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화
계절의 변화를 아는 지표로 삼는 것들 중에서 꽃만큼 확실한 것이 또 있을까. 생의 주기가 짧아 사계절 중에 모든 것을 다 보여주는 초본식물로 계절의 변화를 가늠하는 기준으로 삼아도 크게 틀리지는 않아 보인다.

흰색으로 피거나 붉은색으로 피는 꽃에 노랑 꽃술이 유난히 돋보인다. 색은 달리 피어도 이름은 같이 부른다. 서로를 빛나게 하는 꽃잎과 꽃술의 어울림이 좋다. 모든 힘을 꽃에 쏟아부어서 그럴까 열매를 맺지 못하고 뿌리로 번식한다.

가을을 밝히는 꽃이라는 의미로 추명국(북한명)으로도 불리지만 서리를 기다리는 꽃이라는 뜻의 대상화가 추천명이다. 봄맞이가 봄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이름을 가졌듯 가을의 의미를 이름에 고스란히 담았다. 국가표준식물목록에는 대상화라는 이름이 붙은 식물이 10여 종에 이른다. 무엇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가을 서리에 맥 못추는 것들로 대표적인 것 역시 초본식물들이다. 이름에 가을의 의미를 품었지만 순리를 거스리지는 못한다는 듯 '시들어 가는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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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꽃

물가에 피어난 호젓한 가을

蘆花 노화

雨入寒塘動碧漣 우입한당동벽연

蘆花開盡白於綿 로화개진백어면

我園從此多奇絶 아원종차다기절

一片江南在眼前 일편강남재안전

갈대꽂

찬 못에 비가 내리니 푸른 물결 출렁이는데

갈대꽃 활짝 피어 솜보다 희네.

내 뜰에는 이제부터 기이하고 빼어남 많아져

한 조각 강남의 풍광이 눈앞에 펼쳐지리.

-서거정, 사가시집 권50

*알고 보면 반할 꽃시(성범중ㆍ안순태ㆍ노경희, 태학사)에 쉰 한번째로 등장하는 서거정(徐居正,1420~1488)의 시 "蘆花 노화"다.

갈대는 습지나 갯가, 호수 주변의 모래땅에 군락을 이루고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꽃은 8월 하순부터 9월까지 피며 색깔이 차츰 자주색에서 갈색으로 변화한다. 산지에서 주로 보이며 흰색으로 피는 억새와 혼동하기 쉽다.

내게 갈대는 순천만의 늦가을 노을지는 때 펼쳐지는 갈대밭 풍경과 대금을 배우러 다니던 때 채취하러 다녔던 속청으로 더 기억된다. 갈대는 국악기 대금의 소리를 내는 중요 요소로 쓰이는 청을 만드는 재료로 쓰인다. 단오 무렵 갈대의 줄기를 잘라 그 안의 청을 채취하여 사용하게 된다.

위에 언급한 서거정의 시에서 갈대꽃을 솜보도 희다고 했는데 그 이유를 모르겠다.

사진 2,3,4는 평상샘에게서 온 순천만 갈대 모습이다.

*'알고 보면 반할 꽃시', 이 책에 등장하는 꽃시를 따라가며 매주 한가지 꽃으로 내가 찍은 꽃 사진과 함께 꽃에 대한 내 나름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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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쓴풀
멀고 가까운 곳, 산길을 걷다가 우연히 발견하고 꽃이 필 때쯤이면 매년 그곳을 찾아가 눈맞춤하는 꽃들이 제법 된다. 이렇게 하나 둘 기억해 두고 나만의 꽃지도를 만들어가고 있다.

자줏빛을 띄는 꽃잎이 깊게 갈라져 있다. 꽃잎에 난 줄무늬의 선명함이 전체 분위기를 압도한다. 꽃잎은 다섯장이 기본이지만 네장에서 아홉장까지도 다양하게 보인다.

충청도 어디쯤 물매화 보러간 곳에서 실컷 보았고 귀하다는 흰자주쓴풀도 봤다. 키 큰 풀 속에 묻혀 있어 오롯이 그 본래 모습을 보기에는 아쉬움이 남았었다. 그래서였을까. 황매산 풀밭에서 온전한 모습으로 다시 만났다.

사람과 식물 사이에 형성된 이야기를 보다 풍부하게 해주는 의미에서 찾아보는 것이 꽃말이다. '자각'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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尋花不惜命 심화불석명

愛雪常忍凍 애설상인동

​꽃을 찾아서 목숨조차 아끼지 말고,

눈을 사랑하거든 얼어 죽을 각오를 하라.

*추사 김정희가 겸재 정선의 '雪坪騎驢설평기려'(눈 덮인 들판에 나귀 타고 가다)를 보고 쓴 글이라 한다.

그 기상이야 덧붙일 말이 없다. 잇달아 드는 생각이 다산 정약용이 강진 유배에서 해제되어 돌아와 쓴 당호 與猶堂여유당에 이른다. 신중하라! 겨울에 시냇물을 건너듯. 경계하라!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하듯.

평범한 이의 눈에는 숨쉴 틈이 안보이니 단 한걸음도 내딛기 버겁다. 그래도 위안 삼는 것은 있다.

莊子장자의 逍遙遊소요유다. 삶은 소풍이라고 했다. 갈 때 쉬고, 올 때 쉬고, 또 중간에 틈나는 대로 쉬고.

마음의 자유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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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풍등

붉은 공모양의 열매가 주렁주렁 달렸다. 꽃의 생김새가 독특하여 주목받고 열매 역시 앙증맞은 모습과 붉은 색으로 눈길을 사로 잡는다.

무성했던 잎들이 지면서 드러나는 열매들이다. 새들의 주목을 받기 위해 화려한 색으로 치장하는 것이다. 어떤 맛일까 호기심에 손이 가다가 멈춘다. 독이 있는 식물이라고 한다.

꽃은 7~8월에 흰색으로 핀다. 꽃잎은 5갈래로 깊게 갈라지고, 갈래조각은 뒤로 젖혀진다. 열매는 9~10월에 둥글고 붉게 익는다.

배풍등(排風藤)이라는 이름은 '풍을 물리치는 덩굴'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경기도 이남에 자생하기에 추운 지방에서는 보기 힘들다. '참을 수 없어'라는 독특한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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