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이 고운 밤이다. 깊어가는 밤 기온도 이미 겨울 본연의 차가운 기운을 잃어가고 있다. 품을 줄여가는 달을 보며 뜰을 서성이는 것이 추위에 떨지 않고 즐길 수 있으며 은근한 달빛에 운치까지 더한다.

달이 높이 떴습니다 
나는 지금 
달 아래 가만히 서 있습니다 
달 아래 서니 
이 생각 저 생각이 다 지워지고 
이 사람 저 사람이 다 지워지고 
이런 일 저런 일 다 지워집니다 
이런 달 아래서는 나도 
깨끗하게 지워지고 
달만, 
둥근 달만 하늘 높이 떠 있습니다

*김용택의 시 '달'이다. '다 지워지고'마는 달 아래 서 있다. 

가득 차는가 싶더니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 간다. 스스로의 힘으로 빛나지 못하지만 그 빛이 도를 넘지 않기에 마주볼 수 있는 틈을 허락하는 달이다. 스스로의 품을 채우고 또 비우기를 반복하는 것이 마치 지기성찰의 과정에서 복잡한 심사를 비워내는 사람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스스로의 모습을 지워가는 달 아래서면 복답한 심사가 어느새 사라지고 오롯이 달과의 눈맞춤만 남는다. 하여, 달 아래서면 그 달과 닮아가는 자신을 본다. 깊어가는 밤 시간을 아끼며 달을 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달만, 
둥근 달만 하늘 높이 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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