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수요일

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튼튼한 줄기를 얻고
잎은 흔들려서 스스로
살아 있는 몸인 것을 증명한다.

바람은 오늘도 분다.
수만의 잎은 제각기
몸을 엮는 하루를 가누고
들판의 슬픔 하나 들판의 고독 하나
들판의 고통 하나도
다른 곳에서 바람에 쓸리며
자기를 헤집고 있다.

피하지 마라
빈들에 가서 깨닫는 그것
우리가 늘 흔들리고 있음을.

*오규원 시인의 시 "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면서"다. 생명의 속성은 운동성이다. 움직임은 능동의 발로이니 부는 바람의 탓이 아니라 흔들림은 당연한 것.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구례통밀천연발효빵 #들깨치아바타 #곡성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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臨溪驛
得句偶書窓 득구우서창
紙破詩亦破 지파시역파
好詩人必傳 호시인필전
惡詩人必唾 악시인필타
人傳破何傷 인전파하상
人唾破亦可 인타파역가
一笑騎馬歸 일소기마귀
千載誰知我 천재수지아

임계역
떠오른 글귀 써서 서창에 붙이니
종이 찢어지면 시 또한 찢어지리라
좋은 시라면 남들이 반드시 길이 전할 것이고
나쁜 시라면 남들이 꼭 침뱉고 말리라
남들이 전해준다면 시가 찢어진들 속상할 게 없고
남들이 침뱉는 거라면 찢어져도 좋으리
한번 씩 웃고는 말 타고 돌아오나니
오래 세월 지난 뒤 그 시만이 나를 알리라

*조선사람 어세겸(魚世謙 1430~1500)이 정선에서 강릉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임계역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지은 시라고 한다.

무슨 감흥이 돋았는지 밤사이 창문에 시를 남겼다. 혹여나 지금 이 심정을 공감하는 이가 있어 후세에 전해진다면 글 속에 묻어둔 자신을 알게 되리라고 소망한다.

그 하룻밤이 가을 어느 때를 건너는 중이었으리라 짐작만 한다. 계절뿐 아니라 삶의 때도 그 언저리 어디쯤은 아니었을까 싶다. 스스로를 다독여야 할 시절인데 소슬한 바람이 부는 가을밤이라면 일어난 감회를 이렇게 다독이지 않았을까.

내달리는 가을에 채찍질이라도 하듯 비가 내렸다. 옷깃을 잘 여며야 하는 것은 드는 바람을 막고자 하는 것보다 나가려는 마음을 다독이는 일이 우선이다.

혼자 마시는 감미로운 차 한잔의 위로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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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앉은부채
꽃 찾아 다니다 만나는 자연의 신비스러운 것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이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에 하나다. 한동안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은 당연하고 오랫동안 볼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습기 많은 여름에 핀다. 작은 크기로 땅에 붙어 올라와 앉아있는듯 보이며 타원형으로 된 포에 싸여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앉은부채라는 가부좌를 틀고 앉은 부처님과 닮아서 ‘앉은부처’라고 부르던 것이 바뀐 것이라고 한다.
 
애기앉은부채는 앉은부채와 비슷하나 그보다 작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앉은부채는 이른 봄, 눈 속에서도 꽃이 피는 반면 애기앉은부채는 고온다습한 여름이 되어야 꽃이 핀다.
 
자생지가 많지 않고 더러는 파괴된 곳도 있기에 앞으로 얼마동안 볼 수 있을지 미지수다. 귀함을 알기에 상처를 입기도 하지만 그 귀함을 모르기에 무참히 파괴되기도 한다. 이 자생지가 그렇다.
 
올해는 매년 보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만났다. 환경이 비슷한 것으로 보이나 더 넓게 분포되어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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至樂 지락
値會心時節 치회심시절
逢會心友生 봉회심우생
作會心言語 작회심언어
讀會心詩文 독회심시문
此至樂而何其至稀也 차지락이하기지희야
一生凡幾許番 일생범기허번

최상의 즐거움
마음에 맞는 시절에 마음에 맞는 친구를 만나고 마음에 맞는 말을 나누고 마음에 맞는 시와 글을 읽는다. 이것이 최상의 즐거움이지만 지극히 드문 일이다. 이런 기회는 인생 동안 다 합해도 몇 번에 불과하다.

*조선사람 이덕무(李德懋,1741~1793)의 '선귤당농소'에 나오는 글이다.

지난 주말 멀리 사는 벗들이 집들이를 핑개로 오랫만에 모였다. 짧은 만남이 주는 긴 여운을 알기에 기꺼이 시간을 낸 것이리라. 벗들의 시간은 무르익어 가며 좋은 향기를 더해간다. 일상이 녹아든 향기는 서로에게 스며들어 닮은꼴을 만들어가고 있다. 투렷한 개성이 돋보이지만 닮아가는 것을 은근히 즐기는 모습이다.

최상의 즐거움이 어디 따로 있을까. '절정의 순간이었다'는 것은 언제나 과거의 일이다. 지나고보니 그렇더라는 것이기에 늘 아쉬움만 남는다. 일상에서 누리는 자잘한 행복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이제는 알기에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매 순간 누리는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 쌓여 그 사람의 삶의 향기를 결정한다.

花樣年華화양연화는 내일의 일이 아니다. 

오늘을 놓치지 말아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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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떡풀
보러가야지 마음 먹고 있었는데 짐작도 못한 곳에서 의중에 있던 꽃을 만나면 그 순간의 모든 것이 특별하게 기억된다. 윗 지방에서 꽃 피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언젠가는 볼 날이 있겠지 하며 마음 한구석에 접어두었던 꽃을 만났다.
 
바위떡풀, 참 독특한 이름이다. 바위에 떡처럼 붙어 있다고 붙여진 이름 일까. 산에 있는 바위틈이나 물기가 많은 곳과 습한 이끼가 많은 곳에 산다. 바위에 바짝 붙어 자라며 한자 大자 모양으로 흰꽃이 핀다. 이때문에 '대문자꽃잎풀'이라고도 한다.
 
좀처럼 꽃을 못보다가 꽃진 후 모습으로 만났던 식물이다. 꽃도 꽃이지만 잎에 주목한 덕분에 알아볼 수 있었던 꽃이다. 가까운 식물들로는 우리나라 특산종으로 '지리산바위떡풀'과 울릉도에서 자라는 '털바위떡풀'이 있다고 한다. 구분하지 못하니 봐도 알 수 없는 실정이다.
 
바위에 붙어 독특한 잎 위로 피는 자잘한 흰꽃이 무척이나 귀엽다. '앙증'이라는 꽃말이 저절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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