었다고 꽃을 대하는 마음이 한결 느긋하다. 빛을 품고 제 속내를 드러내며 환한 미소로 반겨주는 꽃마음이 불원천리 달러온 그 마음에 닿았나 보다. 반짝이는 보랏빛 꽃술을 품는다.

처녀치마, 특이한 이름이다. 땅바닥에 퍼져 있어 방석 같기도 한 잎에서 치마라는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꽃이 필 때는 작았던 꽃대가 활짝 피면서 쑥 올라온다고 한다.

차맛자락풀이라고도 하며 비슷한 종으로는 칠보치마와 숙은처녀치마가 있다. 숙은처녀치마는 지리산에서도 만날 수 있으니 올해도 기대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시읽는수요일

꽃 진자리에

생각한다는 것은 빈 의자에 앉는 일

꽃잎들이 떠난 빈 꽃자리에 앉는 일

그립다는 것은 빈 의자에 앉는 일

붉은 꽃잎처럼 앉았다 차마 비워두는 일

*문태준 시인의 시 '꽃 진자리에'다. 피고 지는 꽃을 보는 사이에 사람이 있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구례통밀천연발효빵 #들깨치아바타 #곡성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春遊 춘유
梅花暖日柳輕風 매화난일유경풍
春意潛藏浩蕩中 춘의잠장호탕중
欲識東君眞面目 욕식동군진면목
遍尋山北又溪東 편심산북우계동

봄날을 다니며
매화에는 따뜻한 햇빛, 버들에는 산들바람
봄 기분이 호탕한 마음 속에 숨어 있도다
봄날의 참모습 알려거든
북산이나 개울 동편을 두루 찾아보게나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를 살았던 이첨(李詹, 1345~1405)의 시다.

먼 북쪽에서 들려오는 꽃 소식에 마음을 이미 산을 넘었다. 지난해에는 보지 못한 꽃을 올해는 봐야겠기에 나선 길이다. 산 넘고 물건너는 여정이라지만 내딛는 행보에는 거침이 없다.

새로운 곳에 대한 기대 마음 속에 이미 자리잡은 꽃에 대한 그리움에 머뭇거릴 하의 이유가 없다. 그렇다고 마음까지 분주한 것은 아니다. 볼 수 있으면 좋고 보지 못한다고 서운할 일이 아닌 것은 여정을 함께하는 벗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다 건네는 한마디 말로도 충분한 꽃놀이가 나무 등걸에서 쉬고 있는 모데미풀과 무엇이 다르랴. 봄소풍, 꽃놀이가 이만하면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