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 지나고 섣달 보름까지 건너온지라 날이 제법 길어졌다. 늘 같은 시간 같은 곳을 바라보니 하루를 건너온 해가 눈맞춤하는 모습이 달라져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해가 산을 넘어가는 위치와 시간이 다르고 전해지는 느낌이 날마다 다르다.
내게 날이 길어진다는 것은 긴 겨울을 건너오는 동안 내내 기다려온 때가 비로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퇴근 후 꽃나들이"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하여, 요사이 출퇴근 시간이면 지나는 곳마다 자꾸 눈은 숲과 계곡의 언저리에서 멈추곤 한다. 멈춘 시선에 숨기기 어려운 속내가 피어난다.
저기 길마가지나무 꽃 피어 입구를 지키는 계곡 오동나무 지나 굴참나무 아래 노루귀 올라올 것이고, 그 옆에 깽깽이풀 붉은 새싹도 곧 볼 수 있을 것이다. 건너편 산등성이 돌밭을 지나서 상수리나무 아래는 복수초의 노란 등불로 숲이다 환해질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이미 꽃과 눈맞춤하는거나 다름 없다.
오늘은 해의 걸음걸이를 더디게 하는 서쪽하늘이 유난히 높고 깊다. 성급한 마음에 꽃나들이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벙그러지는 미소가 꼭 저 하늘 닮았다 싶어 자꾸만 쳐다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