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살고 싶은 선비의 서툰 세상나들이를 위로하는 것이 지는 매화이고, 아플 것을 지레짐작하며 미리 포기하고 한꺼번에 지고마는 것이 벚꽃이다. 있을때 다하지 못한 아쉬움으로 뒷북치며 매달리다 스스로 부끄러워 붉어지는 것이 동백이고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때면 즈려밟는 것이 진달래다. 일하는 소의 눈망울을 닮은 사내의 커다란 눈에 닭똥같은 눈물방울을 흘리게 만드는 것이 지는 산벚꽃이고 지극정성을 다한 후 처절하게 지고마는 것이 목련과 노각나무다. 

몸과 마음을 아낌없이 하얗게 불사르고 난 후에도 순결한 속내를 고스란히 간직한 때죽나무와 쪽동백처럼 뒷 모습이 당당한 꽃을 가슴에 담는다.

늘 다녀서 익숙한 계곡에 들던 어느날, 다 타버리고 남은 희나리 처럼 물위어 떠 있던 꽃무덤을 발견했다. 순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가슴 깊은 곳에서 밀려나오는 먹먹함에 숨죽이고 꼼짝도 못한 채 물끄러미 꽃무덤만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꽃무덤 찾기가 올 봄에도 이어진다. 매화의 수줍은 낙화로 부터 시작된 꽃무덤 찾기는 벚꽃과 진달래, 철쭉으로 이어졌다가 모란에서 주춤거린다. 때죽나무와 쪽동백에서 다시 시작되어 여름철 노각나무에 이르러 한 고개를 넘는다. 찬바람 불고 눈이라도 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차나무꽃 지는 모습을 찾는 것으로 마무리 한다.

숲을 어슬렁거리며 꽃무덤 찾는 발걸음 마다 꽃의 정령이 깃들어 내 가슴에서 다시 꽃으로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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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수염'
매년 같은 곳을 같은 시기에 찾으면 늘 숨어피는 식물들의 안부가 궁금하여 여기저기 기웃거리기 마련이지만 어떤 식물은 길가에 나보란듯이 피어서 발걸음을 환영한다. 그중에 하나가 이름도 독특한 이 식물이다.


광대수염, 꽃잎 밑에 달린 꽃받침 끝이 수염처럼 뾰족하게 나왔는데, 이것이 꼭 광대의 수염 같이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꽃 하나로 본다면 자주색으로 피는 광대나물과 비슷한 모습이다.


들풀이나 나무의 꽃이나 독특한 생김새를 보면 이름부터 알고 싶다. 이름이 그 식물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어서 이기도 하지만 이름을 불러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통하는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 자리에서 반겨주는 꽃을 만나는 호사를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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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음을 그대는 가졌는가
-김정숙, 아트북스

“그림이 밤하늘에 뜬 달이라면, 감상자의 가슴속에서 일어난 감동은 물에 비친 달과 같다”

옛그림을 읽어주는 저자가 그림을 보는 관점이다. 독자는 저자의 가슴 속어 담긴 달의 이미지를 통해 다시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

이정의 '풍죽도'를 보는 저자의 시각은 여기에 머문다. 영화 '관상'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대사다. "바람을 보아야 했는데?파도만 보았지 바람을 보지 못했소. 파도를 만드는 건 바람인데 말이오." 

이렇듯 저자는 우리 옛그림을 본다. 다분히 감성적인듯 읽히나 이면에 깔려 있는 의식은 사뭇 진지하다. 이 책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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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난초'
겨울을 지나면서 이른 봄꽃들에 환호하던 사람들의 마음에 여유가 생길 무렵 본격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꽃들이 난초 종류다. 춘란이라 부르는 보춘화로부터 시작되며 은난초, 은대난초, 금난초, 새우난초, 감자난초, 나도제비란, 닭의난초, 병아리난초 등으로 난초라는 이름을 가진 꽃들이 앞다투어 피어난다.


그중에 하나인 은난초다. 은빛 꽃이 피는 난초라는 의미로 은난초라고 부른다. 숲이 녹색으로 물들어가는 때 녹색의 잎에 흰색의 꽃이 피니 눈여겨 보지 않으면 만나기 쉽지 않은 식물이다. 작은 키에 잘 보이지 않지만 이 난초를 찾는 이유는 수수함에 있다.


송광사 불일암 숲길을 돌아 내려오는 계곡 키큰 나무들 사이에서 기울어가는 빛을 받고 있는 꽃을 만났다. 이리보고 저리보고 한동안 눈맞춤을 하고 이었지만 사찰을 찾은 수많은 사람 중 궁금하하는 이 하나를 만나지 못했다. 누리는 것은 온전히 내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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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_읽는_하루

내 이름을 불러줄 때

내 이름을 불러줄 때
텅 빈 산비탈에 서서
반가움에 손 흔드는 억새이고 싶다

훌훌 벗어 던진 허울
바람 속 가르는 빛살
맨몸으로 맞을 기다림

내 이름을 불러 줄 때
이름 앞에 늘어선 수많은 수식어를
다 잘라내고 싶다

이름만으로도 반가울 기억을 위해
맨몸으로 하얗게 부서지고 싶다

*목필균의 시 '내 이름을 불러 줄 때'이다. 그냥이 좋다. 이름 하나로 굳이 다른 이유를 붙이지 않아도 이해되는 관계라면 무엇을 더하거나 뺄까. 오롯히 나 또는 그로 서고 싶은 마음이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수놓는_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나무물고기 #우리통밀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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