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나 본다?'
봄, 여기까지 왔음을 알고 다가올 시간을 상상한다. 붉디붉은 꽃잎에 샛노란 꽃술이 절묘한 어울림으로 각인된 그 꽃이다. 누구는 '목단'이라고도 하고 '모란'으로도 부르는 풍성하고 화사한 꽃이 이제 막 겨울눈을 벗어나고 있다. 저 속에 그 무궁무진한 꽃의 세계가 있음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저 피어나면 보고 감탄할 뿐이다.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라는 나른 노래한 시인의 속내도 미루어 짐작한다.

'꽃이나 보고 꽃 사진이나 올린다' 고 말하는 이가 있다. 지극히 오만한 편견으로 자신을 옹호하고자 하는 이의 독설이다. 꽃을 꽃 그 자체의 생명으로 보지 않고 사람의 가치보다 헐값으로 본다고 사람 사는 세상이 지금보다 더 나아질까? 사람 사는 모양도 꽃이 피고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오히려 그 속에서 사람의 오만과 곡해로 얼룩진 세태의 해법을 찾을 수도 있다. 꽃이 피지 않으면 사람은 살 수 없다는 것도 여기로부터 출발한다. 사람의 오만이 꽃이 꽃을 피우고도 열매맺지 못하는 환경을 만들어왔고, 그 결과가 가져올 참담함도 그 꽃의 생을 보고서야 안다.

'꽃이나 보고'라는 말로 이미 초라해저버린 스스로를 포장할 수 없음도 알까? 나는 오늘도 그 '꽃이나 보고'자 사람을 사람으로 키워준 자연을 살핀다. 

모란이 피어야 봄이 무르익어 여름이 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