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 봄도 끝자락이다. 매서운 겨울의 눈보라가 봄의 화려한 꽃향기를 준비했듯 나풀거렸던 봄향기로 맺은 열매는 이제 여름의 폭염으로 굵고 단단하게 영글어 갈 것이다.

미쳐 보내지 못한 봄의 속도 보다 성급한 여름은 이미 코앞에 당도해 존재를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짐작되는 변화보다 예측할 수 없이 당면해야하는 폭염 속 헉헉댈 하루하루가 버거울지도 모른다. 그때마다 그 숲 속을 걷거나, 숲 속에 서 있었던 시간을 떠올리며 숲이 전해준 위안을 꺼내보며 스스로를 다독일 일이다.

시간의 경계에서 피고지는 꾳들의 일상을 본다. 붉기에 더 붉은 꿈을 꿀 수 있다. 부풀어 저절로 피어날 때를 기다리는 속내를 짐작할 뿐이다. 뜨거워질 세상을 향한 꿈틀대는 생명의 힘이기에 그 출발에 마음 한쪽을 기댄다.

오월 그리고 봄의 끝자락, 시간에 벽을 세우거나 자를 수 없다는 것을 진즉에 알았다. 그렇더라도 맺힌 것은 풀어야 하듯이 때론 흐르는 것을 가둘 필요가 있다. 물이 그렇고 마음이 그렇고 시간이 그렇다. 일부러 앞서거나 뒤따르지 말고 나란히 걷자.

이별은 짧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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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 산에 올랐다. 하늘다리가 생기기 전부터 제법 유명세를 타던 산이라 사람들의 발길이 끓이지 않은 곳이다. 일찍나선 길이라 한가로운 숲길 때죽나무 꽃그늘 아래서 꽃향기에 취해있는데 한무리 등산객들의 소란스러움으로 고요함에서 깨어났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꽃그늘, 향기에는 관심이 없고 시끄러운 말소리와 분주한 발걸음에 치일뻔 했다. 인파를 피해 내려선 계곡에서 꽃무덤을 발견하고 어수선했던 마음에 쉼의 시간을 더한다.

處陰以休影 처음이휴영
處靜以息迹 처정이식적
그늘에 들어가야 그림자가 쉬고
고요한 데 머물러야 발자국이 쉰다

*장자 잡편 어부장에 나오는 문장으로 강에서 물고기를 잡는 어부가 주유천하 길의 공자를 타이르는 내용이다. "자신을 따라다니는 그림자影와 발자국迹은 열심히 뛸수록 더 따라붙는다. 그늘에 들어가야 그림자가 쉬고, 고요한 데 머물러야만 발자국이 쉰다."

분주하게 물을 따라 내려오던 꽃잎 하나가 소용돌이를 벗어나 그늘에 들었다. 물도 쉬어가고자 틈을 찾아 멈추는 곳이다. 마침 나뭇잎을 비집고 들어온 햇살이 멈춘 꽃에 주목하니 속도를 멈춘 이유가 드러난다. 비로소 꽃이 쉼의 시간에 들어선 것이다.

내 그림자도 덩달아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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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수정초'
가까이 두고도 못 보는 경우가 많다. 몰라서 못보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알고도 때를 놓치거나 사정이 있어 못보게 되면 몹시도 아쉽다. 비교적 가까이 있어 많은 발품을 팔지 않아도 볼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습기를 많이 품고있는 건강한 숲에서 봄의 마지막을 장식이라도 하려는듯 불쑥 솟아난다. 무리지어 또는 홀로 다소곳히 고개숙이고 멈칫거리듯 조심스런 모습이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의 눈동자를 보는듯도 하다.

나도수정초는 부생식물이다. 부생식물이란 스스로 영양분을 만들지 못하고 다른 식물에 의지해야 살 수 있는 품종을 말한다. 그래서 옮기면 죽는다.

나도수정초와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비슷한 수정난풀이 있다. 피는 시기와 열매의 모습 등으로 구분한다지만 수정난풀을 보지 못했으니 구분할 재간도 없지만 곧 만날 기회가 있으리라고 믿는다.

수정처럼 맑은 모습에서 이름도 얻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숲속의 요정'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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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동백나무'
어딘가 있을텐데?하면서 주목하는 나무다. 몇 곳의 나무를 확인 했지만 제 때 핀 꽃을 본다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불갑사에서 만난 꽃무덤에 대한 아쉬움을 고스란히 간직한채 송광사를 나오며 길가에서 만났다. 순한빛에 끌려서 그토록 보고자 했던 간절함이 한순간에 풀리며 마냥 좋아라고 눈맞춤 한다.


옛 여인들이 머리에 바르던 귀한 동백기름을 대신해서 애용하던 기름을 이 나무 열매로부터 얻었다고 한다. 따뜻한 기온이 필요한 동백나무와는 달리 어디에서나 잘 자라는 특성과 무관하지 않았나 보다.


꽃 하나로만 본다면 때죽나무와 닮았지만 꽃이 달리는 모양은 사뭇 다르다. 때죽나무가 산발적으로 흩어진 모습이라면 쪽동백은 모여 달린다. 각기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순백의 꽃이 모양도 좋지만 은근하게 퍼지는 향기도 빼놓을 수 없다. 시들기전 통째로 떨어져 땅에서 한번 더 피었다 시든다. 그 꽃무덤에 앉아 순한 것이 주는 담백한 기운을 듬뿍 받는 기쁨은 누리는 자만의 몫이다.


인연따라 내 뜰에도 국립수목원 출신인 어린 묘목이 들어와 잘자라고 있다. 훗날 어떤 모습으로 또 다른 이야기와 함께할지 사뭇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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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봄은 바람이다. 처녀의 연분홍 치마를 휘날리게 하는 꽃바람이 그렇고 아지랑이 넘실대는 들판에서 불어오는 온기 담은 들바람이 그렇다. 무엇보다 봄바람의 최고는 먹먹한 사내의 가슴을 멍들도록 울리는 산벚꽃 향기 담아 산을 내려오는 산바람이 압권이다.

백설희의 곰삭은 봄날도, 장사익의 애끊는 봄날도, 김윤아의 풋풋한 봄날도 무심히 가는 것은 매 한가지다. 비내음을 품은 무거운 공기에 아까시꽃 향기가 절정에 이를 무렵이면 온통 붉게만 피어나던 봄날의 꽃색이 처연한 흰색으로 바뀌며 봄날의 그 마지막 절정에 이른다.

"눈을 감으면 문득 그리운 날의 기억 아직까지도 마음이 저려 오는 건 그건 아마 사람도 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와서 슬프기 때문일 거야, 아마도"

봄의 끝자락에 피어 여름으로 안내하는 쪽동백나무 꽃그늘에 아래 섰다. 조심한다는 다짐과는 달리 헛디딘 발 아래 짓이겨지는 꽃무덤이 사그라지며 무심히도 봄날은 간다.

봄이 가야 여름이 온다. 그대 너무 애쓰지 않아도 무심히 봄날이 가듯 시름도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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