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與人'
벗을 잃는다면 행여 내게 눈이 있다 하나 내가 보는 것을 뉘와 함께 볼 것이며, 행여 내게 귀가 있다 하나 내가 듣는 것을 뉘와 함께 들을 것이며, 행여 내게 입이 있다 하나 내가 맛보는 것을 뉘와 함께 맛볼 것이며, 행여 내게 코가 있다 하나 내가 맡은 향기를 뉘와 함께 맡을 것이며, 행여 내게 마음이 있다 하나 장차 나의 지혜와 깨달음을 뉘와 함께하겠나?

종자기가 세상을 뜨자 백아는 자신의 금을 끌어안고 장차 뉘를 향해 연주하며 뉘로 하여금 감상케 하겠나? 그러니 허리춤에 찼던 칼을 뽑아 단번에 다섯 줄을 끊어 버려 쨍 하는 소리가 날밖에. 그러고 나서 자르고, 냅다 치고, 박살내고, 깨부수고, 발로 밟아, 몽땅 아궁이에 쓸어 넣고선 불살라 버린 후에야 겨우 성에 찼다네. 그리고는 스스로 물었다네.

"속이 시원하냐?"
"그래, 시원하다."
"엉엉 울고 싶겠지?"
"그래, 엉엉 울고 싶다."

그러자 울음소리가 천지를 가득 메워 종소리와 경쇠 소리가 울리는 것 같고, 흐르는 눈물은 앞섶에 뚝뚝 떨어져 큰 구슬 같은데, 눈물을 드리운 채 눈을 들어 바라보면 빈산엔 사람 하나 없고 물은 흐르고 꽃은 절로 피어 있었다네.

내가 백아를 보고서 하는 말이냐구? 그럼, 보다마다!

*연암 박지원의 글 '여인與人', 어떤 사람에게 보낸 편지의 뒷부분이다. '벗 잃은 슬픔'을 이렇게 펼쳐놓았다. 먼저 간 아내보다 친구가 더 소중하다는 말 이후에 이어지는 문장으로 친구 없이는 나도 온전한 존재가 될 수 없다는 의미가 담겼다. 친구의 소중함을 논하기엔 옛날과 지금을 비교할 수 없을 것이지만 이토록 애틋한 심사를 밝히는 것 역시 오늘날에는 접하기 쉬운 일은 분명 아니다.

연암의 문장 중 백미가 아닐까 싶다.
백아와 종자기의 고사에서 절현지비絶絃之悲라는 말이 유래했다. "자기를 진정으로 깊이 이해해 주는 사람을 얻는다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가 하는 점, 또한 이 세상에서 자신과 정신적으로 소통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가 하는 점, 그리하여 그러한 존재를 상실했을 때의 슬픔이 얼마나 큰가 하는 점을 상징적으로 말한다."

"내가 백아를 보고서 하는 말이냐구? 그럼, 보다마다!"

이런 마음을 갖는다는 것, 어찌 부럽지 않을 수가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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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서야 가을이다. 

지난해는 때를 놓쳐 하지 못했던 거사(?)를 감행했다. 손이 부자연스러운 나는 거들 뿐이지만 대슈인가. 지금부터 한겨울 눈이 내릴 때까지 눈요기며 최고의 군것질 거리다.

146개의 우주가 볕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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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국악상설공연
광주시립국악관현악단 "10월의 어느날"
10월 23일(금) 오후 5시
광주공연마루
*프로그램
ㆍ관현악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작곡 노관우
ㆍ가야금2중주 "침향무" -작곡 황병기
ㆍ피리3중주 "춤을 위한 메나리" -작곡 박범훈
ㆍ관현악 "프린스 오브 제주" -양방언
ㆍ노래곡 "제비노정기, 상모" -노래 김산옥
ㆍ모듬북 협주곡 "타" -작곡 이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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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풀'
높은 산에 피는 꽃을 보기 위해 오르는 곳이 몇 곳 있다. 남덕유산, 가야산, 지리산이 그곳이다. 높은 곳의 날씨는 변화가 심하여 안개가 끼거나 비를 만날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을 오르는 이유는 그곳에만 피는 꽃들이 있기 때문이다.

송이풀 역시 그런 곳에서 주로 만날 수 있는 꽃이다. 송이풀은 꽃이 핀 듯 안 핀 듯 옆으로 비틀리며 줄기 끝에 송이를 이루기 때문에 송이풀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모양새와 잘 어울리는 이름인듯 싶다.

붉은 기운이 도는 꽃이 핀듯 안핀듯 줄기 끝에 모여 있다. 또하나 특징직인 것이 길쭉한 잎인데 규칙적으로 결각이 있어 꽃만큼 아름답게 보시기도 한다. 꽃이 흰색으로 피는 것을 흰송이풀이라고 하며 같은 시기에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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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을 잡자고 했었다. 여의치 못한 사정에 의해 붓을 놓게 된 아쉬움이 큰 탓인지 기회만 노렸다. 그후 다시 기회가 왔고 한손의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다시 잡는다. 이번에 잡은 붓은 사정이 바뀌어도 오랫동안 놓지 않을 것이다.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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