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꽃은 어리석어 보이고, 한낮의 꽃은 고뇌하는 듯하고, 저녁 꽃은 화창하게 보인다. 비에 젖은 꽃은 파리해 보이고, 바람을 맞이한 꽃은 고개를 숙인 듯하고, 안개에 젖은 꽃은 꿈꾸는 듯하고, 이내 낀 꽃은 원망하는 듯하고, 이슬을 머금은 꽃은 뻐기는 듯하다. 달빛을 받은 꽃은 요염하고, 돌 위의 꽃은 고고하고, 물가의 꽃은 한가롭고, 길가의 꽃은 어여쁘고, 담장 밖으로 나온 꽃은 손쉽게 접근할 수 있고 수풀 속에 숨은 꽃은 가까이 하기가 어렵다.

*조선시대를 살았던 이옥李鈺의 글 중 하나다. 꽃을 보며 달라지는 느낌을 다양한 환경의 변화에 따라 비유하고 있다. 꽃과의 눈맞춤을 예사롭지 않게 보아온 사람만이 가능한 느낌이리라.

밤을 건너는 동안 제법 굵게 내리던 비가 날이 밝고도 한참이 지났는데 여전히 그 속내를 보이고 있다. 덕분에 마음의 여유가 생겨 느린 걸음으로 뜰을 거닐어 본다. 비에 젖은 꽃잎에 맺힌 빗방울이 꽃 속의 꽃이다. 

'비에 젖은 꽃은 파리해 보인다'는 이옥의 말과는 달리 길을 헤매다 비로소 제 자리를 찾아 앉아 쉬는 편안함이 보인다. 구절초, 둥근잎미국나팔, 미국나팔꽃, 해국, 물매화, 아스타, 쑥부쟁이, 꽃범의꼬리, 백일홍, 유홍초, 풍선덩굴, 여뀌, 미국쑥부쟁이, 다알리아, 흰꽃나도사프란, 당잔대, 세이지, 꽃댕강나무ᆢ깊어가는 가을을 그윽하게 만들어주는 내 뜰의 벗들이다.

오늘밤엔 달빛을 받아 요염한 물매화를 만날 수 있기를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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