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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의 깊이
김명인 지음 / 빨간소금 / 2017년 3월
평점 :
희망의 출발점으로 삼을 부끄러움의 자기성찰
거의 대부분을 책을 통해 세상과 만나온 사람에게 책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저자에 대한 정보는 매우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 된다. 하지만 때론 저자에 대한 정보 없이 책 제목에 이끌려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이 책‘부끄러움의 깊이’가 그런 경우에 해당된다. 저자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이 제목이 이끌어 가는 주제에 저절로 관심 갖게 만들었다. 이 책을 선택한 첫 번째 이유다.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은 자신을 중심에 두고 안과 밖으로 행하는 소심하면서도 때론 적극적인 감정과 의지의 발현이다. 밖으로 향하는 마음과 안으로 파고드는 마음 사이의 간극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방점은 내면으로의 ‘성찰’에 둔다. 이 책은 바로 그 부끄러움에 대한 깊이를 이야기 한다. 타인이나 스스로를 만나는 자신의 감정과 의지에 대해 어떤 성찰의 과정을 가졌기에 부끄러움에 대한 '깊이'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제목에 이어 책을 내 저자 김명인에 대한 궁금증이 책을 선택한 두 번째 이유다.
저자 김명인은 어떤 사람일까? 문학평론가이자 인하대학교 교수라고 명함 속 직함보다는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하는 대한 궁금증이 앞선다. “혁명가의 삶을 살고자 했으나 얼마 못 가 한갓 문필가의 삶이 왔고, 또 가난한 문필가의 삶조차 그대로 지키지 못하고 어정어정 대학교수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이야기에서 그 행보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글을 읽어가는 동안 글 속에 투영된 사회와 자신을 바라보는 감정과 의지에서 짐작한 바가 확실하게 드러나고 있기에 책을 마칠 때 쯤 그의 다른 저작들을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문학평론가, 대학교수이면서도 적극적으로 대중과 소통하고자 하는 모습은 1990년대부터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쓴 글을 통해 짐작된다. 이 책은 그 수백 편의 산문 가운데 70여 편을 엄선해 '부끄러움의 깊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엮은 것이라고 한다.
“다들 저마다 제 몫의 삶을 사는 것이라 누군가에게는 후안무치의 뻔뻔스러움이 삶의 방법이 되어버리듯,나는 어쩌다 보니 부끄러움을 내 삶의 방편으로 삼게 되었다 할까? 둘 다 원래의 삶이 소외된 결과라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다. 그러니 좀 뻔뻔스럽지만, 나는 부끄러움을 내 등록상표로 써먹기로 한다.”
서문에 실린 저자의 이와 같은 자기고백은 '부끄러움의 깊이'에 실린 한편 한편의 글 속에 녹아 있는 김명인의 자기성찰을 바탕으로 한 글이 가지는 설득력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설득력의 핵심은 ‘부끄러움'과 '성찰'에 있다. ‘나이듦, 자기정체성, 문학, 혁명, 페미니즘’ 등에 관한 저자의 글이나 신영복 선생을 추모하는 글, 신경숙 표절 사건을 비판하는 글, 메갈리아 논쟁에 관한 글 등에서 보이는 저자의 시각이 공감을 얻고 힘을 가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시 한 번 글의 힘에 대해 생각한다. 글이 힘을 얻으려면 그 글이 독자들의 감정과 의지에 공감을 불러와 글을 읽은 독자들로 하여금 자기성찰과 실천으로 이어지는 것 그리고 글을 쓴 저자의 일상의 행보가 얼마나 설득력을 가지는가에 달렸다고 봐도 그리 큰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런 시각으로 김명인의 '부끄러움의 깊이'를 읽는다면 큰 설득력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한 사회구성원이 집단적 트라우마를 겪을 정도로 부끄러움이 많은 시대를 살지만 그 이면에는 부끄러움을 잊은 사람 또한 너무나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런 시대에 ‘부끄러움’을 키워드로 함께 살아갈 공동체 사회의 현주소를 깊이 있게 성찰한 기회를 제공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