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직한 비가 깊게도 내린다. 밤을 가로지르는 빗소리에 끝내 참지 못하고 골목 끝 가로등 밑에 서서 어둠 속 하늘을 쳐다보았다. 비는 내리는지 솟는지 모르게 머리도 발도 모두를 적시고도 남아 흥건히 고였다.


"온몸을 적실만큼
가을비를 맞으면
그대는 무슨 옷으로 다시
갈아입고 내일을 가야 하는가"


*용혜원의 시 '가을비를 맞으며'의 일부다. 언제부턴가 내리는 비도 온전히 맞지 못하는 시간을 살고 있다. 이유야 없진 않지만 오는대로 다 맞았던 옛날의 그 비는 기억 속에만 잠들어 있다.


하지만, 몸은 그 때의 비를 기억하고 있나 보다. 그 빗소리에 마음도 몸도 어둠 속으로 내딛는다. 까만밤 내리는 비를 붙잡아두는 곳에 멈춰 비와 마주한다. 불빛을 품은 비가 쉼의 공간에 가까스로 멈춘 지점이다.


오늘밤도 품은 빛을 어쩌지 못하고 속으로만 밝아지는 비와 마주한다. 비로소 갈아 입을 옷 걱정을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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