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의 귓속말
이만근 지음 / 나비클럽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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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남긴 풍경 속으로 

봄볕엔 특유의 리듬이 있다매서운 겨울의 눈보라를 이겨낸 여유로움과 펼쳐질 앞날에 대한 기대가 조심스럽게 기지개를 펴는 계절의 속내가 아지랑이의 그것과 닮았다스멀거리듯 피어나는 자잘한 리듬은 요란스럽지는 않지만 가라앉은 마음을 깨워 바람결에 실려 오는 온기를 느끼기에 충분한 여유로움이 있다.

 

봄볕의 그 리듬과 꼭 닮은 문장을 만난다펼쳐보는 페이지 마다 틈으로 스며드는 봄바람의 설렘이 있고틈과 여백이 주는 여유와 넉넉함이 리듬에서 전해지는 온기를 닮았다길지 않은 문장을 무리 없이 건너기에는 긴 호흡이 필요하다저자가 꺼내놓은 속내가 가볍지 않지만 봄날 나들이 하듯 다소 느긋한 발걸음으로 함께 걷기에도 좋다.

 

이만근의 책, ‘풍경의 귓속말이다풍경은 나를 배재하고는 존재할 수 없는 영역이다언 듯 나와는 상관없이 보이는 것처럼 인식될 수도 있지만 어떤 정경이나 상황이든 산이나 들바다 따위의 자연이나 지역의 모습이든 나와 밀접한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풍경이 된다그 속에서 듣게 되는 귓속말은 봄날 아지랑이가 전하는 온기와 닮았다.

 

"사람도물건도옷도마음도말도소설이나 시를 짓기에는 성격상 민망해서최소한의 문장만 남겨진 글들로 이루어진 책이다애초에 무엇이 되기 위해 꿈꾸지 않았던 기질이 빚은 문장은 그의 삶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나를 둘러싼 풍경에서 나와 비슷한 또는 나와 다를 무엇인가를 하나씩 들어내다 보니 남은 결정체가 최소한의 문장으로 남아 민낯의 나와 마주하는 순간을 만난다면 이와 같을지도 모르겠다짫은 문장 하나에 넘어져 일어나기까지 봄이 가진 시간을 다 써야할지라도 기꺼이 그 안에 머물고 싶은 것은 계절에서 풍경으로 바뀐’ 이만근의 귓속말이 품고 있는 온기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고 세상과 자신을 돌아보는 저자 이만근의 섬세한 마음에 온기 가득한 편집자의 배려가 만나 따뜻한 책으로 태어났다익숙해져버려서 더 이상 온기를 전해주지 못하는 풍경을 새롭고 낯설게 볼 기회를 펼쳐 놓았다책 속에서 가다 멈추기를 반복하는 사이 봄이 여물어 가겠다.

 

아무것도 되지 못한들 어떤가누구나 세월이 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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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_읽는_하루

놓치다, 봄날

저만치 나비 난다
귓바퀴에 봄을 환기시키는 운율로

흰 날개에
왜 기생나비라는 이름이 주어졌을까
색기(色氣) 없는 나비는 살아서 죽은 나비
모든 색을 날려 보낸 날개가 푸르게 희다
잡힐 듯 잡힐 듯, 읽히지 않는 나비의 문장 위로
먼 곳의 네 전언이 거기 그렇게 일렁인다
앵초꽃이 앵초앵초 배후로 환하다
바람이 수놓은 습기에
흰 피가 흐르는 나비 날개가 젖는다
젖은 날개의 수면에 햇살처럼 비치는 네 얼굴
살아서 죽은 날들이 잠시 잊힌다

봄날 나비를 쫓는 일이란
내 기다림의 일처럼 네가 닿는 순간 꿈이다
꿈보다 좋은 생시가 기억으로 남는 순간
그 시간은 살아서 죽은 나날들
바람이 앵초 꽃잎에 앉아
찰랑, 허공을 깨뜨린다
기록되지 않을 나비의 문장에 오래 귀 기울인다
꼭 한 뼘씩 손을 벗어나는 나비처럼
꼭 한 뼘이 모자라 닿지 못하는 곳에 네가 있다

