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것도 아닌 주제에
가난해서 반 꿰미의 돈도 저축하지 못한 주제에 천하의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은택을 베풀려고 하고, 노둔해서 한 부의 책도 통독하지 못한 주제에 만고의 경사經史와 총패叢稗를 다 보려 하니, 이는 오활한 자가 아니면 바로 어리석은 사람이다. 아, 이 덕무야! 아, 이 덕무야! 바로 네가 그렇다.
*이덕무(1741-1793)의 '청장관전서' 중 '선귤당농소'에 나오는 이야기의 일부다. 스스로를 돌아봐서 부끄럽지 않은 이가 얼마나 될까.
대상에 대해 객관적이고 공정한 모양으로 예의를 갖춘듯 하지만 실속은 비아냥거리거나 냉소적인 뜻을 담아 상대를 현혹하는 말이 자주 보인다. 자신의 감정과 의지에 따라 제 견해를 밝히는 것이야 탓할 일이 아니지만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무지몽매함이 드러나는 것이거나 대상을 무시하고 있지는 않는지 우선 자신부터 돌아볼 일이다.
권리와 의무는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먼저 자신의 돌아봐야 하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다.
선거의 후유증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이 생기고 생긴 벽이 두꺼워지고 있다. '별것도 아닌 주제'를 보지 못한 까닭이다. 우물 가운데 앉아 하늘을 본다. 개구리가 본 것이 하늘의 전부가 아님은 누구나 알지만 자신이 개구리의 처지인지는 모른다.
세상과 사람에 대해 말을 아끼고 이미 한 말에 대해 늘 두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덕무의 탄식이 남의 일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