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수요일

어느 향기

잘 생긴 소나무 한 그루는
매서운 겨울 내내
은은한 솔향기 천 리 밖까지 내쏘아 주거늘

잘 익은 이 세상의 사람 하나는
무릎 꿇고 그 향기를 하늘에 받았다가
꽃 피고 비 오는 날
뼛속까지 마음 시린 이들에게
고루고루 나눠 주고 있나니

*이시영 시인의 시 "어느 향기"이다. 가을은 사람과 사람 사이 멀어진 간격을 좁히라고 쌀쌀한 기온으로 다독인다. 혹 잊어버린 사람들에게 "잘 익은 사람 하나"를 보내주는 것이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구례통밀천연발효빵 #들깨치아바타 #곡성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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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춘 듯 생각도 멈춰서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은 것일까"

딱히 이유를 찾지 못하면서도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노랫말이 있다. 한 노래의 가사이고 그것도 앞뒤 가사는 잘라먹고 극히 짧은 대목만 무한 반복된다. 이렇게 멜로디와 가사만 떠오를뿐 가수도 제목도 오리무중일 때는 난감하지만 그것에만 집중해도 좋다.

우여곡절 끝에 찾은 마시따밴드의 '나는'이라는 노래의 일부다. 음원을 찾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듣지만 그 짧은 부분의 가사에 몰입되어 무한 반복적으로 중얼거릴 이유는 결국 알 수가 없다. 읊조리듯 편안한 멜로디에 노랫말 역시 억지를 부리지 않은 편안함으로 가끔 찾아서 듣는 밴드의 노래다.

느긋하게 집을 나서기 전 뜰을 돌아본다. 아침 햇살을 품은 용머리가 서로를 외면하고 등을졌다. 흥미로운 눈맞춤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까지 그대로 있을지는 알지 못한다.

토라져 다문 입술처럼 불편한 속내를 겉으로 드러내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숨기지도 않은 모습과도 닮았다. 이럴때는 다른 수가 없다. 시간이 빨리 지나가 송곳처럼 뾰쪽한 속내가 누그러뜨려지길 기다리는 수밖에. 


멈춰버린 시간이 무겁다.

하루 연차를 내고 목공실에 왔다. 논 한가운데 있어 주변엔 시들어가는 꽃들 사이로 새롭게 피는 꽃이 제법 있다. 건물 그늘에 앉아 '나는'이라는 노래에 온전히 들어본다.

이 노래를 떠올리는 것이 이제 가을 속으로 들어왔다는 신호다.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전하는 말을 듣는다.

https://youtu.be/7m4tUs6jvE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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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늦여름 더위로 지친 마음에 숲을 찾아가면 의례껏 반기는 식물이 있다. 곧장 하늘로 솟아 올라 오롯이 꽃만 피웠다. 풍성하게 꽃을 달았지만 본성이 여린 것은 그대로 남아 있다. 키가 크면 큰대로 작으면 작은대로 꽃이 주는 곱고 단아함은 그대로다.

연분홍색으로 피는 꽃은 줄기 윗부분에서 꽃방망이 모양으로 뭉쳐서 핀다. 흰꽃을 피우는 것은 흰무릇이라고 한다. 꽃도 꽃대도 여리디여린 느낌이라 만져보기도 주저하게 만든다.

어린잎은 식용으로, 뿌리줄기는 식용이나 약용으로, 비늘줄기와 어린잎을 엿처럼 오랫동안 조려서 먹으며, 뿌리는 구충제로도 사용하는 등 옛사람들의 일상에 요긴한 식물어었다고 한다.

꽃은 '무릇' 이러해야 한다는듯 초록이 물든 풀숲에서 연분홍으로 홀로 빛난다. 여린 꽃대를 올려 풀 속에서 꽃을 피워 빛나는 무릇을 보고 '강한 자제력'이라는 꽃말을 붙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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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쥐손이
익숙한 모습이라 지나쳤는데 뭔가 놓친듯 아쉬움이 남았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그곳에 멈추어 길게 눈맞춤 한다. 닮았다는 것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드러내는 것으로 꽃을 구별하니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가야산 정상 부근에서 여러번 본듯 하지만 그냥 지나쳤는데 올해는 붙잡혔다. 세잎쥐손이, 미국쥐손이, 꽃쥐손이, 둥근이질풀, 이질풀, 선이질풀 등이 같은 집안으로 쥐손이 종류가 꽤 다양하여 그것이 그것같아 구분이 쉽지가 않다.

산쥐손이는 높은산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 식물이다. 꽃은 적자색으로 피며 잎겨드랑이에서 나온 작은 꽃자루에 한두송이 씩 달린다. 잎은 깊게 여러갈래로 갈라진다.

다시, 그곳을 찾게되면 이번에는 더 반가운 눈맞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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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줄가리'
꽃이라고 하면 쉽게 활짝 피어있는 상태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꽃이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만개한 꽃이 주는 특유의 느낌을 통해 전해지는 공감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꽃 한송이는 수많은 상황에 맞물리는 다양한 노력에 의해 피어난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둘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낱"

*장석주는 시 '대추 한 알'에서 수많은 상황에 맞물리는 다양한 노력에 주목했다. 결과에 집착한 나머지 잊었거나 때론 외면한 과정의 중요성에 대한 깨달음을 여기서도 만난다.

나팔꽃이 환하게 꽃을 피워다가 진다. 조금씩 움츠려드는 모습이 꽃만큼 아름답다. 누구나 보지만 누구도 보지 못하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듯 어느 한순간도 꽃 아닌 때가 없음을 다시 확인한다.

꽃을 피우고 열매 맺는 것을 보며 딱히 대줄가리와 여줄가리를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 어떤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일에 딸린,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을 뜻하는 말이 '여줄가리'다. 이 여줄가리에 반대되는 말로 '어떤 사실의 중요한 골자'를 일컫는 '대줄가리'가 있다. 대줄가리에 주목하다보면 여줄가리의 수고로움을 잊고 말았던 지난 시간들이 가슴에 머문다.

지는 자리가 따로 없음을 몸으로 말하고 싶은 것일까. 나팔꽃의 강단지게 다문 꽃잎에서 여줄가리의 아름다움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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