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문강에 삽을 씻고'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 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정희성의 시 '저문강에 삽을 씻고' 전문이다. 날마다 건너다니는 다리에 서서 지는 해를 보다. 문득 생각나는 시다.


무엇이 발길을 멈추게 했는지 모른다. 일상에서 반복되는 모든 것을 되도록이면 자세하게 눈맞춤하고자 애쓰며 오가는 길인데도 단 하루도 같은 날이 없다. 그 속에 내가 느끼는 희노애낙애오욕이 다 담겨 있어 문득문득 눈시울을 붉히게도 하고 발걸음 멈춰 한없이 바라보게도 한다.


그럴때면 어김없이 꾹꾹 눌러놓은 속내가 슬그머니 비집고 나와 주책없이 민망함을 보이지만 늘 혼자인 시간이니 누구 눈치볼 일도 없어 그냥 그대로 둔다. 그렇게 또 한차례 뒤집힌 속내가 흘러 넘치고 나면 맑고 밝아서 더 깊어진 따스함이 스며든 스스로의 가슴을 품고 일상으로 걸어갈 수 있다.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우리가 저와 같아서/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잊혀져가는 담배 연기가 손에 잡힐 듯 눈 앞에 아른거린다. 일어나자.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을 내디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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