어느 날 저 나비가
허공 무덤으로 스밀 것을 나는 알지 못한다
봄날, 기다리는 안부는 언제나 멀다

*이은규의 시 '놓치다, 봄날'이다. 아지랑이 가물거리듯 봄날이 품고 있는 희망은 "꼭 한 뼘씩 손을 벗어나는 나비처럼/꼭 한 뼘이 모자라 닿지 못하는 곳에 네가 있다" 오늘 그 희망을 내 손으로 잡는 날이기에 언제나 멀리 있는 안부를 묻는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수놓는_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나무물고기 #우리통밀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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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개별꽃'
하늘의 별에 닿고 싶은 마음이 땅에 꽃으로 피었다. 꽃을 보는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이 그렇다는 것이다. 별을 닮은 꽃들은 대부분 땅에 바짝 붙어 있어 눈맟추고자 하는 모든 이들의 허리를 굽히게 만들지만 기꺼이 그 수고로움을 받아들일만하게 아름답다.


그늘진 숲의 나무 아래나 계곡 주변에서 자생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꽃이 별모양이고 다른 개별꽃들에 비해 잎이 크기 때문에 ‘큰개별꽃’이라 한다. 꽃은 4-5월에 피며, 줄기 끝에 항상 1개씩 달리고 흰색이다. 꽃자루에 털이 없으며, 꽃받침잎과 꽃잎은 5-8장이다. 수술은 10개, 암술대는 2-3개다.


별꽃, 개별꽃, 큰개별꽃, 숲개별꽃 등 비슷비슷한 이름의 꽃들이 많다. 꽃잎의 크기와 숫자, 모양 등으로 구분한다지만 많은 종류들을 만나다 보면 이것도 쉬운게 아니다.


별을 향한 사람의 마음이 담겨 '은하수'라는 꽃말을 붙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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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단단함
-오길영, 소명출판

아름답고도 단단한 삶, 그것을 위해 사람과 세상을 담은 세상, 책, 영화를 들여다 본다. 이를 보는 관문에 지성적 사유라는 키워드를 통해 깊은 사유의 결과물로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내 놓고 있다. 그저 말랑말랑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문학평론가 오길영의 첫 책이다.

그 모든 것의 중심에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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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의 벗은 그 덕을 벗한다. 뜻을 함께 하는 이가 벗이요, 도를 함께 하는 이가 벗이다. 곧으면 벗하고 믿음직하면 벗하며, 들은 것이 많으면 벗하고 자기보다 나으면 벗한다. 한 고을을 벗하되 부족하면 한 나라로 가고, 한 나라로 가서 부족하면 천하로 간다. 천하로 가서 부족하면 이에 천고의 역사를 거슬러 가서 벗을 삼는 상우천고尙友千古에 이르게 된다. 군자가 벗을 취함은 그 방도가 넓다 하겠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도 되지 않는다. 여러 품종의 화훼 중에서 한 가지 덕이라도 취할 만한 것이 있어 받아들일 만하면 옛시인과 묵객들은 또한 그 향기를 맡고 그 맛과 냄새를 함께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굴원의 난초와 왕휘지의 대나무, 도연명의 국화, 임포의 매화가 모두 이러한 식물이다. 마음에 통하고 뜻에 들어맞았다.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절친하고, 끈끈한 정이 있어 의기투합하는 이상이었다. 정신이 융화되며 정기가 서로 통하여 사람이 식물이 되고 식물이 사람이 되며, 저것이 내가 아니고 내가 저것이 아니라는 것조차 알지 못하여 절대 구분할 수 없게 된다.

*유계 김수증 깨끗한 벗의 집 정우정의 기문이다. 연못을 파고 연꽃을 가득 심은 다음 그 곁에 정우당을 세운 일을 두고 식물을 벗으로 삼는 이유를 설명한 글이다.

현실에서 마음에 드는 벗을 만나지 못하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 책 속에서 벗을 찾고 여기에서도 찾지 못하면 자연을 벗으로 삼는다. 식물이 사람이 되고 사람이 식물이 될 정도로 절친한 벗이 될 수 있다고 했으니 꽃에 미친듯 보이는 것도 다 이해가 된다.

봄을 부르는 풀꽃들이 만발하다. 봄이 무르익으면 나무꽃들이 눈을 사로잡을 것이다. 그만큼 사람들의 나들이도 늘고 이를보는 다른 이들의 불편한 시선도 늘어난다. 꽃도 몸살이고 사람도 함께 몸살이다.

혹, 꽃을 찾아 산과 들로 다니는 이들의 속내가 옛사람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고 한다면 자기합리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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