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산 기슭만 보여도 가슴이 뛰기 시작하고 머뭇머뭇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 꽃이 피어날 몸짓을 감지한 까닭이다. 멀리서 꽃소식 들려오기도 전에 몸은 이미 꽃몸살을 앓기 시작한 것이다.
한겨울 눈이 내리면서부터 시작된 매화꽃 향기를 떠올리며 남쪽으로 난 창을 열고 물끄러미 바라보듯, 한여름 끝자락 이슬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땅으로만 내려앉을 때가되면 꽃몽우리 맺혀 부풀어 오를 것을 이미 알고 이제나 필까 저제나 필까 꽃소식 기다리다 고개가 다 틀어질지경에 이른다. 다 꽃을 마음에 둔 이들이 꽃과 눈맞춤하기 위한 통과의례다.
이때 쯤이면 아무도 찾지않을 산기슭에 홀로 꽃 수를 놓고서도 스스로를 비춰볼 물그림자를 찾지 못해 하염없어 해지는 서쪽 하늘만 바라볼 고귀한 꽃이 눈 앞에 어른거리만 한다.
"아침 꽃은 어리석어 보이고, 한낮의 꽃은 고뇌하는 듯하고, 저녁 꽃은 화창하게 보인다. 비에 젖은 꽃은 파리해 보이고, 바람을 맞이한 꽃은 고개를 숙인 듯하고, 안개에 젖은 꽃은 꿈꾸는 듯하고, 이내 낀 꽃은 원망하는 듯하고, 이슬을 머금은 꽃은 뻐기는 듯하다. 달빛을 받은 꽃은 요염하고, 돌 위의 꽃은 고고하고, 물가의 꽃은 한가롭고, 길가의 꽃은 어여쁘고, 담장 밖으로 나온 꽃은 손쉽게 접근할 수 있고, 수풀 속에 숨은 꽃은 가까이 하기가 어렵다."
*조선시대를 살았던 이옥李鈺의 글이다. 꽃을 가슴에 품고 꽃몸살을 앓아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이다. 대상이 무엇이든 그 대상에게 몰입해본 이의 마음자리에 꽃이 피었다.
물매화 꽃몽우리가 맺혔다. 북쪽에서 들려온 꽃 피었다는 소식에 자꾸 먼 산만 바라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