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속을 헤매던 지난날을 회상하니

고비마다 하이얀 바람꽃이 피었구나"

*김덕종의 시 '변산바람꽃'의 일부다. 올 봄, 더디오는 봄을 맞으려고 늦게 깨어나는 숲에 들었다. 변산바람꽃 핀다는 소식에 그곳에도 피었겠지 싶어 찾아가 눈맞춤 했다.

변산바람꽃은 무엇보다 앞서 봄을 부르더니 서둘러 떠난다. 혹시라도 그 화려함 속에 감춘 속내가 드러나면 어떨까 싶어 급한 발걸음을 내딛다가도 잠시 멈춰서 지나온 시간을 돌아봄도 잊지 않는다.

내가 꽃을 찾아 산과 들을 헤매고 다니는 이유는 뭘까. 누구는 나이든 탓이라며 쉬운 핑개를 대기도하지만 그것으로 부족한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안다. 건들부는 바람결에 향기라도 맡으며 걷다 우연히 들어간 곳에서 뜻밖의 눈맞춤이 길어진다. 발걸음도 멈추고 허리도 굽히고 살피다 급기야는 무릎을 꿇고서 숨을 멈추며 눈맞춤을 한다.

꽃에 투영된 내 지난 시간을 만나는 찰나刹那다. 그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순간은 단 한번도 저장되는 일이 없다. 다시 만나고 싶은 그 찰나를 위해 걷고 또 걸어 꽃을 찾는다.

깨어나 보니 눈 앞이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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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바람꽃
유독 사람의 이목을 끄는 꽃이다. 긴 겨울이 끝나간다는 신호로 이해한다. 꽃도 사람도 봄을 맞이하려는 조급한 마음이 눈맞춤을 부른다.

화려한 외출이다. 본래부터 속내는 그렇다는듯 자신을 드러내는데 주저하거나 숨기는 일이 없다. 그 화려함이 주목 받기에 한몫한다.

꽃보다 사람이 많은 곳과 시간을 피하느라 너무 이르거나 조금 늦기 마련인 꽃놀이다. 그러다보니 피고지는 과정을 볼 기회가 더 있다. 꽃놀이에서는 그것으로도 충분함을 알게하는 꽃이다.

예년에 비해 한참이나 늦게 피었다. 그마저도 궂은 날씨에 본래의 화사함이 한풀 꺾인 모습으로 만났다. 그래도 넉넉한 마음으로 꽃과 함께 봄맞이 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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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분정도 이거나

한, 삼분 간만이라도

나만 바라보고

웃어달라는 말은,

그런 무지막지한 말은

너에게 하지 않겠다

그냥, 그냥 나는

빛 보다 더 눈부신 너를

가만 가만 보련다

*신석종의"'바람꽃"이라는 시다. 이른 봄꽃에 투영된 감정을 이토록 간절하게 담아낸 표현이 또 있을까?

봄은 내가 애써 미리 마중하여 맞이하는 유일한 계절이다. 그 중심에 꽃이 있고, 그 꽃 중에 변산바람꽃이 있다.

"가만 가만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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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ᆢ.
그렇게 바람도 햇볕도 가슴 열어 받아들이는거야
그래서 봄이라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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斷腸春心 단장춘심

-김 명 기

누가 마음이 꺾이지 않는 법을 물었다 내사 그런 걸 알 턱이 있나 마음이란 게 꽃 같아서 피어있는 시간 보다 무시로 저버릴 때가 훨씬 많은데 무슨 수로 그 시간을 가로젓는다는 말인가 어떤 날은 어떤 일이 오래 생각날 때가 있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가는 잔영처럼 아무렇지 않게 봄날 한때를 거닐던 일 아무 일도 아닌 것이 무슨 일이 되어버리는 순간 나는 벌써 마음이 수없이 꺾여버린 사람 차라리 마음이 꺾이는 법을 물었다면 그런 봄날 이야기나 해주었을 텐데 알 수 없는 물음에 한마디 거들지 못하고 지는 목련과 피는 벚꽃을 번갈아 본다 곧 저버릴 마음이 강길 따라 지천이라 그럴 수만 있었다면 이렇게야 안 살았겠지 이렇게야 못 살았겠지

*올들어 벌써 두번째 같은 숲에 들었다. 한참이나 더딘 봄이 굼뜨기가 여전하다. 간신히 고개를 내민 봄기운과의 짧은 눈맞춤을 아쉬워 하고 돌아서 내려왔다. 돌다리를 건너는 순간 마음을 사로잡는 모습을 기어이 보고야 말았다.

두어라 斷腸春心 단장춘심(슬프도록 벅찬 봄기운)이 너나 내나 다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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