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깽깽이풀'
몇 번이고 그 숲에 들었는지 모른다. 노루귀 꽃잎 떨구면서부터 행여나 소식있을까 하는 조바심에 없는 짬을 내서라도 숲에 들었다. 지난해 노루귀에 이어 큰 무리가 사라진 후 연거퍼 수난을 당하는터라 생사 확인하는 마음이 불안하다.


가늘고 긴 꽃대를 올렸다. 독특한 잎과 함께 붉은 생명의 기운으로 새싹을 낸다. 여럿이 모여 핀 풍성한 모습도 홀로 피어난 모습도 모두 마음을 빼앗아 가는 녀석이다. 봄 숲에 고운 등불 밝히는 꽃이다.


아름다운 것은 빨리 시든다고 했던가. 피는가 싶으면 이내 꽃잎을 떨군다. 하트 모양의 잎도 꽃 만큼이나 이쁘다. 풍성해지는 잎이 있어 꽃잎 다 떨어지고 난 후 더 주목하는 몇 안되는 종류 중 하나다.


강아지가 먹으면 깽깽거린다거나, 농사를 준비하는 바쁜 철에 피어난 모습이 마치 일 안 하고 깽깽이나 켜는 것 같다거나 깨금발 거리에 드문드문 피어서라는 등 '깽깽이풀'이라는 이름에 대한 유래는 여러가지다.


올 해는 가까이에 두고도 멀리가서 이 꽃을 봤다. 특유의 이쁜 모습에 유독 사람들 손을 많이 탄다. 수없이 뽑혀 사라지지만 여전히 숨의 끈을 놓지 않은 생명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안심하세요' 라는 꽃말이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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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중십우花中十友

ㆍ방우芳友 : 난초
ㆍ청우淸友 : 매화
ㆍ수우殊友 : 서향瑞香
ㆍ정우淨友 : 연蓮
ㆍ선우禪友 : 치자꽃梔子花 
ㆍ기우奇友 : 납매蠟梅
ㆍ가우佳友 : 국菊
ㆍ선우仙友 : 계桂
ㆍ명우名友 : 해당화海棠花
ㆍ운우韻友 : 차마

*宋나라 증단백曾端伯은 일찍이 열 가지 꽃을 골라서 화중십우로 삼았다. 그가 벗으로 삼은 꽃에 담긴 당시 사람들의 마음을 엿보며 오늘날 꽃을 보는 이유를 살펴본다.

언제부턴가 꽃은 벗과 더불어 생각하게 되었다. 혼자 산과 들로 다니며 꽃을 보는 것은 여전하지만 그 사이사이에 꽃을 이야기하던 사람들을 만났다. 꽃이 피고지는 계절이 몇번이나 바뀌는 동안 이제는 일상과 삶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에 접근 한다. 꽃 아니었으면 결코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이다.

작은 꽃이 피고지는 이치가 사람 사는 그것과 다르지 않음을 안다. 식물에 비해 비교적 긴 생애의 주기를 갖는 사람이 짧게는 한 철 길어봤자 두 해를 건너는 동안에 꽃 피어 열매 맺는 시작과 끝을 보여주는 식물의 세계를 통해 사람의 일생을 엿보았다. 꽃의 사계를 보고 지나온 내 시간을 돌아보니 다른 것이 하나도 없다.

꽃이 벗이었다가 벗이 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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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화훼영모화
-장지성 저, 안그라픽스

관심사로 우선순위를 다툴 수 없는 것 중에 하나다. '화조화'라 불려왔던 꽃, 새, 곤충, 풀, 동물과 풍경을 담은 우리 옛그림이 그것이다.

산과 들로 꽃을 찾아다니며 눈여겨 본 모습과 일상에서 익숙하게 보아왔던 모습을 담은 우리 옛그림에 등장하는 소재로의 꽃도 괸심사지만 그것들에 감정이입하고 곁에 두고자 했던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보다 근본적이라고 할 수 있다.

