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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건네다
윤성택 지음 / 북레시피 / 2017년 10월
평점 :
문장을 건너는 사이 가을이 끝났다
어느 해 늦가을, 떨어진 상수리나무 잎의 바삭거리는 소리에 취해 공원을 걷다 나무의자에 앉아 책을 펼쳐 들었다. 문장과 문장 사이를 건너가는 시간이 길어지며 한기가 파고들어 어께를 움츠리는 순간이었다. 툭~ 하고 떨어진 상수리가 발밑까지 굴러와 멈추기까지 짧은 시간동안 문장과 문장 사이를 촘촘하게 막아서던 혼란스러움은 이내 사라지고 난 뒤 뭔지 모르게 머리가 맑아지는 경험을 했다. 상수리 열매가 떨어져 발밑에서 멈춘 순간까지의 '톡~ 데구르르' 그 소리는 상수리가 건네는 마음의 온기였는지도 모른다.
그때의 느낌이 온전히 살아나는 말 '마음을 건네다'를 손에 들고 소나무 밑에 앉았다. 첫 장을 넘기기가 주저해지는 것은 무엇을 알아서가 아니다. 시인인 저자도 알지 못하고 저자의 시도 접해보지 못했지만 순전히 당신에게 '마음을 건네다'는 말이 품고 있는 온도를 짐작하기 때문이다.
첫 장을 열고부터 쉽사리 다음 장으로 넘어가지 못한다. 문장 하나하나가 발목을 잡고 좀처럼 놓아주지 않아서 읽기를 반복해보지만 그도 여의치 않다. 무엇이 문제일까? 단어와 단어를 이어가고 문장이 문장을 자연스럽게 넘겨줄 때 가독성이 좋은 글일 것이다. 하지만, 이 ‘마음을 건네다’에 쓰여진 거의 모든 문장에 마음이 걸려 넘어지기 일쑤다. 애써 붙잡고 일어서서 한발 나아가기가 무섭게 또 발목을 잡혀 좀처럼 나아갈 수 없다. 문장에 담긴 마음의 무게인지 문장을 읽는 이의 마음이 무거워서인지 오리무중이다.
“좋은 시를 읽으면 그날은 하루가 선물입니다. 시가 곁에 있다는 느낌이 좀 더 고독해도 된다는 위로 같았습니다.” 무슨 의미인지 충분히 이해되는 이야기다. 저자 윤성택의 문장 역시 충분히 좋은 의미를 가졌다.하지만 문장과 문장 사이가 깊고 넓어서 쉽사리 넘지 못한다. 저자의 의도를 빗나간 읽는 이의 마음이 문제일 것이다.
“벽은 경계이면서 안과 밖을 구분 짓는 상징입니다./그러나 달리 보면/내가 속한 공간의/막다른 마지막 장소입니다./울어도 괜찮은 곳은/이처럼 나의 가장 먼 마음의 끝입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인력이 강해서/시간조차 휩니다. 그 틈에서 간신히 그립거나/간신히 미워지는 감정이/블랙홀처럼 인연을 휩쓸어 갑니다.”
비켜갈 수 없는 문장이다. 평소 주목했던 관심영역으로 심사숙고하며 벗어나려고 애를 쓰면서도 쉽지 않았던 속내를 누군가에게 들켜 얼굴 붉어지는 마음과 다르지 않다. 문장 사이를 건너기가 버거웠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안의 미지로 여행을 나서는 것”은 저자의 이야기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그렇게 완성된 문장을 읽는 독자 역시 자신만의 내적 여행을 떠나 도달할 수 없는 미지로 나아가게 된다.
‘마음을 건네다’로는 저자 윤성택의 마음자리를 짐작하는 것이 너무도 미흡하여 그의 다른 글 ‘그 사람 건너기’를 찾았다. 올 가을은 단풍의 끝물도 구경 못하고 책에 빠져있을 것만 같다. 오랜만에 묵직하여 감당하기 버겁지만 매우 흥미로운 생각의 여운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