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심붓꽃
유독 강한 이미지로 다가오는 꽃이 있다. 현실의 모습과 사진이 주는 간격에 차이가 있다지만 그것을 단숨에 뛰어넘는다. 먼 곳에서만 들리던 꽃소식이 눈앞에 펼쳐지지 그야말로 황홀한 세상이다.
 
작디작은 것이 많은 것을 담았다. 가냘픈 모양도 온기 가득한 색깔도 색감의 차이가 주는 깊이도 무엇하나 빼놓을 수 없다. 여리여리함이 주는 유혹이 강하여 손에 쥐고 싶은 욕망을 불러온다.
 
사진으로만 보다가 어떤이의 결혼식에서 첫눈맞춤 하고 제주도에서 보다가 법정스님이 머물렀던 불일암에서 다시 만나고 내 뜰에도 들였는데 올해는 고인돌공원 한모서리에서 느긋하게 만났다.
 
자명등自明燈일까. 마음자리의 본 바탕이 이와같다는 듯 스스로 밝다. 하룻만에 피고 지는 꽃의 절정을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어 더 주목받는다. '기쁜소식'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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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읽는수요일

이름 부르는 일

그 사람 얼굴을 떠올리네
초저녁 분꽃 향내가 문을 열고 밀려오네
그 사람 이름을 불러보네
문밖은 적막강산
가만히 불러보는 이름만으로도
이렇게 가슴이 뜨겁고 아플 수가 있다니

*박남준 시인의 시 "이름 부르는 일"이다. 가만히 그 이름 부르며 보내야 하는 이는 보내고 다시, 맞이할 이는 가슴에 품는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구례통밀천연발효빵 #들깨치아바타 #곡성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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描山描水總如水 묘산묘수총여수
萬草千花各自春 만초천화각자춘
畢竟一場皆幻境 필경일장개환경
誰知君我亦非眞 수지군아역비진

신처럼 산을 그리고 물을 그리네
온갖 화초가 다 활짝피어 있네
피경 이 모두가 한 바탕 꿈
너와 나도 참 아닌 것을 누가 알리오

*조선사람 김수온(金守溫, 1410~1481)의 시다.

무엇이 그리 바빳을까. 그렇게 열심히 살았던 이유가 이리 황망하게 가려고 그랬나 싶다.

여름날 소나기 지나가듯 먼 발치서 겨우 몇번 만났다. 딱히 이렇다 할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닌 나에게도 이리 안타까움으로 가슴이 먹먹한데 그를 가까이 두었던 그 많은 이들은 어떨까. 앞으로 한동안 지리산 기슭이 텅 빈듯 공허할 것이다.

이제 나는 바래봉이나 노고단, 벽소령 등 지리산 소식을 누구에게서 들을 수 있을까. 그를 떠올리게 하는 꽃을 찾다가 그가 자주 찾던 지리산 노고단 오르는 길에서 만난 노각나무 꽃을 떠올렸다. 온몸을 통째로 떨구었으나 살아 생전 그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 그 삶과 이토록 닮은 꽃이 또 있을까 싶어 두손 모아 그 앞에 바친다.

"피경 이 모두가 한 바탕 꿈
너와 나도 참 아닌 것을 누가 알리오"

고영문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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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각나무
꽃을 떨구고서야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하늘 높은줄 모르고 솟아오른 나무는 그렇게 자신을 알리고 있다. 고개들어 한참을 바라봐도 보이지 않는 꽃이 툭! 하고 떨어지고 나서야 인사를 건넨다. 순백의 꽃잎에 노오란 꽃술이 다정하다.

껍질 무늬가 사슴(노, 鹿) 뿔(각, 角)을 닮았다고 노각나무이며 비단 같다고 비단나무라고도 한다. 비교적 높은 산 중턱의 숲속이나 너덜바위 지역에 자라는 잎지는 넓은잎 큰키나무다. 줄기가 미끈하고 노란 갈색과 짙은 갈색의 큰 무늬가 있다.

꽃은 6~7월에 새로 나는 햇가지의 아래쪽 잎 달리는 자리에 흰색으로 핀다. 한 꽃에 암술과 수술이 함께 나온다. 꽃잎은 5~6장이며 가장자리가 고르지 않다. 꽃받침잎은 둥글며 융 같은 잔털이 있다.

동악산 숲에 들어서며 통으로 떨어진 꽃이 유독 눈에 띄었는데 동네 뒷산에서 떨어진 꽃 무더기로 다시 만났다. 배롱나무, 때죽나무, 굴참나무와 함께 만나면 꼭 만지며 나무가 전하는 그 느낌을 마음에 담는 나무다.

올해는 지리산과 가야산을 돌아오는 동안 심심찮게 보이던 꽃을 다시 가로수로 심어진 나무로 만났다. 올 봄 뜰에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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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터리풀
볕이 드는 숲 언저리가 붉은빛으로 물든다. 붉음이 주는 가슴 뛰는 순간을 놓칠세라 발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들여다 본다. 간혹 불어오는 바람결을 타고 달려드는 꽃빛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만 정신을 차릴 마음은 애초에 없다. 빼앗긴 마음을 돌려세우기가 쉽지 않다.

한여름으로 달려가는 숲에 짙은 자홍색의 작은 꽃들이 빽빽하게 뭉쳐 줄기의 아래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며 핀다. 하늘의 별이 지상으로 내려와 붉은 별잔치를 하는 모양이다.

지리산에 사는 터리풀이라는 의미의 지리터리풀이다. 우리나라 특산종으로 지리산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하얀색의 꽃이 피는 터리풀 역시 한국특산종이며 꽃 색으로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나무 그늘 속에서 느린 걸음으로 지리산 노고단을 오르는 길가에는 노루오줌, 도라지모시대, 원추리, 큰뱀무, 둥근이질풀 등 무수한 꽃들의 잔치가 펼쳐진다. 그 중에서도 지리터리풀이 보여주는 붉은빛의 꽃의 향연을 놓치면 두고두고 아쉬울 것이다.

올해는 간밤에 내린 비와 짙은 안개 속에서 한 눈맞춤이라 특유의 붉은빛이 가려져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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