신잠, 안귀생, 김정, 이암, 사임당 신씨, 신세림과 김시, 이경윤, 이영윤, 김식, 이징, 조속, 조지운, 윤두서, 정선, 심사정, 강세황, 최북, 변상벽, 김홍도, 김정희, 신명연과 남계우, 장승업 그리고 민화

고대에서 조선시대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작가와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무엇보다 저자 장지성은 동양화를 전공한 화가이고, 옛 그림을 따라 그리는 임모臨摸를 하면서 한국 미술사를 공부했다. 그의 시선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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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복초'
가까이 있다고는 하지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한정된다. 보고 싶어도 기회를 놓치거나 기호에도 호불호가 있기 때문이다. 꽃 보자고 먼 길 나선 길이지만 염두에 두지 않았던 꽃을 만났다.


작은 개체가 초록의 잎에 초록의 꽃을 피우니 눈에 보이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일반적으로 꽃은 눈에 잘 띄게 마련이다. 벌 나비가 찾아와 수정을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꽃은 그것과는 상관없다는 것처럼 주변과 구별이 안될 정도로 숨은듯 피었다.


황록색으로 핀 꽃을 들여다보면 놀랍다. 줄기 끝에 3~5개 정도가 뭉쳐서 피는 꽃이 마치 하나의 꽃으로 보인다. 작기도 하지만 오밀조밀한 생김새도 볼만하다.


연복초, 특이한 이름이다. 복수초를 찾다가 함께 발견되어, 복수초가 피고 진 후에 연이어서 꽃이 핀다고 해서 연복초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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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물찰리觀物察理 : 사물을 보아 이치를 살핀다
공주에서 나는 밀초는 뛰어난 품질로 유명했다. 정결하고 투명해서 사람들이 보배로운 구슬처럼 아꼈다. 홍길주(洪吉周; 1786~1841)가 그 공주 밀초를 선물로 받았다. 그런데 불빛이 영 어두워 평소 알던 품질이 아니었다. 살펴보니 다른 것은 다 훌륭했는데, 심지가 거칠어서 불빛이 어둡고 흐렸던 거였다. 그는 『수여연필睡餘演筆』에서 이 일을 적고 나서 이렇게 덧붙였다.

마음이 거친 사람은 비록 좋은 재료와 도구를 지녔다 해도 사물을 제대로 관찰할 수가 없다.

밀초의 질 좋은 재료는 그 사람의 집안이나 배경이라면, 심지는 마음에 견준다. 아무리 똑똑하고 배경 좋고 능력이 있어도, 심지가 제대로 박혀 있지 않으면 밝은 빛을 못 낸다. 겉만 번드르한 헛똑똑이들이다.

사물 속에 무궁한 이치가 담겨 있다. 듣고도 못 듣고, 보고도 못 보는 뜻을 잘 살필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을 옛 사람들은 관물觀物이라고 했다. 사물에 깃든 이치를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은 찰리察理다.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고, 마음을 넘어 이치로 읽을 것을 주문했다.

*책 '일침一針'에서 정민 선생님이 '관물찰리'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풀었다. 지난 일요일 하동 화계골 나들이에서 만난 나무를 다루는 한 사람의 모습에서 겹쳐지는 이미지가 있어 찾아보았다.

'나무산조'라는 문패에 담은 뜻이 무엇인지 묻지 못했다. 무엇이든 제 나름대로 해석하기를 즐기는 나에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에 충분한 단어였다. 나무 조각 하나라도 헛투로 다루지 않은 이의 마음 속을 짐작해보는 즐거움이다. 나무에서 형상을 발견하고 그것을 깎아내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발 디딜 틈도 없이 작품으로 가득한 방에서 내려준 커피가 피워올라가는 향의 푸른 빛과 닮았다.

'나무산조' 이곳을 들고나는 모든 이들에게 맑고 밝은 기운을 전하고자 등을 걸어둔 주인의 마음이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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