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수요일

5월

​아이야 오늘처럼 온통 세상이 짙푸른 날에는
지나간 날들을 떠올리지 말자
바람이 불면
허기진 시절을 향해 흔들리는
기억의 수풀
시간은 소멸하지 않고
강물은 바다에 이르러 돌아오지 않는다

연락이 두절된 이름들도
나는 아직 수첩에서 지울 수 없어라
하늘에는
만성피로증후군을 앓으며 뭉게구름 떠내려 가고
낙타처럼 피곤한 무릎으로 주저앉는 산그림자
나는 목이 마르다

아이야 오늘처럼 세상이 온통 짙푸른 날에는
다가오는 날들도 생각하지 말자
인생에는 도처에 이별이 기다리고
한겨울 눈보라처럼 흩날리는 아카시아 꽃잎
그 아래
어깨를 늘어뜨리고
모르는 사람 하나 떠나가는 모습
나는 맨발에 사금파리 박히는 아픔을 배우나니

*이외수 선생님의 시 "5월"이다. 5월은 이외수 선생님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선생님의 시를 여기에 공유 합니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구례통밀천연발효빵 #들깨치아바타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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晩春 만춘
庭宇寥寥門晝關 정우요요문주관
葛巾烏几對靑山 갈건오궤대청산
桃花落盡春光歇 도화락진춘광헐
蛺蝶如何苦未閒 협접여하고미한
 
늦은 봄
집안은 조용하고 낮에도 문을 닫고
갈건으로 오궤 기대고 청산을 마주본다
복사꽃 다 지고 봄빛도 다하는데
나비는 어찌 저리도 괴로워 편안치 못한가
 
*조선사람 申欽신흠(1566∼1628)의 시다.
봄 기운을 품고 날뛰던 가슴이 어느새 차분해졌다. 경계를 허물어버린 봄 속에 안겨보니 가까이 보아야 비로소 너와 내가 보인다.
 
늦은 봄에 신흠 선생의 마음에 파문을 일게 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허공을 헤매는 나비의 날개짓을 그냥 보낼 마음이 없었나 보다.
ㆍ문을 닫고 마음에 드는 책을 읽는 것
ㆍ문을 열고 마음에 맞는 손님을 맞는 것
ㆍ문을 나서 마음에 드는 경치를 찾아가는 것
이 세가지를 인생 삼락으로 꼽았다는 선생의 마음이 어렴풋이 알듯도 싶다.
 
인생의 즐거움은 먼산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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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매화ㆍ죽단화(겹황매화)
숲속에서 만나면 친근함에 반갑게 눈맞춤한다. 사람들 가까이 살았다는 생각에 언젠가 이 꽃이 피는 언저리 어딘가에 사람이 살았을거라며 그 흔적을 찾게 만드는 꽃이기도 하다.

이 꽃도 사람이 살았던 산성 언저리에서 만났다. 제법 군락을 이룬것으로 보아 자리잡은 시간을 짐작케한다. 이곳에 80년대 중반까지도 사람이 살았다는 것을 알기에 그때 그 사람들의 흔적을 만나듯 반갑다.

봄에서 초여름까지 꾸준히 꽃을 피운다. 황매화가 5장의 꽃잎을 가진 것에 비해 죽단화는 겹꽃잎이다. 그래서 겹황매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꽃은 풍성하게 피나 열매는 거의 맺지 못한다니 그래서 꽃이라도 더 풍성하게 피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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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가遊山歌
화란춘성하고 만화방창이라. 때 좋다 벗님네야 산천경개를 구경을 가세.
죽장망혜단표자로 천리강산 들어를 가니, 만산홍록들은 일년일도 다시 피어 춘색을 자랑노라.
색색이 붉었는데, 창송취죽은 창창울울한데 기화요초난만중에 꽃 속에 잠든 나비 자취 없이 날아난다.
유상앵비는 편편금이요, 화간접무는 분분설이라. 삼춘가절이 좋을씨고 도화만발점점홍이로구나.
어주축수애산춘이라던 무릉도원이 예 아니냐. 양류세지사사록하니 황산곡리당춘절에 연명오류가 예 아니냐.
제비는 물을 차고 기러기 무리져서 거지중천에 높이 떠 두 나래 훨씬 펴고 펄펄펄 백운간에 높이 떠서 천리강산 머나먼 길을 어이 갈꼬 슬피운다.
원산 첩첩 태산은 주춤하여 기암은 층층 장송은 낙락에 허리 구부러져 광풍에 흥을 겨워 우쭐우쭐 춤을 춘다.
층암절벽상의 폭포수는 콸콸 수정렴 드리운 듯 이골 물이 수루루루룩 저골 물이 솰솰 열의 열골 몰이 한데 합수하여 천방져 지방져 소쿠라져 펑퍼져 넌출지고 방울져 건너 병풍석으로 으르렁 콸콸 흐르는 물결이 은옥같이 흩어지니
소부 허유 문답하던 기산영수가 예 아니냐.
주곡제금은 천고절이요 적다정조는 일년풍이라. 일출낙조가 눈앞에 어려라(버려나니) 경개무궁 좋을시고.

*경기 12잡가 중 한 곡으로 봄을 맞아 구경하기를 권하고 봄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노래한다.

초록에 초록을 더하더니 어느사이 경계가 사라졌다. 어느 무엇이 더 돋보이는 시절보다야 눈요기 거리는 덜하지만 서로 품어 안아 너와 내가 구분 없는 이 시절이 더 귀한 것 아니던가. 봄도 끝자락으로 달려가는 이때, 마음씨 좋은 벗님들과 산천경개 어느 곳에서 만나지기를 빌어본다.

https://youtu.be/oPRAvjCFAjQ

매번 이춘희 명창의 유산가를 듣다가 이번엔 젊은 소리꾼 강효주의 소리로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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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초'
몇해 전 우연히 발견한 앵초밭을 이번에는 가보지 못하고 말았다. 일의 우선순위에서 밀린 탓이다. 그래도 뜰에 심어둔 앵초가 꽃을 피워 아쉬움을 달래주어 그나마 다행이다.
 
제법 투툼한 질감에 털 많은 잎을 아래에 두고 하트 모양으로 갈라진 다섯장의 홍자색 꽃이 둥그렇게 모여 핀다. 색감이 주는 독특하고 화사한 느낌이 특별한 꽃이다.
 
앵초라는 이름을 가진 종류로는 잎이 거의 둥근 큰앵초, 높은 산 위에서 자라는 설앵초, 잎이 작고 뒷면에 황색 가루가 붙어 있는 좀설앵초 등이 있다.
 
꽃이 마치 앵두나무 꽃처럼 생겼다고 해서 앵초라고 하였다는데 그 이유에 의문이 들지만 꽃에 걸맞게 이쁜 이름이긴 하다. ‘행복의 열쇠’, ‘가련’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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