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명의 그 본성은 붉다. 꽃들이 화려한 색과 몸짓으로 봄을 불러온다지만 그것은 다 서막에 불과하다. 봄은 언땅을 뚫고 올라오는 새순의 붉음을 보아야 비로소 시작된다. 봄을 새로운 희망으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독 봄앓이가 서럽도록 아름다운 것은 붉은 생명의 속내가 꿈틀대기 때문이다. 붉은 생명의 기운이 생동하는 작약의 새순이다. 내가 봄을 맞이하는 근본으로 삼는다.

내 속이 붉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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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의무릇
현호색이 무리지어 피는 계곡에서 한 개체를 보고 난 후 늘 찾게 되는 꽃이다. 같은 장소에 매년 풍성하게 올라와 눈맞춤 한다.

잎은 가늘고 쓰러질듯 힘없는 줄기가 서로를 지탱하느라 애쓰는 모습이 가련하다. 스님처럼 산에 사는 무릇이라는 의미로 그럴듯한 이름이지만 약하디 약한 모습에선 애처럽게만 보인다.

노란별이 하늘에서 내려와 땅에서 핀듯 반갑고 정다운 모습이다. 햇볕을 좋아해 한낮에 꽃을 활짝 편다. 이 꽃처럼 작고 순한 꽃이 주는 편안함으로 들과 산의 풀꽃들을 찾아나서는지도 모르겠다.

유독 눈에 들어와 지나온 길을 다시 돌아가 한참을 눈맞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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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소한도 九九消寒圖

옛 선비들은 추운 겨울 동짓날에 창호지에 흰 매화꽃 81송이 (9×9=81)를 그려 벽이나 창문에 붙여놓고 다음날부터 하루에 한 송이씩 빨갛게 색칠을 했다.

그로부터 81일 되는날 빨갛게 칠한 매화꽃이 완성될때쯤이면 창밖에는 진짜 매화가 꽃을 피워 봄을 알려주었다. 비로소 겨우내 함께했던 소한도를 걷어내고 뜰 앞에 핀 매화를 맞이했으니 일상을 사는 멋이요 풍류가 아니였을까 싶다.

구구소한도는 다양한 형태로 즐겼는데 그중에는 9획으로된 9글자를 하루에 한획씩 쓰면 81일후에 홍매화가 피는 봄이 오는 것이다. 이때 쓰인 글자가 정전수유진중대춘풍 亭前垂柳珍重待春風으로 정자앞 뜰에 수양버들은 진중하게 봄바람이 불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다.

춥고 긴 겨울동안 한송이씩 붉은꽃을 피우며 봄에 대한 희망을 키워갔으리라. 겨울 지나면 반드시 봄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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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의바람꽃
이른 봄, 꽃을 보고자 하는 이의 마음을 조급하게 하는 것으로 치자면 바람꽃이 선두에 선다. 아직은 냉기가 흐르는 숲의 계곡을 기꺼이 엎드리게 하는 꽃이다.

화려한 변산바람꽃을 선두로 성질급하게 빨리 지고마는 너도바람꽃, 작지만 단아한 만주바람꽃 그리고 이 꿩의바람꽃이라는 이름을 단 친구들이다.

햇볕에 민감한 꿩의바람꽃은 꽃잎처럼 보이는 제법 큰 꽃받침잎을 활짝 펼치고 숲의 바람에 흔들거린다. 색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다른 바람꽃들과는 다른 순수한 멋이 있다.

바람의 신과 아네모네에 관한 전설이 숨어 있는 꿩의바람꽃은 ‘덧없는 사랑’, ‘금지된 사랑’, ‘사랑의 괴로움’ 등 여러 가지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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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읽는수요일

홍매

늦은 사랑이 내게로 왔다
가장 늦은 사랑이 첫사랑이다
봄여름가을
꽃시절 다 놓치고
언 땅 위에서
나는 붉어졌다
누구는 나를 가리켜 봄이라 하지만
꽃물을 길어올린 건
겨울이다 인색한 몇 올의
빛을 붙들어 온몸을 태운
한 그리움의
失性

그리워할 누군가가 있는가
지금 그리워해도 되는가
너는 묻지 않았으니
스스로 터져 봄날이 되는 사랑아
아직 얼어붙은 하늘에 뾰루퉁 입 내민
붉은 키스
가장 이른 사랑이 내게로 왔다

*이상국 시인의 시 "홍매"다. 제법 무르익어가는 봄, 눈 닿는 곳이면 어김없이 꽃이 피었다. 그것도 보는 사람에게만 보인다. 그리워할 누군가가 있어 지금 그리워해도 되는가를 묻는 겻눈질로 보는 홍매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구례통밀천연발효빵 #들깨치아바타 #곡성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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