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은 길들이 반짝이며 흘러갔다'
-고두헌 외, 나무옆의자
애써 손에 들어오게 하고도 한동안 외면했다. 유독 차가웠던 겨울 어느날 새벽 별따라 가신 당신이 눈 앞에 밟혀 그 무게를 감당하기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임을 알게 된다. 아버지, 당신은 그렇게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있다.
"굽은 길들이 반짝이며 흘러갔다"는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 49인이 '아버지'를 주제로 쓴 시 49편을 엮은 테마시집이다. '어머니'를 주제로 쓴 시를 묶은 "흐느끼던 밤을 기억하네"와 짝을 이루는 후속작이다.
"어디까지 흘러가면 아버지 없이 눈부신 저 무화과나무의 나라에 가 닿을 수 있을까 어디까지 흘러가면 내가 아버지를 낳아 종려나무 끝까지 키울 수 있을까" ('세월 저편' 중에서-류근)
"꽃은 어떻게 해마다
혈색을 기억해내는 것일까?
나는 작약만 보면
속살을 만지고 싶어진다."
('작약과 아버지' 중에서-박후기)
"거울 속에는 아버지의 얼굴을 한
웬 중늙은이가 서 있다 귀퉁이가
깨진 얼굴을 하고, 아버지 하고 부르면
오냐, 하고 그가 어색하게 대답을 한다"
('참 많은 세월 흘렀어도' 중에서-이은봉)
"내 안에서 뜬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계시는"
('아버지' 중에서-오인태)
"아버지!
당신에게 진 빚 다 갚지 못한 나는
크게 병들었는데 환부가 없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아픈 이름' 중에서-이재무)
그날, 차디찬 새벽이었다지만 그보다 시린 손의 기억을 놓치 못하고 가끔 깨어나 바라본 남쪽하늘엔 그 별이 반짝인다.
