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물찰리觀物察理 : 사물을 보아 이치를 살핀다
공주에서 나는 밀초는 뛰어난 품질로 유명했다. 정결하고 투명해서 사람들이 보배로운 구슬처럼 아꼈다. 홍길주(洪吉周; 1786~1841)가 그 공주 밀초를 선물로 받았다. 그런데 불빛이 영 어두워 평소 알던 품질이 아니었다. 살펴보니 다른 것은 다 훌륭했는데, 심지가 거칠어서 불빛이 어둡고 흐렸던 거였다. 그는 『수여연필睡餘演筆』에서 이 일을 적고 나서 이렇게 덧붙였다.
마음이 거친 사람은 비록 좋은 재료와 도구를 지녔다 해도 사물을 제대로 관찰할 수가 없다.
밀초의 질 좋은 재료는 그 사람의 집안이나 배경이라면, 심지는 마음에 견준다. 아무리 똑똑하고 배경 좋고 능력이 있어도, 심지가 제대로 박혀 있지 않으면 밝은 빛을 못 낸다. 겉만 번드르한 헛똑똑이들이다.
사물 속에 무궁한 이치가 담겨 있다. 듣고도 못 듣고, 보고도 못 보는 뜻을 잘 살필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을 옛 사람들은 관물觀物이라고 했다. 사물에 깃든 이치를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은 찰리察理다.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고, 마음을 넘어 이치로 읽을 것을 주문했다.
*책 '일침一針'에서 정민 선생님이 '관물찰리'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풀었다. 지난 일요일 하동 화계골 나들이에서 만난 나무를 다루는 한 사람의 모습에서 겹쳐지는 이미지가 있어 찾아보았다.
'나무산조'라는 문패에 담은 뜻이 무엇인지 묻지 못했다. 무엇이든 제 나름대로 해석하기를 즐기는 나에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에 충분한 단어였다. 나무 조각 하나라도 헛투로 다루지 않은 이의 마음 속을 짐작해보는 즐거움이다. 나무에서 형상을 발견하고 그것을 깎아내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발 디딜 틈도 없이 작품으로 가득한 방에서 내려준 커피가 피워올라가는 향의 푸른 빛과 닮았다.
'나무산조' 이곳을 들고나는 모든 이들에게 맑고 밝은 기운을 전하고자 등을 걸어둔 주인의 마음이 곱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