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연꽃'
이른 아침 해뜨는 시간에 일제히 깨어나던 꽃들을 본 후 일정을 맞추지 못하다 느즈막히 찾아갔다. 어딘가 가면 볼 수 있다는 것이 주는 안도감과 느긋함을 오랫동안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주변에는 노랑색으로 피는 노랑어리연꽃은 쉽게 볼 수 있지만 흰색으로 피는 어리연꽃은 흔하지 않다. 수줍은듯 순박한 미소로 아침햇살에 빛나는 순백의 아름다움을 떠올리며 자생지를 찾아간다.
 
꽃은 흰색 바탕에 꽃잎 주변으로 가는 섬모들이 촘촘히 나 있고, 중심부는 노랑색이다. 일찍 피어 일찍 지는 꽃이라 늦은 오후엔 볼 수 없다. 연꽃이라는 이름을 달았지만 꽃모양도 크기도 확연히 다르다. 크기가 1.5㎝ 밖에 안 되는 작은 꽃이다.
 
아침 고요의 시간에 햇살과 함께 깨어나는 모습은 마음 속에 그대로 각인되어 있다. '물의 요정'이라는 꽃말 그대로의 모습이다. 다시 그 모습을 떠올리며 찾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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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꽃이 피고 지는 사이를 '한 호흡'이라 부르자고 했다. 이 '한 호흡' 사이는 중요하지 않은 한 순간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특정한 때에 주목하여 호불호를 가린다. 찰나와 무한을 포함하는 '한 호흡'에도 주목하는 순간은 있기 마련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고 같은 사람일지라도 처한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이 주목하는 순간이다. 어느 특정한 순간에 주목하여 얻고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무엇이 스스로를 멈추고 주목하게 하는지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만큼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를 갖지 못하고 살아간다.

花看半開 酒飮微醉 화간반개 주음미취
此中大有佳趣 차중대유가취
若至爛漫酕醄 약지난만모도
便成惡境矣 변성안경의
履盈滿者 宜思之 이영만자 의사지

꽃은 반쯤 피었을 때 보고 술은 조금 취하도록 마시면,
그 가운데에 멋이 있다.
만약 꽃이 만개하고 술에 만취하면
좋지 않은 경지가 되게 되니
가득찬 자리에 오른 사람은
마땅히 이를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가을 꽃의 백미, 물매화가 꽃문을 열기 시작한다. 한동안 곁을 맴돌다 가던 길이지만 다시 돌아서와 이번엔 아애 자리를 잡고 앉았다. 꽃의 무엇이 나를 이토록 붙잡는 이유인지 따져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보고 또 보길 반복한다.

떨어지지 않은 발길을 옮기면서 울렁이는 속내를 다독이는 향기에 그저 미소지을 뿐이다. 매년 반복되는 이 일이 조금씩 쌓이다보면 꽃 피고 지는 그 '한 호흡'에 들어선 자신을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어볼 뿐이다.

채근담에 나오는 글귀를 나즈막하게 읊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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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꾹나리'
불갑사 가는 길 가장자리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길을 가다 이 꽃을 처음 만난날 우뚝 선 발걸음은 좀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세상에 같은 꽃 하나도 없지만 어찌 이렇게 독특한 모양을 갖게 되었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한동안 널 다시 보기 위해 숲을 다니면서 언제나 새로운 느낌으로 눈맞춤 한다. 무더운 여름을 건너 숲 속 그늘진 곳에서 곱게도 피었다. 멀리 나가지 않아도 뒷산에서 볼 수 있는 꽃이기에 더 반갑다.
 
뻐꾹나리는 이름이 특이하다. 모양의 독특함 뿐만 아니라 색도 특이하다. 이 색이 여름철새인 뻐꾸기의 앞가슴 쪽 무늬와 닮았다고 해서 뻐꾹나리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이름 붙인 이의 속내가 궁금하다. 뻑꾹나리라고도 부른다.
 
한번 보면 절대로 잊지못할 것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영원히 당신의 것'이라는 꽃말도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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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_읽는_하루

슬픔이 기쁨에게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 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 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정호승 시인의 시 '슬픔이 기쁨에게'다. 슬픔과 기쁨은 동전의 양면, 스스로를 돌아보는 기회로 삼자. 생명과 생명 사이 거리를 좁히게 만드는 시기가 가을이다.

#류근_진혜원_시선집 #당신에게_시가_있다면_당신은_혼자가_아닙니다 에서 옮겨왔습니다. (13)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수놓는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나무물고기 #구례통밀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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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後採新茶 우후채신다

乍晴朝雨掩柴扉 사청조우엄시비
借問茶田向竹園 차문다전향죽원
禽舌驚人啼白日 금설경인제백일
童稚喚友點黃昏 동치환우점황혼
纖枝應密深林壑 섬지응밀심림학
嫩葉偏多少石邨 눈엽편다소석촌
煎造如令依法製 전조여령의법제
銅甁活水飮淸魂 동병활수음청혼

비온 후 차를 따다

아침부터 나리던 비 잠시 개어 사립문을 지치고
차밭을 물어 물어 대나무 동산으로 향하노라
한 낮의 새 혀 같은 차 잎, 인기척에 놀라 소리 죽이고
어린 동자 불러 벗 삼으니 어느새 황혼이구려
깊숙한 숲속에는 예상대로 잔가지 빽빽한데
어린 차 잎 다분히 석촌 쪽에 치우쳤구나
법제대로 다려 졌는가
구리병에 생기 있는 차, 마시고 나니 혼이 맑아 오네

*초의 선사의 다송茶頌이다. 여름 소나기 처럼 쏟아지던 비가 그쳤다. 가을에 찻잎을 따는 것이 생소하지만 이때 딴 차를 끝물차라고 한단다. 마알간 햇살이 나니 문득 이 시를 떠올려 본다.

가을로 접어들며 싱숭생숭한 마음자리를 다독이는데 차를 마주하는 시간만큼 좋은게 또 있을까. 아직 단풍들지 않은 숲길을 걷는 것은 성질급한 가을을 일부러 마중하러 나가는 것만 같아 주저하게 된다. 찻잔을 놓고 마주 앉은 이 없이도 충분히 좋은 시간이 이때쯤이 아닌가도 싶다.

靜坐處茶半香初 정좌처다반향초
妙用時水流花開 묘용시수류화개

"고요히 앉아있는 것은 차가 한창 익어 향기가 나오기 시작하는 것과 같고, 오묘하게 행동할 때는 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 것과 같네"

초의선사와 교분이 두터웠던 추사 김정희의 차에 대한 욕심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초의 선사에게 보낸 편지글에 들어 있던 다송茶頌이다.

고요함을 찾는 것은 오묘하게 행동하기 위해서다. 차를 마시고 나니 혼이 맑아 온다는 그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차꽃이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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