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구슬나무'
매년 같은 때 같은 자리를 찾아가 안부를 묻는 나무가 있다. 때마춰 어김없이 피는 꽃은 환상적인 색과 그보다 더 황홀한 향기에 취해 좀처럼 꽃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빛과 꽃 사이에서 벌어지는 빛과 색의 향연이 아찔하다.
가지 끝에 연보랏빛의 조그만 꽃들이 무더기로 모여 핀다. 보라색이 흔치 않은 나무꽃 중에 더욱 돋보이며, 진한 향기가 매우 향기롭기까지 하다. 과한듯 진한 꽃향기지만 꽃그늘 아래로 모여드는 생명들을 내치지 않을 정도로 너그럽게 품어준다.
열매는 가을에 들어서면 노랗게 익는다. 바깥은 말랑말랑하고 가운데에 딱딱한 씨가 들어 있다. 모양은 둥글거나 약간 타원형이고, 긴 열매 자루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 겨울철 남도를 여행하는 길가에 자주 보인다. 멀구슬나무라는 이름은 이 열매에서 비롯된 듯하다.
"비 개인 방죽에 서늘한 기운 몰려오고
멀구슬나무 꽃바람 멎고 나니 해가 처음 길어지네
보리이삭 밤사이 부쩍 자라서
들 언덕엔 초록빛이 무색해졌네"
*다산 정약용 선생이 1803년에 쓴 '농가의 늦봄田家晩春'이란 시에도 멀구슬나무가 등장한다. 친숙한 농촌마을의 늦봄의 정취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멀구슬나무는 목재, 수피, 열매 등이 생활에서 다양하게 쓰이는데 나무 입장에서 보면 모두 주의를 살펴야할 일들이다. '경계'라는 꽃말이 이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